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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레지스탕스" 트럼프 내부고발자, 대선직전 커밍아웃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한 ‘저항세력(Resistance)’을 자처하며 익명의 기고문과 저서로 비판해온 내부 고발자가 오는 11월 3일 미 대선을 목전에 두고 스스로 신원을 공개했다. 미 대선을 향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시기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반(反) 트럼프 전선의 결집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국토안보부 장관 비서실장 지낸 마일스 테일러 #2년 전부터 트럼프 비판 익명 기고문과 책 출간 #트럼프 "추잡스러운 인간, 들어본 적도 없어"

커스텐 닐슨 국토안보부 장관(왼쪽) 비서실장 시절이던 2018년 3월 27일 마일스 테일러가 온두라스에서 장관을 수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커스텐 닐슨 국토안보부 장관(왼쪽) 비서실장 시절이던 2018년 3월 27일 마일스 테일러가 온두라스에서 장관을 수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 국토안보부 장관 비서실장을 지낸 마일스 테일러는 28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내가 2018년 뉴욕타임스(NYT)에 익명의 기고문을 썼고, 지난해 ‘경고(A Warning)’를 출간했다”고 털어놨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국토안보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해 2019년 2월부터 장관 비서실장을 지냈던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정책을 놓고 갈등을 빚다 지난해 11월 공직에서 나왔다.

그의 익명 비판이 본격적으로 이목을 모은 건 ‘나는 트럼프 행정부 내의 저항세력(Resistance)’이라는 제목의 2018년 9월 5일자 NYT 기고문이 계기가 됐다. 그는 해당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인 성격을 거론하며 “행정부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탄핵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만큼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많다”고 썼다.

이 기고문은 하루 만에 조회 수 1000만을 넘길 정도로 반향이 컸다. 발칵 뒤집힌 백악관은 내부자 색출에 나섰지만, 그의 신원은 드러나지 않았다.

1년 뒤인 2019년 9월 그는 ‘경고’라는 제목으로 익명의 회고록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항공 관제탑에 방치된 12살 아이로 비유한 그는 “대통령의 업무방식이 충동적이고 옹졸할 뿐 아니라 비효율적”이라고 비판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당시 또다시 색출 작업에 나선 백악관은 빅토리아 코츠 전 국가안보부 보좌관을 ‘범인’으로 지목했다고 한다. 경고를 출간한 출판사와 코츠는 부인했지만, 백악관은 결국 그를 에너지부 장관의 선임 보좌관으로 내보냈다.

테일러는 이날 트위터에 ‘왜 나는 더 이상 익명이 아닌가’(Why I’m no longer “Anonymous”)라는 성명에서 자신이 익명으로 정부를 비판할 수밖에 없었던 점,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막아야 하는 점 등을 다시 한번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실명으로 대통령을 비판하는 게 두렵지 않았지만 나는 대통령이 사소한 모욕과 욕설로 주위를 분산시키기보다 논쟁 자체가 관심을 받기를 원했다”고 주장했다. 메신저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화법을 겨냥한 것이다.

테일러는 “나는 여전히 공화당원”이라면서도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이 분열시킨 우리를 다시 하나로 뭉치게 만들 수 있다”고 바이든 후보에게 투표할 것을 독려하기도 했다. 그는 “바이든 후보는 보수주의자들이 반대하는 진보적 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며 “그의 정책이 그렇다고 해도 현 대통령이 우리 공화국에 끼친 피해와는 비교 불가”라고 꼬집었다.

“국민 자체가 최고 통치자에 대한 궁극적인 견제”라고 규정한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할 자격이 없고, 그의 재임은 우리가 견뎌내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는 일도 아니다”고도 했다. 테일러는 지난 8월 바이든 후보를 지지하고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공화당 그룹을 공동으로 결성한 바 있다.

마일스 테일러 전 국토안보부 비서실장이 29일 자신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자신의 트위터에 리트윗한 뒤 백악관에서 함께 찍은 사진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했다. [마일스 테일러 트위터 캡처]

마일스 테일러 전 국토안보부 비서실장이 29일 자신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자신의 트위터에 리트윗한 뒤 백악관에서 함께 찍은 사진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했다. [마일스 테일러 트위터 캡처]

테일러의 고백에 백악관도 맞대응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애리조나주 유세에서 테일러를 “백악관에서 제대로 일한 적도 없는 하급 당국자 같다”며 “기소돼야 할 추잡한 인간”이라고 비난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테일러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며 “그는 NYT와 결탁하고 CNN의 가짜 뉴스를 위해 일한다”고 적었다.

테일러는 즉시 트럼프 대통령의 해당 트윗을 리트윗한 뒤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있는 사진과 함께 “나는 당신을 매우 잘 기억하는데 유감스럽다.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 당신이 저질렀던 실패를 앞으로도 알려 나가겠다”는 게시물로 각을 세웠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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