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우울증 극복 수기 공모전] 나 자신과 함께 살아가기

중앙일보

입력 2020.10.28 11:55

여성 우울증 극복 수기 시상식

여성 우울증 극복 수기 시상식

9월 어느 날, 즐겨보는 신부님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우연히 우울증 극복 수기 공모전을 보게 되었다. 내가 겪었던 그 극복의 경험을 한번 정리해보는 것이 나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고, 우울증을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나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글을 시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과연 내가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요즘 뉴스에서 접하는 코로나로 많이 힘들어진 사람들의 기사를 접하면서 과연 내가 저 상황에서도 “우울증은 극복할 수 있어요!”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으로 쓸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 너무 괴로웠던 그 우울증과 까맣기만 하고 앞이 안 보이는 것 같은 우울증의 터널에서 나온 경험이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써보려고 한다.

대상 남혜경

나에게 우울증은 한 번만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첫 우울증은 대학교 입학 후 시작되어 2년 정도 머물렀고,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은 이 녀석은 약 10년 후 내가 회사에서 현장 업무를 끝내고 그토록 고대했던 본사 업무를 시작할 때 나타났다. 그리고 또 그 우울증의 터널에서 나와서 몇 년간 안심하고 있기가 무섭게, 둘째 출산 3개월 후 쯤, 1년간 투병하시던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나타났다. 그때마다 주변의 누군가는 우울증의 터널 속에서 꼼짝 못하고 있는 나에게 ‘지금 네가 가진 것을 보면 얼마나 감사할 게 많은지 그리고 너가 이런 우울증에 걸릴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사실 그냥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객관적인 기준으로 남들보다 좋은 환경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당시 나는 너무 숨 쉬는 게 힘들 정도로 괴로웠다.

아직도 우울증이 심했던 시기의 어느 봄날을 잊을 수 없다. 세상은 파릇파릇 연두색 새싹과 여러 꽃봉오리들이 꽃을 막 피우기 시작하는 그 설레이는 봄, 우울증이라는 어떤 투명막이 내 주변을 한 겹이 둘러싸고 있어서 그런 설레임에 대해 느낄 수도 없었고 그런 봄의 설레이는 분위기는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겨울을 지나 생명이 움트는 봄이 오는데 나 혼자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우울증을 겪을 때 나의 모습을 돌이켜 보면 공통적인 것들이 있다. 눈물이 아예 나오지도 않을 정도로 감정이 마비가 되고, 평상시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도 나를 괴롭게 만드는 소음이 되어 버리고, 누워만 있고 싶고, 잠 자는 것도 무서웠다. 깊게 자기 못하고 10분 간격으로 거의 악몽으로 자다 깨고를 반복하고 어두워지면 밤이 오는 게 무섭고, 밝아지면 해가 뜨는 게 무서웠다. 주변의 모든 일들이 위협적이게 느껴지고 나에게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해주는 신호 같았다.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싫고 그냥 혼자만 있고 싶었다. 나는 가족에게 짐만 되고 것 같고 죽고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진짜 죽어도 괴로운 게 끝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곳에 웅크리고 그냥 얼굴을 무릎 속에 파묻고 숨고만 싶었다. 이렇게 하루 하루가 힘든데 어떻게 살지 막막했고 앞날은 보이지가 않고 어둡기만 했다. 내가 너무 싫고 그런 나를 없애고 부정하고 증발해 버리고 싶었다. 아주 일상적인 일들이 나에게는 너무 버거운 일이 되어 버렸다.

돌이켜 보면 우울증이 발병된 그 세 번의 상황은 비슷하다. 기대하고 다른 현실, 남보다 잘나 보이고 싶은 욕구의 좌절, 너무 많은 타인에 대한 의지, 내가 나에게 끊임없이 주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내 스스로 무시한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의 누적.

그 결과로 나타난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내가 한 노력들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어이 없는) 노력1) - 명상, 기치료, 퇴마, 천도제
(효과 없는) 노력 2)  - 자기계발서 탐독
(어느 정도 효과 있었던) 노력 3)- 한약, 맛사지, 침치료, 심리상담, 신경 정신과 약,
(항상 해도 좋은) 노력 4) - 걷기, 요가, 좋은 식단, 규칙적인 일과, 기도, 여행

처음에는 신경정신과에 간다는 자체가 괜히 두려웠고 인터넷에 검색되는 양약 부작용에 대한 사람들의 댓글에 지레 겁먹어서, 병원에 가지 않고 고칠 수 있는 방법을 나름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고 (지금 돌이켜 보면 정신 나간 행동이지만) 그때에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첫 줄에 열거한 그런 이상한 곳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한약도 어느 정도 도움을 받았지만 세 번째 우울증이 왔을 때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고, 세 달동안 불면증에 시달린 뒤에야 내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 아이들을 위해서 가야겠다는 의지를 내어 신경정신과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복용 후 2년이 지났을 무렵 약을 서서히 줄이고 지난 봄부터는 약을 전혀 먹지 않고 내 스스로 감정을 잘 돌보아 가며 지금껏 지내고 있다. 누군가 기본적인 일상 생활을 못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이라면, 이상한 검증되지 않은 길을 헤매지 말고 신경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길 바란다. 나 같은 경우 정신과 선생님이 운동을 중요시하는 분이었고, 약만 처방하시는 분이 아니었기에 더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그렇게 우울증이 심하지 않다면 좋은 심리 상담사를 만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 상담 선생님을 통해 처음으로 내면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항상 인정받고 싶어하고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고, 아빠에 대한 무서움으로 6살에서 멈춰버린 겁에 질린 아이를 안아주고 괜찮다고 토닥여주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우울증을 겪으면서 느끼는 것은 남이 뭐라고 안내해줘도 내가 스스로 하지 않으면 우울증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요즘 시중에는 마음에 관한 책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나 또한 우울증을 겪으면서 많은 자기 계발서, 또는 마음에 대한 에세이들을 읽으며 위안을 받기도 했지만, 너무 그런 책들 위주의 편중된 독서는 별로 우울증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결국 비슷한 메시지들이다. 〈내 마음에 귀 기울여줘, 못해도 괜찮아, 다른 사람들의 눈이 아닌 너의 눈으로 너를 바라봐〉

사실, 길이 어디라고 알려주는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해도 결국 그 길을 직접 갈 때만 내가 진짜 느끼고 알 수 있기에 너무 그런 마음 다루기 책들을 읽는 것도 은근히 중독만 되고 정작 우울증에서 나오긴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힘들었던 어느날, 나도 그런 종류의 책을 책상에 쌓아두고 읽으려던 참이었는데 놀러온 동생이 나에게 말했다.

“누나, 언제까지 그런 책들을 붙들고 있을 셈이야, 차라리 힘들면 성경의 시편 구절을 읽거나,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어!”

그때 처음으로 내가 이런 책들을 읽으며 우울증이 나아지는게 아니라 여기에 중독되어 있구나 느낀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내가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정말 도움이 된 것들은 “요가, 정성이 담긴 음식, 그리고 기도(신앙),가족의 사랑”이다. 우울증을 겪게 되면 나타나는 증상 중 끊임없이 머릿속에 걱정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지지도 않을 일을 상상하거나 과거에 있었던 일을 후회하며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데 이런 부정적인 생각의 흐름을 끊을 수 있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이 요가다. 명상은 오히려 (내가 잘못해서인지) 나를 더 밑으로 가라앉게 했다면 요가는 머릿속의 쉴새 없는 잡음을 잠시 MUTE 상태로 해주고 몸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고 호흡을 느끼게 해주었다. 또한 우울증이 심했을 때마다 엄마가 항상 정성껏 음식을 더 신경 써서 해주시곤 했는데 그런 사랑이 담긴 음식을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사랑을 느끼고 그러한 엄마의 사랑이 무뎌졌던 심장에 생기를 주는 듯 했다.

그런 엄마가 암투병 후 돌아가시기 몇 일 전에 세례를 받으시면서 나도 신앙을 갖게 되었는데, 신앙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열심히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하느님께 맡김을 알게 되면서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신앙이 생기면서 내가 이 인생에서 가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우울증을 극복했다 해도, 남들보다 감정에 예민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내 자신을 잘 안다. 그리고 몇 번을 겪었더니 우울증이 오기 전 증상들에 대해 잘 인지하는 것 같다. 먼저 시작은 반복적인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내 스스로 조절을 못할 정도로 뇌가 활동을 못하는 느낌이 나고 몸은 무기력해진다. 그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해야할 중요한 일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우울증이 심해지기 전 증상으로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누워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는데 그것도 일부러 몸을 더 움직이고 밤에 잠자리에 들 때를 제외하고 눕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우울증 예방을 위해서라도 정말 중요한 것이 규칙적인 운동이고, 그러한 운동 중에서는 언제 어디에서도 할 수 있는 ‘걷기’가 최고인 것 같다. 부정적인 감정에 치우쳐 마음이 가라앉을 때에는 몸도 같이 가라앉는 것 같다. 그럴 때 걸어주고 심장을 뛰게 하면 부정적인 감정에 치우치려던 마음이 다시 균형을 잡게 되는 것 같다. 또, 부정적인 마음으로 아무것도 하기 싫고 가만히 있고 싶어지면서 무기력감이 꿈틀거릴 때는 일부러 더 몸을 움직인다. 요리를 한다던지 집안을 청소한다던지 해서 몸을 움직여주고, 또 이렇게 요리를 해서 뭔가 만들고 집안을 청소해서 정리가 되는 결과를 보면 작은 결과지만 성취감을 느끼게 되어 부정적인 감정에서 긍정적인 감정으로 방향을 틀게 해준다.

누구나 다 마음에는 부정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들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에는 부정적인 감정들에 한번 치우치게 되면 점차 감정의 저울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어느 순간 부정적인 감정으로 확 기울어 버린다는 특성이 있어서 이제는 그 저울을 잘 관찰하고 ‘감정 저울’의 중심을 잘 잡고 관리하는 것이 나에게 무척 중요하다. 한번 치우쳐버린 저울의 중심점을 되돌리는데는 시간과 노력이 상당히 필요하지만, 살짝 갸우뚱 거리는 초반에 중심을 잘 잡아주는 것은 쉽기 때문이다.

한때 너무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한적이 있었다. 그런데 우연찮게 그 시기에 차 사고가 났는데, 평상시에 높은 속도로 달리는 00대교 위에서 순식간이었다. 다행히 나도 상대방 차도 높은 속도가 아니어서 아주 경미한 사고에 그쳤다. 사고 수습을 위해 갓길로 차를 이동하고 쌩쌩 달리는 차들을 보면서 사람 목숨을 정말 한 순간에 잃을 수도 있는 이곳에서 나는 죽기보다 살기를, 잘 살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울증은 정말 죽고 싶다기보다 정말 다시 잘 살고 싶다는 일종의 표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왔던 사고방식이나 생활 방식으로는 안되기 때문에 고쳐야 한다는 큰 표시, 삶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마음이 보내주는 큰 표시 말이다.

정말 너무 지독하고 나쁜 녀석이라고만 생각했던 우울증, 그래도 그 녀석들을 겪으면서 정말 나랑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을 위해서 더 우울증을 극복하고 잘 살고 싶었다. 우울증이 있는 상태에서 아이들을 보는 것은 너무 미안했고 아무것도 모르고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아이들에게 그런 우울함을 심어주는 것 같아 너무 괴로웠다. 그래서 우울증을 극복해야만 했고 지금도 우울증이 또 다시 스물스물 다가올 것 같으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더더욱 신앙에 의지하게 된다.

아이들이 없었으면 우울증에 내 인생을 내주고 그냥 멈춰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우울증을 겪어본 사람으로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극복하고 자기와 함께 삶을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엄마들- 꼭 우울증을 극복하고 아이들과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기도한다. 부디 용기를 내어 우울증을 극복하길.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소설 〈데미안〉

나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했고 알을 깨뜨리고 태어났다.
우울증이라는 고통이 있었지만.

한 세계를 깨뜨리기 위해 고통 속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박차고 힘껏 나와 또 다른 세계를 맞이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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