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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사업계획을 세우고 있는 당신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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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임미진
임미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임미진 폴인 팀장

임미진 폴인 팀장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는 요즘 너무 바쁘다고 합니다. 내년도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는 시기라지요. 내년 시장을 전망하고, 핵심 전략을 세우고, 월별로 매출과 수익까지 시뮬레이션한다고 합니다. “참 어렵겠다”고 말했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올해도 다 안 맞았는데, 내년이라고 맞겠어. 그냥 열심히 하겠다고만 할 수 없으니까 근거 자료를 만드는 거지.”

모든 회사원들이 연말이면 겪는 고충이 아니냐구요. 예상외로 연간 사업계획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회사들도 꽤 됩니다. 꼭 2년 전인 2018년 10월, 폴인의 컨퍼런스에 출연했던 박세헌 당시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HR 담당 수석은 이렇게 말했었죠. “연간 사업계획에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2017년에 우버가 국내에서 음식배달 중개 서비스를 시작했죠. 그런데 그해 초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어떻게 경쟁 상황을 설정하고 사업 계획을 세우겠어요.” 그는 최근 당근마켓의 HR 담당 부사장으로 이직했습니다. 당근마켓의 상황은 다를까요. “코로나 사태도 예측하지 못했지만,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거란 것도 전혀 몰랐어요. 1년 뒤를 내다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계속 고객의 움직임을 살펴보며 방향을 수정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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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헌 부사장만의 주장이 아닙니다. 폴인에서 ‘애자일(agile·변화에 대응해가며 빠르게 일의 방향을 바꾸는 방식)하게 일하는 방법’에 대해 글을 연재하고 있는 장은지 이머징리더십인터벤션즈 대표는 “연례행사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대부분의 회사가 연간 계획 수립에 몇 개월을 쓴다”고 말합니다. 그럼 아예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걸까요. 아닙니다. 너무 멀리, 너무 자세히 내다보지는 말자는 겁니다. 어차피 틀릴 거니까요.

“일의 방향성을 수립하는 건 중요해요. 다만 계획을 중장기로 세우면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가 힘들죠. 특히 빈틈없는 계획을 세우는 게 시간을 쓰기보다 실행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함께 글을 연재하는 조승빈 컨그루언트애자일 대표는 계획의 주기는 짧을수록 좋다고 조언합니다. 1년 계획이 아니라 1개월 계획을 세우고, 일이 어떻게 풀리는지를 봐가며 빠르게 계획을 수정하라는 거죠.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조직의 예를 들 수 있냐구요. 질병관리본부는 어떤가요. 실시간으로 외부 상황을 살펴 계획을 수정하잖아요.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사업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 내년도 사업계획을 세세히 세우라고 독촉받고 계신다면, 상사의 책상에 이 칼럼을 출력해 올려놓으면 어떨까요. 행운을 빕니다.

임미진 폴인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