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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6·25 연설' 띄우기…그게 'BTS 때리기' 진짜 이유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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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그랬구나…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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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이 풀렸다. 중국의 뜬금없는 ‘방탄소년단(BTS) 때리기’ 말이다. 사건은 이달 초에 시작됐다. 중국 네티즌 일부가 발끈했다. 7일 BTS의 벤플리트상 수상 소감 때문이다. BTS는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양국(한국과 미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왜 중국 희생은 언급하지 않느냐”는 게 중국 네티즌의 불만이었다.

12일 환구시보 홈페이지에 실린 기사. 'BTS의 수상 소감이 중국 네티즌의 분노를 일으켰다'고 돼 있다.[환구시보 홈페이지 캡처]

12일 환구시보 홈페이지에 실린 기사. 'BTS의 수상 소감이 중국 네티즌의 분노를 일으켰다'고 돼 있다.[환구시보 홈페이지 캡처]

문제는 중국 관영언론 환구시보가 이슈를 키웠다는 점이다. 환구시보는 12일 네티즌 반응을 상세히 보도한 기사를 홈페이지 메인에 띄워 중국 내 반(反) BTS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삼성전자·현대차가 중국 BTS 광고를 급히 내렸다. 중국 대형 택배업체 위엔퉁(圓通)과 중퉁(中通), 윈다(韻達) 등은 BTS 관련 제품 배송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중단 이유에 대해 "원인은 우리가 모두 아는 것" 이라는 답만 한국 언론에 전했다.

의아했다.

12일 삼성전자의 중국 온라인몰 BTS 관련 제품에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홈페이지 캡처]

12일 삼성전자의 중국 온라인몰 BTS 관련 제품에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홈페이지 캡처]

네티즌이야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언론과 기업이 일사불란하게 나서 분노를 부추길까. 이해되지 않았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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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증은 23일 해소됐다. 이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설에 답이 있었다. 시 주석은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7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소신을 밝혔다. 골자는 이거다.

"중국의 참전은 미국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는 정의의 싸움이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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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보자. 시 주석의 연설이다.

“1950년 6월 25일 조선 내전이 발발했고 미국은 냉전적 사고를 바탕으로 내전에 무력 개입하기로 결정했다. 위대한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고 중국의 안보를 수호하며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1953년 7월 정전협정은 항미원조 전쟁의 위대한 승리다. 제국주의는 다시 중국을 침략하지 못하게 됐다.”

항미원조, 중국에서 한국전쟁을 이렇게 부른다. 시 주석이 방점을 둔 건 이어진 발언이다.

인민일보는 ’항미원조 전쟁에서 중국인들은 애국주의 기치 아래 합심해 중국의 저력을 확인시켰다“는 대목에서 가장 큰 박수가 나왔다고 전했다. [인민일보 웨이보 캡처]

인민일보는 ’항미원조 전쟁에서 중국인들은 애국주의 기치 아래 합심해 중국의 저력을 확인시켰다“는 대목에서 가장 큰 박수가 나왔다고 전했다. [인민일보 웨이보 캡처]

“위대한 항미원조 정신은 시공간을 넘어 계승돼야 한다. 애국주의의 기치 아래 한마음으로 협력하고 세계가 중국의 힘을 건드릴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세계’라고 포장했으나 실상 가리키는 곳은 하나다. 미국이다. 여기에 42분 연설에서 ‘애국주의’란 말도 6번이나 언급됐다.

"과거 (한국) 전쟁에서 했던 것처럼 우리는 제국주의(미국)와 싸워야 한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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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이번 시 주석 연설의 핵심이다. 화웨이·틱톡 제재 등으로 미국은 중국의 숨통을 거세게 조이고 있다. 시 주석은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조선(북한)을 돕다) 역사'를 인민들의 대미 항전 의지를 다지는 도구로 활용한 셈이다.

홍콩 시사 평론가 류루이사오(劉銳紹)는 홍콩 언론 명보에 “중국의 한국전 개입 40·50·60주년 당시 중공의 기념 규모와 내용, 논조는 올해처럼 거창하지 않았다”며 “올해는 미·중 관계 악화 때문에 ‘항미원조’ 기념을 통해 뭔가를 보여줄 필요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최고 지도자의 뜻. 중국 지도층이 몰랐을 리 없다. 

[AFP=연합뉴스]

[AFP=연합뉴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중국의 국가 정상 연설은 최고 지도자의 생각이 담긴 고도의 정치 메시지다. 연설문은 즉흥적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랜 기간 논리체계를 다듬고 숙성해 만들어진다. 더구나 중국 최고지도자가 6·25전쟁 참전 기념행사에서 직접 연설한 것은 2000년 장쩌민 국가 주석 이후 20년 만이다. 중요도가 높다.

중국에선 다른 어떤 곳보다 최고지도자와 '당 중앙'의 의중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연설이란 빅 이벤트에 앞서 '링다오(領導·지도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항미원조 정신'의 의미는 중국 지도층에 퍼져 있었을 것이다.

18일부터 중국중앙방송(CC-TV)이 황금시간대인 오후 8시 방영 중인 한국전쟁 참전 70주년 기념 6부작 다큐멘터리 ‘평화를 위해(爲了和平)’ 선전 포스터. 중국공산당중앙군사위원회가 비준하고 중앙군사위원회 정치공작부가 제작했다.[중국 해방군보 캡처]

18일부터 중국중앙방송(CC-TV)이 황금시간대인 오후 8시 방영 중인 한국전쟁 참전 70주년 기념 6부작 다큐멘터리 ‘평화를 위해(爲了和平)’ 선전 포스터. 중국공산당중앙군사위원회가 비준하고 중앙군사위원회 정치공작부가 제작했다.[중국 해방군보 캡처]

최근 중국 극장가와 TV에 한국전쟁 영화나 다큐멘터리가 쏟아진 것도 이런 이유다. 대부분 미국의 침략에 맞선 중국군의 활약을 조명하고, 애국심을 자극하는 내용이다. 시 주석 연설을 앞두고 공산당 차원에서 미리 분위기를 조성한 거다.

그런데 마침 BTS의 한국전쟁 발언이 나왔다.

지난 7일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온라인으로 진행한 밴 플리트 상 시상식에서 방탄소년단이 수상소감을 말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

지난 7일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온라인으로 진행한 밴 플리트 상 시상식에서 방탄소년단이 수상소감을 말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

최고 지도자 연설이 임박한 시점이었다. 그렇기에 BTS 발언의 실제 의도는 중국에선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링다오가 강조하는 항미원조 정신의 '선명성'을 높이는 도구로 BTS의 발언을 활용했을 뿐이다.

지난 2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국전쟁 참전 연설날에 맞춰 개봉한 영화 '금강천'. 한국전쟁 당시 금강산 금강천 전투에서 보인 중국군의 활약을 그렸다. [진르터우탸오 캡처]

지난 2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국전쟁 참전 연설날에 맞춰 개봉한 영화 '금강천'. 한국전쟁 당시 금강산 금강천 전투에서 보인 중국군의 활약을 그렸다. [진르터우탸오 캡처]

전 세계가 의문을 제기한 중국의 BTS 때리기는 이런 배경 하에 나온 것이다. 이는 시 주석 연설이 나온 후 중국 유명 연예인들이 앞다퉈 동조 의사를 SNS에 표명하면서 확실해졌다.

중요한 건 시 주석이 진실을 외면한다는 점이다.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베이징 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에서 개막한 한국전 참전 70주년 전람회에 참석했다.[신화=연합뉴스]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베이징 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에서 개막한 한국전 참전 70주년 전람회에 참석했다.[신화=연합뉴스]

그는 이번 연설에서 북한의 ‘선제 남침’을 언급하지 않는다. 한국 외교부가 시 주석 발언 다음 날 곧바로 “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것은 부인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반박한 이유다.

과거 중국도 한국전쟁을 북한이 일으켰다고 인정한 적이 있다. 류루이사오는 “2017년 중국 인민일보는 SNS를 통해 ‘만일 김일성이 (조선) 반도를 통일하려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전쟁이 폭발할 수 있었겠나’라고 북한을 비난했다”며 “중국 공산당은 '역사는 눈앞의 정치적 필요에 봉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역사 발언이) 그때그때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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