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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우울증 극복 수기 공모전] 아내를 구한 남편

중앙일보

입력

여성 우울증 극복 수기 시상식

여성 우울증 극복 수기 시상식

“구자엽의 아내가 우울증이라 자엽이가 고생깨나 한다던데…….”

최우수상 이윤재

나이 칠십이 가까워오자 가끔씩 친구들을 만나 술 한 잔 할라치면 누가 암에 걸렸고, 누구 아내가 우울증이고, 누가 무슨 수술을 했고 하면서 주변 친구들 상황이 들려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그런 일이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인 줄 알고 무심하게 넘기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내가 이상해졌다.

“아니 왜 안자고 나와 있는 거야?”

새벽 한 두시쯤 갈증이 나 물을 마시려고 거실로 나와 보면 아내는 불도 켜놓지 않고 소파에 쭈그려 앉아있었다. 그렇다고 텔레비전이라도 켜놓고 본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이처럼 어두운 거실에서 혼자 앉아 있으니 내가 놀래기 일쑤다. 그런 일이 잦아지다 보니 바로 그게 우울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여보, 병원에 가 봅시다.”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가 의사의 말을 들었더니 노인 우울증의 시작이라고 했다.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짧은 지식으로 우울증이란 스스로 극단적 선택까지 한다고 알고 있었기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면서 의사는 노년기의 우울증은 대개 외로움과 허탈감 그리고 무기력감에서 발생한다고 했다. 한참동안 우울증 발생 원인에 대해 설명하더니 의사는 약을 지어주었다. 난생 처음 정신과병원에 가봐서 그런지 병원 시스템이 낯설었다. 보통은 의사가 진단 결과 처방전을 주면 약국으로 와서 약을 짓는데 정신과는 병원 안에서 직접 약을 지어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의사가 한 말인 우울증의 시작이란 말을 곱씹어 봤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의 하루 궤적을 그려봤다. 우리 부부는 20년째 각방을 쓰고 있다. 애들이 서울로 유학을 가면서부터 시작된 각방 생활은 혹시나 아내를 외롭게 하지나 않았는지 되뇌어 보기도 했다. 예전에는 아내가 일어나 혼자 아침을 해도 도와주거나 말을 걸지도 않았다. 아내는 당연히 밥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취급했다. 아침을 먹으면 각자가 직장으로 출근을 했다. 퇴근을 해서도 우리 부부는 별 말이 없었다. 그러니 말로만 부부지 대화를 통한 다정다감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애들이 서울로 유학을 가기 전에는 밝고 명랑하게 생활했다. 그런데 나이 60에 명예퇴직을 한 후부터 말이 줄더니 5년 동안 우울증 증세를 보이더니 65세로 오늘을 맞은 것이다. 나의 예상으로는 명예퇴직을 하고 난 후 5년 동안 허탈감에 무력감까지 몰려왔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직장을 잃어 갈 곳이 없다는 허탈감.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는 고독감이 아내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으로 판단되었다. 여러 날 약을 먹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보통 낮에는 예전 직장에 다닐 때와 별반 다르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밤에는 잠을 잘 자지 않고 어떤 때는 가끔씩 밖으로 나가 한참을 헤매다 들어오곤 했다. 나는 우울증의 원인과 치료를 위해 정신과 의사와 1:1 맞춤으로 상의를 했다. 거기다가 나는 정신과 책을 읽고 인터넷을 뒤져 많은 지식을 쌓았다. 우울증에 대해 알아야 옆에서 아내한테 도움을 주고 치료에 매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이를 먹어 생긴 우울증의 원인은 크게 사회심리학적 요인과 생물학적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우울증의 사회 심리학적 요인으로는 3고(三苦)를 들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병고(病苦), 빈고(貧苦), 고독(孤獨)이 노인 우울증의 심리적 요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름 우리 부부를 곰곰이 분석해 봤다. 내 아내는 어디 아픈 곳은 없다. 있다고 해야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소화를 못 시켜 배가 아픈 것 말고는 특별히 아픈 곳은 없다. 또 운동을 많이 하면 무릎이 아프다고 했으나 이 역시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일단 병고가 원인은 아닌 듯했다. 가난 역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연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그런대로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그렇다면 고독으로부터 우울증이 찾아온 것이 분명한 것 같았다. 아내는 나와 함께 같은 방에서 잠도 자지 않고 같이 여행을 가 본 적도 없으니 늘 혼자였다. 나는 낚시가 취미라서 시간만 나면 밖으로 돌았다. 아내의 성격은 소극적이어서 다른 사람과 어울림도 그리 많지 않았으니 늘그막에 사람이 그리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드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교장으로 퇴직을 했기 때문에 심리 상담을 전공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회심리학은 좀 이해할 수 있었다. 생물학적 요인으로는 신경생화학적 요인과 신경해부학적 요인을 들 수 있단다. 신경생화학적 요인으로는 세로토닌과 같이 감정 조절에 작용하는 신경전달 물질의 저하 때문이라고 한다. 즉 감정을 조절하는 뇌 회로가 존재하는데 이 회로 부위에 혈액과 영양소를 공급하는 모세혈관이 막히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고 했다. 이는 내가 알 수 있는 영역은 아닌 의사들의 영역인 듯했다. 대부분의 경우 노인의 우울증 원인은 이런 사회 심리적 요인과 생물학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함으로써 발병한다는 것이다.

이런 노인 우울증은 우울감이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 불면과 불안증상이 심하다는 것이니 이는 맞는 듯하다. 나는 아내의 불면에서 우울증을 발견했으니 그나마 드러났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노인은 두통이나 소화불량 등 신체증상의 호소도 우울증이라고 했다. 이처럼 노인우울증의 경우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특징적이지 않기 때문에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고 한다. 의사로부터 노인 우울증에 대해 설명을 들은 나는 딱 한 가지 밖에 의심할 수가 없었다. 바로 사회심리학적 요인의 고독(孤獨)이 아내에게 우울증을 가져다 준 주범이었다.

“노년기 우울증은 치매로도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의사의 이 한마디는 나를 경악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치매가 무엇이던가? 바로 전 가족을 벼랑 끝으로 몰아 지치게 하는 병이 바로 치매가 아니던가? 나는 병원치료만으로는 우울증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 다른 방법을 구사했다. 우선 나는 아내의 사회 심리학적 요인의 고독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아내와 제일 친하게 지냈던 조성빈이 엄마한테 구원을 요청했다. 조성빈의 엄마는 예전 이웃에서 함께 산 사람으로 여자지만 성격이 호방하고 사교적이며 외향적이다. 그녀는 62세로 나의 아내한테 언니라고 부르며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으나 우리가 역세권으로 이사 오면서 관계가 뜸해졌다.

“옛날 지내던 일을 생각해서라도 좀 도와주세요.”

나의 부탁을 들은 그녀는 아내의 우울증을 외면하지 않았다. 아내와 친하면서 아내와 함께 노래교실에 등록을 했다. 그리고 함께 다니며 노래도 부르고 사람도 사귀면서 지냈으니 일단 겉으로는 성공을 거둔 듯했다. 한마디로 역동적 정신치료를 위해 대인관계를 맺고 생활하는데 우선을 두었다. 약물치료는 감정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농도를 정상화시켜 주는 항우울제를 주로 투여하게 되었다.

“그 약은 부작용은 없는 것입니까?”

나는 예로부터 정신과 약을 먹게 되면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고 들은 말이 생각났기에 의사한테 물었다. 나의 물음에 의사는 예전에는 종종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했으나 요즘 약은 절대 부작용은 없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그런데도 찝찝함은 영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다.

“언니를 제가 다니는 절에 데리고 다니면 어떻겠어요?”

성빈이 엄마는 동적인 노래교실과 정적인 절 두 가지를 동시에 적용해 보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종교 활동이기 때문에 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기꺼이 허락을 했다. 사람이 가장 어려울 때 종교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게 노래교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절에서 기도를 드리다보니 아내한테 차츰 변화가 생겼다. 말수도 늘고 웃음도 되찾았다. 노인 우울증은 치료 시작 후 1-2주가 지나면 잠을 잘 자게 되고 식욕이 호전되기 시작한다고 한다. 즉 한 달을 전후해서는 우울한 기분도 해소되는 등 주요 증상들이 호전되어 간다고 한다. 다만 증상이 해소된 후에도 일정 기간 치료를 지속해주지 않으면 증상이 재발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선은 아내가 가정생활에서 시선이 나를 향하도록 배려했다.

“오늘부터 식사준비는 내가 할게. 그리고 설거지도 내가 하고…….”

그러면서 내가 앞치마를 매고 식사준비를 하자 아내는 배를 잡고 웃었다. 결혼한 지 40년 만에 처음으로 주방에 섰으니 어설픔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아내가 웃을 수밖에……. 그런 접촉과 웃음이 아내의 우울증을 치료한다니 내가 의식적으로 행동하기도 했다. 아내가 음식을 준비할 때면 백허그도 해주며 관심을 나타내 주기도 했으니 아내의 변화는 눈에 띠게 좋아졌다.

“노래교실에서 배운 노래 좀 해 봐.”

그러면 아내는 무척 겸연쩍어했다. 그러면서도 청소를 할 때나 밥을 할 때 노래를 흥얼거렸으니 예전에는 찾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거기다 더해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미스 트롯’을 보며 따라 불렀으니 예전의 명랑함을 다시 찾은 것이다. 요즘은 ‘보이스 트롯’에서 상을 받은 가수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빼놓지 않고 보며 노래까지 따라 불렀다. 그런 모습을 보면 일단 외형상으로는 예전 모습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신과에서 받아다 먹는 약에 의심이 갔다. 혈압약이나 우울증 약은 중독성이 있어서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하며 정신과 약을 먹으면 끝내는 바보가 된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에 의사한테 물었다. 그러자 의사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우울증은 적기에 완전하게 치료하지 않으면 재발할 수 있으니 약을 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재발의 위험이 없다고 판단되면 의사 자신이 투약을 중단해도 금단증상은 없다고 했다. 또 과거에 많이 쓰이던 항우울제 중에는 진정작용이 강해서 약물을 복용하면 낮에도 졸리고 멍해지는 부작용이 있었으나 현재의 약물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의사가 자신에 차 이야기를 하기에 약은 계속 복용하기로 결정했다.
노인 우울증환자에게 가족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한다. 환자가 우울증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울증에 걸렸다고 해서 성격의 나약한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능력이 뒤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환자에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 나는 그런 면에서 주의를 기울였다.

“내가 그동안 당신한테 소홀히 해서 당신이 많이 외로웠던 거야.”

이 말 한마디가 아내를 흔들리지 않게 지탱해 주었다. 반면 우울증에 걸리고도 편견이 두려워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한다. 우리는 정신과 병원에 다니면 주위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기 일쑤다. 이러한 주위의 편견이 우울증 치료를 늦추는 원인이 되기에 우선은 나 스스로의 편견을 없애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그리고 우울증의 치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나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을 기분을 좋게 만드는 노래교실에 참여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성빈이 엄마를 붙잡고 늘어진 것이다. 혼자서만 노래교실에 다니지 말고 아내와 함께 노래교실에 다녀달라고……. 아내가 많은 사람을 사귀게 될 때까지 만이라도 도와달라고…….

나 역시 아내가 다니는 사찰에 함께 갈 때도 있었다. 그리고 성빈이 엄마 입회하에 비구니 스님과 아내 문제를 상의했다.

“공양간에서 일도 시켜보고 데리고 함께 기도도 해볼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비구니 스님의 대답이었다. 세등선원이라고 대전시 도심에 위치한 비구니 사찰이었기에 아내의 우울증 치료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렇다고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었다. 노래교실은 나름대로 회비라는 것이 있었지만 사찰에는 그런 것도 없었다. 나는 비구니 스님들이 너무 고마워 돈이라는 물질로 성의 표시를 했으나 끝내 받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성빈이 엄마께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성빈이 엄마와 비구니 스님은 같은 여자이기에 흉허물이 없을 것 같았기에…….

이제 가정에서 남편이 한 방에서 잠을 자니 기쁘고, 조리에 관심을 가져주니 아내가 달라졌다. 아내의 어려움을 충분히 들어주고 공감해주니 항상 즐거워했다. 노래교실이나 사찰활동 등 여러 가지 사회활동에 참여하니 자신감이 생겨 아내가 적극적으로 변했다. 거기에다 병원에도 같이 다니니 무척 행복해 했다. 이제 아내는 잠도 잘 자고 늘 바쁘다. 아침을 먹은 후 절에 간 후 공양간에서 스님과 신도들이 먹을 음식을 조리한다. 그리고 기도시간이 되면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기도를 드린다. 사찰에서 점심을 먹고 한참 수다를 떤 후에는 노래교실로 출근을 한다. 그리고 신나게 노래를 부른 후 집으로 오니 이제는 우울증이라는 샛길로 빠질 시간이 없다. 그리고 집에서도 남편이 요리를 해 대접하니 고독이라는 단어조차 새로운지 늘 흥이 넘친다. 이렇게 노년에 불어 닥친 우울증을 치료했으니 새삼 꿈을 꾸는 듯하다. 내가 경험한 우울증은 본인 혼자서 치료를 하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의 경험상으로 보면 가족도 도와야 하지만 동적으로 움직이며 흥을 돋울 수 있는 노래교실이 안성맞춤이다. 그런데 그곳에 가려면 여자의 힘이 필요하니 그런 사람을 물색해야 한다. 내가 성빈이 엄마를 찾았듯이……. 그 뿐이 아니다. 정적으로 마음을 수양하며 기도할 수 있는 종교에 입교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런 일 역시 도와줄 이웃이 필요한 것이다. 내 경험상 이런 일 말고 약을 복용하는 것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흔히 우리는 우울증을 말하라면 인지를 펴고 머리에 대면서 빙빙 돌린다. 정상인 사람이 생각할 때는 별 것 아니지만 환자나 가족이 볼 때는 무척 기분이 나쁘다. 그래서 병원을 기피하고 약을 먹지 않는다. 그러나 우울증은 병은 병이지만 정신이상은 아니다. 그러니 가족과 주위 사람들이 협조해 치유해야 할 것이다. 아내의 병도 나았으니 이제 코로나19만 잠잠해지면 아내를 데리고 해외여행을 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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