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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증폭기 된 부동산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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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염태정 기자 중앙일보
염태정 사회부디렉터

염태정 사회부디렉터

사이가 틀어질 수 있으니 가까운 사람과는 정치·종교 얘기는 하지 말라고 한다. 그걸 대체로 지키려 하는데 이번에 그런 게 하나 더 생겼다. 집 얘기,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얘기다. 지난 추석 명절 때 집안 식구들과 집 얘기하다 싸움 날 뻔했다. 필요한 정책이다, 아니다며 여러 곳에서 의견이 갈렸다. 특히 집 한 채 있는 사람한테 내기 어려울 정도의 세금을 매기는 게 맞느냐를 두고선,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좋은 인프라 누린 대가다. 세금 낼 능력 안 되면 팔고 이사가라’ ‘수입은 그대론데 의지와 관계없이 오른 집값에 세금을 그리 때려선 안 된다. 미실현 이익이다’ 같은 얘기가 이어지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어차피 설득되지 않을 거라 험악한 얘기 나오기 전에 자리를 마쳤다. 괜한 얘기 했다 싶었다.

대통령 ‘기필코 전세 안정’에 #위로금·촉진비, 관람료 등장 #집은 한 채만 있어도 세금 폭탄

집은 생활의 터전이자 꿈을 키우고 펼치는 공간이다. 식구들과 편히 살 집 한 채 장만하는 건 보통 사람 대부분이 가지는 꿈이다. ‘구해줘 홈즈’같은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경제적 여유가 있거나, 자신만의 집에 대한 의지가 강하면 직접 지어 무슨 재(齋), 무슨 당(堂)하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조선의 대표적 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은 평생 다섯 번 집을 지었다. 부인을 위해 달팽이 집이란 뜻의 지산와사(芝山蝸舍), 벼슬을 던지고 고향인 경북 안동에 내려와서는 서재 성격의 한서암(寒棲庵), 양진암(養眞庵)을 지었다. 제자들이 늘자 공간 확보를 위해 계상서당(溪上書堂)을 세웠고, 말년엔 지금의 도산서원 안에 작은 거처이자 교실 개념의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지었다 (최효찬·김장권 『집은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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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에서 꿈을 키우고 펼치는 공간으로서 집을 얘기하는 건 사치인 듯싶다. 안정적인 삶의 터전은커녕 싸움의 원인이 되고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전셋집을 보기 위해 아파트 복도에 길게 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전세 물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로 이삿날을 잡지 못하는 일도 벌어진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전세 난민 위기도 화제가 됐다. 원치 않는 1가구 2주택이 돼 세금 폭탄을 걱정한다. 위로금·촉진비·관람료 같은 생소한 단어가 생겨난다. 세입자가 집주인한테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위로금을 요구한다. 적게는 몇백에서 몇천만원까지 간다. 씨가 말라가는 전셋집을 빨리 구해달라고 촉진비를 쓴다. 전셋집을 보여주고 관람료를 받고, 세입자들끼리 ‘권리금’을 주고받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부는 계약갱신청구권제를 포함한 임대차 3법을 통해 주택 시장을 크게 흔들어 놨다. 하지만 문제가 곳곳에서 터지자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정책의 실수와 아쉬움을 말한다. 홍남기 부총리 입에선 “과거 10년 동안의 전세 대책을 다 검토해 봤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세 시장을 기필코 안정시키겠다 한다. 정부는 조만간 또 대책을 내놓을 모양인데 시장 반응은 차갑다. 대책의 횟수는 조롱의 대상이 됐고 뭘 내놔도 믿지 않는 분위기다.

세입자도 어렵지만, 집 가진 사람 부담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여당은 2030년까지 아파트·토지를 비롯한 부동산 공시 가격을 시세의 90%까지 올리겠다고 한다. 저가든 고가든 집 가진 사람이 내야 할 세금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세금 낼 능력이 안 되면 집을 팔고 오랫동안 살던 동네를 떠나야 하는 일도 생긴다. 국민청원 게시판에 ‘시무 7조’ 상소문을 올린 필명 ‘진인(塵人) 조은산’에게 청와대는 “목표는 부동산투기 근절, 실수요자 보호”라고 했다. 증세를 위한 게 결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시중엔 가렴주구·조세저항, ‘앞에서 100만원 주고 뒤에서 1000만원 뜯어가는 정부’ ‘서민 삥 뜯는 정부’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성난 민심에 세금인하 카드가 언급되는데, 재보선용 민심 달래기 냄새가 짙다.

임대차 3법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법안 마련 등 기본 방향에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땜질식 처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실수와 아쉬움을 말하면서도 과도기적 혼란이라며 방향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고집스럽다. 그러는 사이 전세는 씨가 말라가고 월세는 부담이 크다. 한 채라도 집이 있는 사람은 세금이 무섭다. 집을 둘러싸고 세입자와 임대인, 세대 간·계층 간 갈등도 깊어진다.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갈등 증폭기다.

염태정 사회부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