“하늘나라 어머니 유산, 이 땅의 아이들 웃음으로 부활”

중앙일보

입력 2020.10.30 05:00

업데이트 2020.10.3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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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018년 굿네이버스 해외사업장 방문 프로그램을 통해 키르기즈공화국 카미사노프카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을 만난 구연호씨 부부. 2019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조의금 등 2000여 만원을 학교 화장실 신축공사비로 기부했다. [사진 굿네이버스]

2018년 굿네이버스 해외사업장 방문 프로그램을 통해 키르기즈공화국 카미사노프카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을 만난 구연호씨 부부. 2019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조의금 등 2000여 만원을 학교 화장실 신축공사비로 기부했다. [사진 굿네이버스]

"쓰고 남은 것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남은 것으로 살아오신 어머님의 뜻을 전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함께하는 세상]
한국, 전체 기부금 중 유산기부율 1% 밑돌아
미국·영국 등은 세제혜택·서약운동 등 활발
전문가 "유산기부법 제정, 관련법 개정해야"

 경기도 일산에 사는 곽은수(38·여)씨는 지난 5월 어머니 고(故) 김광극씨가 별세하자 고인이 남긴 재산의 일부를 굿네이버스에 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곽씨는 "평소 나눔을 실천하셨던 어머니의 뜻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며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자주 가던 동네를 걷다가 코로나19 긴급지원물품을 싣고 지나가는 차량을 보고 기부처를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부금은 서울·경기지역 저소득층 아동이 온라인 교육을 원활하게 받을 수 있도록 태블릿PC를 지원하는 데 쓰였다.

 구연호(63)씨는 2019년 5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머니 이름으로 조의금 1000만원 등 2000여만 원을 기부했다. 구씨는 2003년 해외아동 결연을 시작으로 18년째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그가 낸 기부금은 키르기즈공화국 카미사노프카 학교의 화장실 신축공사비에 사용됐다. 구씨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며 "비록 어머니는 떠나셨지만, 활짝 웃던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의 얼굴에서 어머니가 남겨주신 진정한 유산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황성주 굿네이버스 나눔마케팅본부장은 "최근 고인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조의금이나 유산의 일부를 기부하려는 분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며 “유산기부라고 하면 전 재산 기부나 고액 자산가들이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부동산·주식·현금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재산의 일부를 기부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돕고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라는 인식이 점점 커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구연호씨 어머니의 유산기부로 지난해 10월 완공된 카미사노프카 학교 신축화장실 전경(왼쪽). 화장실을 둘러보는 학생들의 모습(오른쪽) [사진 굿네이버스]

구연호씨 어머니의 유산기부로 지난해 10월 완공된 카미사노프카 학교 신축화장실 전경(왼쪽). 화장실을 둘러보는 학생들의 모습(오른쪽) [사진 굿네이버스]

 굿네이버스는 이런 추세에 발맞춰 지난해 9월 유산기부자모임인 '더네이버스레거시클럽'을 발족했다. 현재까지 후원자 19명이 유산기부에 동참했다. 황 본부장은 "유산을 기부할 때 기부자와 유족이 세금이나 법적 문제와 관련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법률·세무·금융 등 기부자별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영국 등 기부 선진국에 비해 유산기부 비율이 매우 낮다. 한국은 2018년 현재 개인·법인이 낸 기부금 총액 12조9000억원 중 유산기부 비중이 0.5%에 불과하다.

 반면 기부 선진국인 미국과 영국은 유산기부 비중이 각각 8%, 33%에 달한다. 미국은 2010년 6월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 억만장자 40명이 기부 서약(The giving pledge)운동을 시작하며 ‘유산기부 문화’ 확산에 동참했다. 2017년 기준 유산기부 금액은 7860억 달러(약 830조원)에 달한다.

 영국에서도 "유산의 10%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유언장에 남기는 '레거시10(Legacy 10)운동'이 2011년 이후 확산하고 있다. 영국은 재산의 10%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면 상속세 10%를 경감해주는 특례제도를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영국에서 부의 양극화, 소득 불평등 해소를 위해 세제혜택과 각종 캠페인 등으로 유산기부를 장려하고 있는 정부와 민간의 노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더네이버스레거시클럽은 유산기부를 이행하기로 서약한 굿네이버스 특별회원들의 모임으로 지난해 9월 발족했다. [굿네이버스 홈페이지 캡처]

더네이버스레거시클럽은 유산기부를 이행하기로 서약한 굿네이버스 특별회원들의 모임으로 지난해 9월 발족했다. [굿네이버스 홈페이지 캡처]

 우리나라도 지난해 8월 한국자선단체협의회가 8개 자선단체와 함께 '나누고 남기다'라는 이름의 유산기부 인식개선 캠페인을 시작했다. 국회와 시민사회에선 유산기부법 제정도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종흔 법무법인 신우 대표변호사는 "초고령화사회를 맞아 웰다잉을 고민하는 분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유산기부법 제정, 상속세 및 증여세법·기부금품법 등 관련법 개정이 절실하다"며 "후원받은 비영리단체(NPO)도 기부자의 뜻이 더 큰 나눔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고 투명하게 운영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유진 시민사회환경연구소 연구위원·권혜림 기자
roh.youjean@joongang.co.kr

'함께하는 세상' 기사목록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news.joins.com/issue/1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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