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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중·일보다 늦은 ‘탄소중립’ 선언, 1년 전에 했다면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2021년 예산안과 국정 운영 방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2020.10.28 오종택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2021년 예산안과 국정 운영 방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2020.10.28 오종택 기자

“저는 ‘넷제로’ 선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10월 22일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중앙일보와 취임 1년 인터뷰 중 했던 말이다. “(2019년 9월)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65개국이 ‘넷제로(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했는데, 우리는 그걸 발표하지 못한 데 대해 환경부 장관으로서 자괴감이 들었다”고도 했다.

지난해 취임 1년 인터뷰에서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넷제로 선언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한국의 '넷제로(탄소중립)' 선언은 1년이 지난 올해 10월 28일에야 나왔다. 중앙포토

지난해 취임 1년 인터뷰에서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넷제로 선언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한국의 '넷제로(탄소중립)' 선언은 1년이 지난 올해 10월 28일에야 나왔다. 중앙포토

그 후로 1년이 지난 올해 10월 28일에야 한국은 ‘탄소중립’ 선언 국가가 됐다. 일본·중국은 한국보다 먼저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환경부 장관 개인의 ‘탈탄소’ 의지는 뚜렷했지만, 정부는 1년이 넘게 지나서야 겨우 한 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만약 '탄소중립‘ 선언이 2020년 10월 28일이 아닌, 2019년 10월 28일이었다면 어땠을까?

①한전·삼성물산 해외 석탄 투자 'X'

지난 1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서울 서초구 한국전력 서초지사 외벽에 호주 산불 영상을 투사하며 해외석탄 투자 중단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뉴스1

지난 1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서울 서초구 한국전력 서초지사 외벽에 호주 산불 영상을 투사하며 해외석탄 투자 중단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뉴스1

우선, 환경단체가 강하게 반발했던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우리나라의 자금이 투자되지 않았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의 ‘탄소중립’ 발언 직후 한국전력과 삼성물산은 “신규 석탄사업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최근 결정된 한국전력‧삼성물산‧두산중공업의 베트남 붕앙-2 석탄화력발전소 투자, 한전의 인도네시아 자바 9‧10호기 투자는 그대로 진행된다.

기후솔루션 김주진 변호사는 “그나마 뒤늦게라도 ‘탄소중립’ 선언이 나와서 다행이지만, 어차피 하게 될 선언이라면 우리가 먼저 했더라면 싶다”며 “정부의 명확한 시그널에 맞춰 경제계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국민 세금으로 해외에서 탄소를 배출하는 데 기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②UN 숙제도 ‘벼락치기’ 말고

올해 12월까지 국제사회에 제출해야 하는 ‘온실가스 감축 시나리오’ 숙제도 좀 더 차분히 준비할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이 ‘탄소중립’ 선언을 했지만, 당장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수정할 시간이 없어 당초 목표로 했던 '5억 3600만t(톤)'을 그대로 제출한다. 2050년 장기저탄소발전계획(LEDs)은 구체안을 빼고 ‘2050년 넷제로’ 상황만 가정해 제출할 계획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NDC는 1년여에 걸쳐 전문가 검토를 끝낸 자세한 수치가 많아 지금 당장 변경이 어렵고, 중간에 변경안을 만들어 새롭게 제출할 가능성도 있다”며 “LEDs는 ‘2050년’의 그림을 우선 제출한 뒤 단계별 계획은 차차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③산업도 1년 더 일찍 준비

‘탄소중립’을 선언한 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산업계의 충격도 조금은 줄어들 수 있었다.

경총 관계자는 “그간 ‘온실가스 감축’ 기조는 꾸준히 있었지만, ‘탄소중립’ 선언은 최근 너무 갑작스럽게 진행된 일이라 기업들은 부담이 큰 상황”이라며 “내년에 새로 시작되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3기에 맞춰 대비해왔는데, 차라리 작년부터 ‘탈탄소’가 명확했으면 좀 더 준비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④한‧중‧일 중 가장 먼저

일본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지난 26일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이틀 뒤인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일본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지난 26일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이틀 뒤인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이번 ‘탄소중립’ 선언은 중국, 일본에 이어 나왔다. 한‧중‧일 중 꼴찌인 셈이다.

순서를 경쟁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시점이 아쉽다는 지적이다. 국회 그린뉴딜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탄소중립 선언이 26일 일본의 ‘2050년 탄소중립’ 선언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중국과 일본이 하는데 우리만 안 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 드디어 움직인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를 진행중이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를 진행중이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22일 지자체 중 처음으로 충남도가 ‘2050년 탄소배출 제로’를 선언했는데, 이때 정부가 ‘탄소중립’을 함께 선언했다면 한‧중‧일 3국 중 가장 선제적으로 탄소중립을 선언한 국가가 됐을 것이다.

청소년기후행동 김보림 활동가는 "지난해부터 청소년들과 시민들이 목소리 높여 '넷 제로 선언해달라' 요구했는데, 그간 꿈쩍도 하지 않다가 중국과 일본에 질 수 없어 급하게 선언부터 한 것 아니냐"며 "어차피 이렇게 구체적 계획 없이 선언 먼저 하는 거였다면, 일찍 해줬다면 우리나라가 탈탄소에 더 빨리 가까워졌을 수 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환경단체들이 연합한 '석탄을 넘어서'의 배여진 캠페이너는 "뒤늦은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이나마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선언에 그치지 않게 실현 가능한 단기 목표부터 확고하게 세워 달성해야 한다"며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7기 건설중단을 포함해 '2030 석탄화력 퇴출'을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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