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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성호준의 ‘골프와 사람’

중앙일보

입력

“골프로 배운 인생 선한 영향력 나누고 싶어”

사업 시작하면서 골프 입문해 10여 년 만에 아마추어 최강자 등극
무서운 집중력과 긍정적 인생관이 골프·사업 성공의 밑거름

강권오 ㈜유론 대표는 국내 아마추어 골프계의 최강자다. 2020년 랭킹 1위로 수많은 대회를 휩쓸었다.

강권오 ㈜유론 대표는 국내 아마추어 골프계의 최강자다. 2020년 랭킹 1위로 수많은 대회를 휩쓸었다.

선수 지망 주니어 선수를 제외한 한국의 아마추어 골퍼 최강자는 강권오(54) ㈜유론 대표다. 한국 미드 아마추어 골프연맹 2020년 랭킹에서 그는 626포인트로 1위다. 강 대표는 지난해 대한골프협회(KGA)가 주관한 미드 아마선수권을 포함해 3승을 거뒀다. 2018년엔 2승을 했다. 클럽챔피언십에서도 2016년 베어크리크CC, 뉴코리아 CC(2017, 2018, 2020년)와 태광CC(2018, 2019년) 대회 정상에 올랐다.

‘멘탈 갑’ 강권오 ㈜유론 대표의 긍정의 힘

역시 그가 클럽 챔피언(2020년)으로 있는 수원CC에서 강 대표를 만났다. 아마 고수들은 골프에 매우 진지하다. 필드에 나오면 게임에 몰입한다. 그러나 강 대표는 털털했다. 연습 스윙기를 몇 번 휘두른 후 티샷을 했다. 동반자 레슨을 해주느라 본인의 샷을 건너뛰기도 일쑤였다. 다른 아마 고수와는 결이 약간 달랐다.

강 대표는 전남 함평군 나산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 맏아들인 그가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도왔다. 강 대표는 “체력이 좋은 편인데, 어려서 가축 꼴 먹이고, 고구마 캐면서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철이 든 권오가 어른이 되면 잘살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광주로 유학 갔으나 아버지 건강과 집안 형편이 더 나빠져 대학에 가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자동차 정비 공장에 취직했다가 이것도 아닌가 싶어 다시 학교로 돌아가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그는 연구원으로 냉장고와 자판기 등 백색가전을 설계했다. 연구소에는 다들 명문대 출신이었는데 그 혼자 고졸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열심히 했다. 성과가 좋아 특진을 2번 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산업체 전형으로 전주대학교 야간을 졸업했다.

일도 잘하고 솔선수범해 회사 선후배들이 그를 좋아했다. 대인관계가 좋은 그를 영업 쪽에서 스카우트했다. 강 대표는 “영업이 재미있었다. 그러나 성격상 너무 열심히 일해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2005년에 독립했다. 자신의 전공인 냉장 시스템 기술을 활용한 김치 공장을 경영했는데 큰 수익이 나지는 않았다. 이후 냉장, 냉동 자동제어 시스템을 만들어 백화점과 대형 마트의 식품매장에 납품하고 있다. 백화점 등의 신선 코너는 매우 민감하다. 믿을 수 있는 미국 군납 회사의 장비만 썼다. 강 대표는 더 좋은 제품을 훨씬 더 싸게 공급해 국산화를 이뤘다. 지난해 유론의 매출은 약 120억 원, 직원은 30명 정도다.

골프를 시작한 건 독립할 즈음이다. 3주간 실내연습장에서 레슨을 받았고 이후엔 혼자 연습했다. 골프장에는 2주 만에 나갔다. 드라이버를 어떻게 칠지도 모르는 때였다. 그때 100타를 넘겼지만 이후 세 자리 숫자는 친 적이 없다.

6개월여 지났을 때 86타를 쳤다. 첫 이븐파는 골프 입문 10개월 만이다. 당시 짬뽕과 짜장면 일화가 있다. 고창 선운사 골프장에 갔을 때 캐디가 “스윙이 너무 빠르다”면서 “‘짬뽕’ 하지 말고 ‘짜장면’ 하세요, 짬뽕하면 골프가 잘 안 맞아요”라고 조언했다. ‘짬뽕’하면서 스윙하면 리듬이 너무 빠르고 ‘짜장면’ 하면 템포가 느려져 좋은 스윙을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강 대표는 이날 이븐파, 이후 언더파를 쳤다.

골프 입문 10개월 만에 ‘이븐파’ 달성

강권오 대표는 크지 않은 체격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버로 300야드(약 274m)를 날리는 장타 선수다.

강권오 대표는 크지 않은 체격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버로 300야드(약 274m)를 날리는 장타 선수다.

그의 최저타는 2018년 9월 강원 홍천의 360도 골프장에서 기록한 9언더파 63타다. 버디 10개, 보기 1개를 했다. 강 대표는 화이트티에서 친 라운드라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블루 티에서는 6언더파 66타다. 공식 대회 최저타 기록은 5언더파 67타다. 2020년 몽베르골프장에서 벌어진 참마루 건설배 등에서 여러 번 쳤다. 홀인원은 두 번 했다.

강 대표의 운동능력은 좋은 편이다. 강 대표는 “다른 스포츠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잘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키 169㎝인데 장타다. 파 5홀에서는 300야드 정도를 쳤다.

그는 “골프 입문 후 몇 년간 매일 새벽 1시간 30분씩 연습을 했고, 늘 공 잘 치는 사람과 어울렸다. 내기하면 돈을 잃었지만, 필드에서 상급자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려 했다”고 했다.

한 달 평균 라운드 횟수는 15회 정도다. 아마 고수치고는 적은 편이다. 요즘은 연습을 많이 하지 않는다. 골프보다는 어머니가 있는 함평에 내려가는 걸 더 좋아한다.

미드 아마추어 골퍼들의 열정은 대단하다. 연습장과 헬스클럽, 골프 코스를 오가며 24시간 골프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강 대표는 골프 시작 후 첫 3주 이외에는 특별한 레슨을 받지 않은 독학이다. 그런 강 대표가 미드 아마추어 일인자가 된 비결은 뭘까.

그는 “평소에는 나와 실력이 비슷하거나 혹은 약간 나은 골퍼들이 있다. 그러나 경기에 나가면 내가 이긴다”고 했다. 그는 중요한 대회에서는 평소보다 거리가 더 나간다. 드라이버는 15~20m 더 멀리, 더 똑바로 친다. 아이언 거리도 늘어난다. 뛰어난 선수는 중요한 순간 아드레날린을 발산해 더 강한 힘을 낸다. 강 대표는 “중요한 대회에서는 평소에 못 치던 샷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긴장된 상황을 즐기고 더 집중력을 발휘한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다른 선수들처럼 쉬운 슛을 놓치는 경우가 간혹 있었지만 챔피언 결정전 1점 차 시소 승부에서 던진 결승 슛을 거의 실수하지 않았다. 타이거 우즈도 답답하게 경기하다가도 승부가 걸린 중요한 순간, 꼭 넣어야 하는 퍼트는 반드시 넣는 패턴이 전성기 내내 계속됐다.

잭 니클라우스도 비슷하다. 고교 시절 그는 농구 선수로 오하이오 주 대표에 뽑혔는데 “경기 막판 상대가 파울 작전으로 나올 때 나에게 파울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대부분 선수는 중요한 순간엔 패배의 책임을 질 것이 두려워 자신에게 공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니클라우스는 오히려 좋아했다. 햇병아리 프로이던 1962년 마스터스에서 당시 슈퍼스타 아널드 파머와 연장전 일화도 오래 회자한다. 파머는 연장전을 앞두고 라커룸에서 상금을 반씩 나누자고 니클라우스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 그런 관행이 있었다. 그러나 니클라우스는 파머의 제의를 단호히 거절했고 우승했다.

강 대표는 미드 아마계에서 ‘멘탈갑’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미드 아마추어 관계자들은 “워낙 큰 경기에 강하기 때문에 경쟁자들은 강 대표를 두려워한다”고 했다. 전성기 타이거 우즈가 그랬다. 강 대표는 “평소 언더파를 치던 사람들이 나와 치면 무너지기도 하기 때문에 경기에서도 말을 걸고 친절하게 하려 한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두려움도 없다. “페어웨이가 좁은 홀에서 드라이버 대신 아이언으로 도망가지 않는다”고 했다. 설령 공이 OB가 나더라도 금방 잊는다. 강 대표는 “나는 긍정이 100%가 아니라 500%다. 내가 가진 것 100개 중에서 90개가 사라지고 10개가 남아도 나는 감사한다”고 했다.

기억력이 비상하다. “어떤 거리, 어떤 라이 상황이 되면 이전에 비슷한 상황의 샷들이 기억나고 이를 재현한다”고 말했다. 나쁜 건 빼고 좋은 것들만 기억한다. 기억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는 “나빴던 샷들은 별로 기억하지 않는다. 생각해 내려면 나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웃었다.

눈앞의 공에만 집중하는 승부사 기질 가져

강권오 대표는 골프를 통해 인생의 참다운 행복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강권오 대표는 골프를 통해 인생의 참다운 행복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강 대표는 “홀은 알지만 코스는 잘 모른다”고 했다. 일단 어떤 홀에 들어가면 그 홀의 디테일까지 기억하지만 막상 다음 홀이 뭔지, 티잉그라운드가 어디인지 잘 모른다고 했다. 현재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골프에 딱 맞는 뇌를 가졌다.

아시아의 유일한 남자 메이저 골프대회 챔피언인 양용은도 비슷하다. 양용은이 2000년대 초반 일본 투어에서 뛸 때다. 경기 후 한국 선수들은 함께 식사하면서 라운드 복기를 하곤 했다. 프로선수들은 모든 샷의 거리, 방향, 잔디 결 등을 세세하게, 또 빠르게 복기할 수 있다. 양용은은 그렇지 않았다. 그와 함께 일본에서 뛴 한 선수는 “다른 선수들이 복기로 한 라운드를 다 돌 때 양용은은 첫 번째 그늘집 정도에 있다”고 했다. 양용은은 길게 보지 않고 한 샷 한 샷에만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전체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골프에서 너무 많은 계산은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골프계에서는 ‘paralysis by analysis(분석에 의한 마비)’라는 말을 쓴다. 너무 많은 생각이 몸을 마비시킨다는 것이다. 양용은이 타이거 우즈에게 첫 메이저 역전패의 수모를 안기고 우승한 이유는 단순하게 생각해서일 수도 있다. 일반적인 선수라면 우즈가 다음 파 5홀에서 버디를 할 거니까 내가 여기서 먼저 버디를 꼭 해야 한다고 앞서 생각하다가 혼자 무너져버리는 일이 흔하다.

머리도 좋다. 그는 “3시간 공부하고 요트 조종 면허를 땄다. 800문항이 있는 문제지를 봐야 했는데 시간이 없어 홀수 문제만 풀어보고 합격했다. 필요하면 고도의 몰입이 생긴다”고 했다. 그가 골프규칙을 관장하는 R&A의 레벨 2에 합격한 건 놀라운 일이다. 골프 규칙 시험은 고시처럼 어렵다는 얘기가 있다. 강 대표는 딱 사흘 공부하고 86점을 받아 통과했다고 한다.

강 대표는 나쁜 습관이 없다. 그는 술과 담배, 커피를 안 한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술 해독 능력이 뛰어나다. 소주 한 병 먹고 음주 측정해도 기준치 이하로 나온다. 그러나 정말 특별한 일이 있지 않다면 마시지 않는다. 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시고 일찍 돌아가셔서 나는 가족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다. 자판기를 설계하느라 하루 커피를 30잔씩 마셨다. 그러다 어느 날 하루아침에 끊어버렸다. 뭔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한다.” 골프에도 나쁜 습관이 없고 생겨도 바로 없앨 수 있다. 그는 또 연습하지 않아도 골프 코스에 나가면 뭔지 모를 감각이 살아난다고 했다.

일반 골퍼들을 위한 조언으로 강 대표는 “골프 스윙에서는 리듬이 제일 중요하다. 거기서 힘의 응집력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고 했다. 그는 샷을 하기 전 2번 부드럽게 스윙하면서 리듬을 느낀다. 그에게 지금은 짜장면 아니라 짬뽕이다. 실력이 늘어 15년 전에 캐디에게 배웠던 짜장면 대신 짬뽕 리듬을 쓴다.

골프를 하면서 사업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에서는 골프에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 대표는 “골프가 사업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골프 실력만 좋은 게 아니라 동반자 배려를 잘하기 때문에 사업 파트너들이 그와 함께 라운드하고 싶어 했다.

강 대표는 “남들이 다 욕을 하는 사람이라도 나는 뭔가 그사람의 장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나쁜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캐디가 불성실하고 일을 잘 못 해도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

그가 회원으로 있는 클럽에서는 좋은 캐디만 만난다. 강 대표가 편하게 해주고 팁도 후하게 주니 경험 많고 잘하는 캐디들이 경쟁적으로 나온다. 일반 골프장에서는 무성의한 캐디를 만날 때가 있지만, 그냥 그런 인연인가보다 생각한다.

함께 라운드하다 보면 속임수를 쓰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규칙에 정통한 그는 누가 속이는지 뭐가 규칙에 위반되는지 안다. 그러나 그는 알까기를 하더라도 면전에서 얘기하지는 않는다. “마음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대신 다음에 그와 라운드를 다시 하지는 않는다. 그가 규칙을 공부한 건 미드 아마추어 연맹의 임원이고 상위권 선수이니 책임감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정직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리고 싶어 한다.

사업 일선 물러나 어려운 이웃 도우며 보람 찾아

강권오 대표는 골프 실력 향상의 노하우를 현재에 몰입하는 집중력과 대담함을 꼽는다.

강권오 대표는 골프 실력 향상의 노하우를 현재에 몰입하는 집중력과 대담함을 꼽는다.

미드 아마추어 고수들은 대개 부자다. 골프에 시간을 투자할 정도로 탄탄한 기반을 가진 사람들이다. 강 대표의 재산은 다른 챔피언들과 비교하면 적다. 그러나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지금은 영업, 대외업무만 하고 자금 등 회사 내부 일에서는 손을 뗐다. 그는 “일을 하면 돈 많이 벌 수 있지만, 욕심을 내고 싶지 않다. 몸 관리 잘하고 사람들과 잘 지내고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사업은 3년 전부터 동생이 맡아 한다. 동생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직원에게 맡겼을 거라고 한다. 그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성실하게 살아온 인물이다. 그런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긴 일이 마음에 들까. 강 대표는 “직원들을 100% 믿는다. 믿는 만큼 일하더라. 물론 100% 만족하지는 못한다. 내가 하는 것의 50%만 하면 만족한다. 다른 사람이 내가 한 만큼 하기를 바라서 갈등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골프에 미치지 않았다. 고향에 교회와 교육센터를 지었다. 5월이면 어버이날 행사로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난한 사람들 결혼도 돕는다. 젊은 시절 가난하고 바쁘게 살 때도 중증 장애인 목욕 봉사 등을 거르지 않았다. 중앙일보 자원봉사 축제에서 상도 받았다. 강 대표는 “자판기 커피 한 잔도 안 사던 직장 동료가 150만원 월급 중 50만원을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내는 것을 보고 세상엔 좋은 사람도 많고 살기 좋다는 생각을 했다”며 웃었다.

강 대표는 “골프가 많은 가르침을 주고 골프로 인해서 행복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같은 맑은 가을 날씨에 골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아무것도 없이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이 서울에서 성공해 행복하다. 그게 다 골프가 있으므로 인해 생겼다. 골프가 행복을 주는 도구다.”

※ 성호준 골프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일보 사회부와 스포츠부를 거쳐 골프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중앙SUNDAY. 네이버에 ‘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골프 진품 명품’ 등의 칼럼을 연재했다. JTBC골프 채널에서 [JTBC골프 매거진] [LPGA 탐구생활] 등을 진행했다. 저서로 [타이거 우즈 시대를 사는 행복][맨발의 투혼에서 그랜드슬램까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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