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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의’에 한국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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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성훈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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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화 ‘금강천’을 개봉 첫날 봤다. ‘항미원조 70주년 기념 대작’이라며 떠들썩했던 광고가 무색하게 영화관은 썰렁했다. 관람관엔 나와 함께 간 중국인 일행 단둘뿐이었다. 70년 전 한국전쟁을 오늘의 중국은 어떻게 그렸을까. 사실 답은 정해져 있다.

영화는 휴전을 2주 앞둔 1953년 7월 13일 하루 동안 벌어진 상황을 보여준다. 배경은 강원도 북쪽 금강산 지류인 금강천. 정전 협정을 앞두고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군이 미군 폭격기에 맞서 다리를 지킨다는 내용이다. 한국전쟁 영화지만 한국군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하나의 사건을 세 가지 시점으로 보여준다.

시작은 후퇴하는 중국 육군의 시점. 마지막으로 철수하란 명령을 받은 부대가 다른 부대의 퇴각을 돕다 미군 전투기의 폭격을 맞아 대부분 전사한다. 지휘관이 숨을 거두면서 다른 병사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장면이 클로즈업된다.

중국 영화 ‘금강천’에서 미군 전투기의 다리 폭격 장면. [바이두]

중국 영화 ‘금강천’에서 미군 전투기의 다리 폭격 장면. [바이두]

시간을 돌려 이번엔 폭격하는 미군 전투기 조종사의 시점. 그는 함께 다리를 폭격하던 동료 조종사가 중국군이 쏜 대공포에 맞아 추락하자 분노한다. 이날 밤 명령도 무시하고 혼자 전투기를 끌고 나간 그는 다리에 폭탄을 쏟아붓다가 역시 대공포에 맞아 추락한다. 복수의 화신으로 묘사됐고 최후는 특별히 ‘수퍼슬로우’ 화면으로 그려진다.

절정은 중국 대공포 부대장의 시점. 전투기의 폭격에 부대원이 전멸하고 부대장은 한쪽 팔다리를 잃었지만 마지막까지 최후의 포격을 날린다. 수없이 날려도 안 맞던 대공포가 이때 명중한다. 그는 포를 놓지 않고 폭탄의 화염과 함께 ‘페이드아웃’(Fade Out) 된다. 끝이 아니었다. 화면이 밝아지고 갑자기 공병대가 쏟아져 나와 나무판자를 등에 메고 금강천에 인간 다리를 만든다. 그 위로 중국군 부대가 강을 건너 퇴각하며 영화는 끝난다. 이른바 ‘국뽕영화’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인과 관계가 부족한 전투 장면과 맥락 없는 희생, 배우들의 과장된 ‘애국’ 발언이 이어지며 감동을 강요한다.

영화는 한국전을 한국전쟁이 아닌 그저 중국군의 희생과 사투를 벌인 구조에 초점을 맞췄고, 이건 결국 미군 때문이란 메시지를 전했다. 적군도 하나의 인간일 뿐이란 암시도 있었지만, 접근 방식은 ‘분노에 찬 미국’과 ‘선의로 싸우는 중국’에 다름 아니었다. 항미원조 전쟁을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 단언한 중국 지도부 생각 그대로였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한쪽 화면에 지난달 중국군 유해 반환 영상이 나온다. 최고의 예우를 갖춰 안장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한국이 발굴해 돌려보냈다는 건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박성훈 베이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