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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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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이동현 산업1팀 차장

행크 애런(86)의 리그 홈런왕 타이틀은 몇 번이었을까. 참고로 베이브 루스(1895~1948)는 12번의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을 차지했다. 마크 맥과이어(57)는 메이저리그 전체 홈런 1위만 다섯 차례를 기록했다.

정답을 말하면 겨우(?) 네 차례다. 23년 동안 활동한 애런은 1974년 베이브 루스의 통산 홈런 기록(714개)을 넘어섰다. 76년 은퇴할 때까지 세운 755개의 홈런 기록은 31년 뒤 배리 본즈에 의해 깨졌다. 하지만 스테로이드 복용을 의심받는 본즈의 기록보단 애런이 진정한 통산 홈런 1위라고 믿는 이들이 많다.

애런은 네 차례 리그 홈런왕에 올랐지만 한 시즌도 50개 이상의 홈런을 친 적이 없다. 한 시즌 최다 홈런은 47개(1971년)였다. 50~60개의 홈런을 친 시즌은 없었지만 두 자릿수 홈런을 치지 못한 해도 없었다. 85경기만 뛰었던 은퇴 시즌에도 10개의 홈런을 쳤다.

통산 홈런 기록은 공식적으로 깨졌지만 아직도 많은 기록이 진행형이다. 통산 최다 타점(2297타점), 통산 최다 루타(6856루타), 통산 순수 장타 수(1477개)는 2위와 넉넉한 차이로 앞서 있다. 통산 안타는 3위, 통산 득점은 4위이며, 3000안타-2000타점-2000득점을 기록한 타자는 애런을 제외하면 알렉스 로드리게즈 뿐인데, 로드리게즈 역시 스테로이드를 복용했으니 순수한 3000-2000-2000 보유자는 애런 뿐이다.

요즘 야구팬들은 유튜브에서나 봤을 애런의 얘기를 꺼낸 건 사실 은퇴를 선언한 축구선수 이동국(41) 때문이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호쾌한 중거리 슛을 날리던 앳된 모습부터,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등장한 ‘오남매 아버지’의 모습까지 그의 23년 커리어는 30~40대 축구 팬들 머릿속에 남아있다.

누군가는 ‘불운한 선수’라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그는 K리그의 전설로 남았다. 통산 최다골(228골), 필드 플레이어 최다 출장(547경기) 기록은 앞으로도 좀처럼 깨지지 않을 것 같다. 그를 행크 애런과 비교하는 건 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23년을 쉼 없이 달려온 그의 꾸준함만큼은 어느 스포츠 스타와 비교해도 결코 모자라지 않는다.

2002년의 영광을 함께 하진 못했어도, 해외 리그에서 활약하지 못했어도 축구 팬들은 그를 K리그의 전설로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그의 인생 2막도 행복하길 기원해 본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