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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순성길 심심하다고? 이말 한다면 백악·인왕산 안가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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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순성길 ② 백악·인왕산 구간 

인왕산 정상에 서면 360도로 탁 트인 전망이 펼쳐진다. 낮은 산인데도 전망은 여느 산에 뒤지지 않는다.

인왕산 정상에 서면 360도로 탁 트인 전망이 펼쳐진다. 낮은 산인데도 전망은 여느 산에 뒤지지 않는다.

한양도성 홈페이지에서 별 다섯 개로 난도를 표시한 순성길 구간이 두 개 있다. 백악산(북악산, 342m) 구간과 인왕산(339m) 구간이다. 높이를 보고 비웃었다간 큰코다친다. 두 산 모두 경사가 가파르다. 인왕산은 정상부가 바위여서 밧줄을 붙잡아야 하는 구간도 있다. 한양도성 순성길 낙산 구간과 남산 구간이 심심하다면 이제 백악산과 인왕산 구간에 도전해보자. 지난 23일 아직 단풍이 덜 내려앉은 두 구간을 걷고 왔다.

한양도성 순성길.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한양도성 순성길.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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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산 - 시민 품에 안긴 산

난이도 상(上), 4.7km, 3시간
경복궁과 청와대 뒤쪽에 버티고 선 백악산은 여느 한양도성과 달리 출입 절차를 거쳐야 한다. 창의문·숙정문·말바위 안내소에서 출입증을 준다. 군 시설이 많고 청와대가 가까워서다. 동쪽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걸어야 경사가 완만하다. 길은, 유명 미술관이 모여 있는 성북동에서 시작한다.

백악산은 탐방로가 무척 잘 정비돼 있다. 주중에는 하루 300명, 주말에는 1500명 정도가 방문한다.

백악산은 탐방로가 무척 잘 정비돼 있다. 주중에는 하루 300명, 주말에는 1500명 정도가 방문한다.

성곽 안 오르막길은 경사가 완만해 부드러웠다. 단풍이 슬며시 물든 와룡공원을 지나니 성 밖으로 오래된 가옥이 밀집한 북정마을이 보였다. ‘성북동 비둘기’를 지은 김광섭 시인과 만해 한용운 선생이 살던 동네. 1시간쯤 더 걸어 말바위 안내소에 닿았다. 출입증을 받아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하듯 안으로 들어갔다. 서울의 ‘북대문’ 숙정문을 지나 정상 ‘백악마루’에 닿았다. 경복궁과 세종대로가 훤히 보였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권한 정지 기간을 비롯해 수시로 출입기자와 함께 올랐던 곳이다.

오래된 가옥이 밀집한 성북동 북정마을.

오래된 가옥이 밀집한 성북동 북정마을.

백악마루에서 30분을 더 걸으니 총탄 자국 선명한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1968년 1월 21일, 남파 간첩 김신조 일행이 우리 군·경과 총격전을 벌인 현장이다. 이 사건 이후 백악산은 40년간 일반인의 출입을 막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성곽길 탐방로를 개방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 전면 개방을 목표로 백악산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2019년 신분증 확인 절차를 없앴고 월요일 휴무제를 폐지했다. 내달 1일 북악 스카이웨이에서 정상부로 이어지는 신설 탐방로도 공개할 예정이다.

서울의 '북대문'인 숙정문. 성곽과 연결된 유일한 대문이다.

서울의 '북대문'인 숙정문. 성곽과 연결된 유일한 대문이다.

반세기 동안 꽁꽁 잠겨 있던 덕분일까. 백악산은 한양도성에서도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느끼기 가장 좋았다. 거의 전 구간 데크 로드가 깔려 있어 걷기에도 편했다. 돌고래쉼터에서 만난 이정임(52)씨는 “등산한다는 느낌보다는 시간을 따라 걷는 기분이 들었다”며 “성벽에 쌓인 돌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1968년 남파 간첩과 우리 군·경이 총격전을 벌인 흔적이 백악산 소나무에 남아 있다.

1968년 남파 간첩과 우리 군·경이 총격전을 벌인 흔적이 백악산 소나무에 남아 있다.

인왕산 – 2030의 새로운 놀이터  

난이도 상(上), 4km, 2시간 30분
인왕산 역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걸어야 가파른 오르막길을 피할 수 있다.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꼭 들를 곳이 있다. 조선 시대 문루가 그대로 남아 있는 창의문, 그리고 수많은 건축상을 거머쥔 윤동주문학관이다. 물탱크를 개조한 문학관을 구경하고 국화 향기 진한 시인의 언덕을 둘러보니 기분이 차분해졌다.

인왕산은 2018년 완전히 개방된 뒤 20~30대 탐방객이 부쩍 늘었다.

인왕산은 2018년 완전히 개방된 뒤 20~30대 탐방객이 부쩍 늘었다.

탐방객 대부분이 중장년층이었던 백악산과 달리 인왕산에선 젊은 기운이 느껴졌다. 레깅스 차림의 20대 여성이 특히 많았다. 한 손에 일회용 아이스커피 컵을 든 이도 더러 보였다. 2018년 군 초소 대부분을 철거하고 등산로를 완전히 개방한 뒤 인왕산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인왕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기차바위. 멀리 북한산의 웅장한 산세가 보인다.

인왕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기차바위. 멀리 북한산의 웅장한 산세가 보인다.

쉬엄쉬엄 오르막길을 걷다 보니 정상에 닿았다. 장쾌한 360도 풍광은 백악산을 능가했다. 청와대와 경복궁,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고 단풍 물든 북한산의 웅장한 산세도 장관이었다. 정상에는 외국인도 많았다.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다는 오스트리아인 카트린 보글러는 “알프스에도 이런 풍광을 가진 산은 드물다”며 “대도시에서 지하철을 타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게 가장 놀랍다”고 말했다.

인왕산 정상부는 온통 바위 투성이다. 경사가 급하고 미끄러워 밧줄을 붙들어야 한다.

인왕산 정상부는 온통 바위 투성이다. 경사가 급하고 미끄러워 밧줄을 붙들어야 한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내리막길은 바위투성이였다. 경사가 급한 데다 바위가 미끄러워 설치된 밧줄을 붙들어야 하는 구간도 있었다. 탐방객은 힘들어하기보다 재미있어했다. 산책하듯 편하게 걷는 길만 이어졌다면 되레 심심했을 터이다.

인왕산 선바위를 지나면 코스모스 만개한 성곽길이 반겨준다. 여기서부터는 성 바깥 쪽을 걸어도 좋다.

인왕산 선바위를 지나면 코스모스 만개한 성곽길이 반겨준다. 여기서부터는 성 바깥 쪽을 걸어도 좋다.

선바위를 지나니 성벽 주변에 코스모스가 만개해 있었다. 경사가 완만해 유모차 끌고 산책하는 사람도 보였다. 탐방객 대부분이 성안 쪽을 걸었는데 김도경 서울문화관광해설사를 따라 인적 뜸한 성 밖으로 나갔다.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산수유나무가 줄지어 있었다. 인왕산 구간의 종착지인 돈의문 터에 도착했다. 2017년 복고풍으로 꾸민 ‘돈의문 박물관 마을’을 빠져나오니 하늘이 꽉 막힌 빌딩 숲이 펼쳐졌다.

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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