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평화 싣고 나른다, 유엔 항공기 안전 책임진 한국인

중앙일보

입력 2020.10.2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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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섭씨 40도 날씨, 생전 처음 보는 이국인들…. 오전 7시에 차량을 함께 타서 퇴근할 때까지 모든 것을 같이 해요. 군 생활이나 마찬가지죠. 처음 6개월은 정말 힘들었어요. 퇴근 후 채용 사이트 들어가 새 일자리 찾는 게 일과였습니다.”

최동욱 UNHAS 항공안전담당관
테러 잦은 나이지리아 하늘 맡아
WFP 올해 노벨평화상에도 일조
“유일한 한국인…후배들 지원을”

2018년 8월 나이지리아 북동부 소도시 마이두구리로 떠난 최동욱(40)씨는 이를 ‘두 번째 군 생활’이라고 표현했다.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이 있는 지역인만큼 총격전, 폭발도 다반사였다. 그후 2년. ‘남’이었던 외국인 동료들은 어느덧 ‘가족’이 됐고, 일은 익숙해졌다.

‘유엔 항공사’ 격인 UNHAS의 유일한 한국인인 최동욱씨가 항공기 운전에 나선 모습. [사진 최동욱씨]

‘유엔 항공사’ 격인 UNHAS의 유일한 한국인인 최동욱씨가 항공기 운전에 나선 모습. [사진 최동욱씨]

최씨가 소속한 기관은 UNHAS(UN Humanitarian Air Service·유엔 인도적 지원 항공서비스). 전 세계 18개국에서 운영되는 유엔 전용 항공사 격으로, 세계식량계획(WFP) 산하에 있다. 여기서 ‘항공안전담당관’으로 일하는 최씨는 최초의, 유일한 한국인이다.

UNHAS는 하늘길을 오가며 식량과 방역물품, 인도주의 단체 활동가 등을 실어나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민간 항공사들이

‘개점휴업’인 시기, 유엔 항공사는 더 바삐 움직여야 한다. 최근 그의 보람, 자부심이 부쩍 커졌다. 지난 9일 WFP가 올해 노벨평화상에 선정되면서다. 노벨상위원회는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신음할 때 ‘기아 해소’와 ‘식량 공급’이라는 본연의 업무를 놓지 않았다”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는데, WFP의 활동을 가능하게 한 게 바로 UNHAS다. 휴가차 한국에 들어온 최동욱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 25일 아프리카로 돌아갔다.

공공기관 항공 연구원으로 일하던 최씨는 2년 전 UNHAS 채용 공고를 접했다. “8살이던 딸이 국제 원조 이런 것에 관심이 많아 ‘나중에 크면 그런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 아빠도 그런데서 일하면 좋겠다’고 했어요. 바로 지원서를 낸 이유입니다.” 가족들은 ‘험지’로 떠나는 최씨를 100% 지지했고, 응원하고 있다.

WFP 산하 UNHAS는 식량 배급, 환자 이송 등을 위해 항공기를 띄운다. [사진 최동욱씨]

WFP 산하 UNHAS는 식량 배급, 환자 이송 등을 위해 항공기를 띄운다. [사진 최동욱씨]

최씨는 “UNHAS 합격 후 한국인 선배를 찾아 도움말을 들어보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한 명도 없었고 지금까지도 없다”고 했다.

그는 나이지리아에서 운항하는 모든 유엔 항공기의 안전을 책임진다. 초반엔 직접 운항하기도 했다. 보코하람의 근거지인 이곳의 경우 테러와 납치가 많아 육로 운송 보단 UNHAS 항공 운송이 활용된다. 활주로 상태가 열악해 주로 쓰이는 건 8·10인승 항공기나 헬리콥터다. 그는 “지난 7월 나이지리아와 니제르 국경에서 헬리콥터가 착륙 중 보코하람 공격을 받고 돌아왔다”며 총격 흔적이 선명한 기체 사진을 보여줬다.

지난해 11월엔 국경없는의사회(MSF) 연락을 받고 생후 4일, 7일 된 아기들을 긴급 이송했다. 최씨는 아이 한 명을 직접 앰뷸런스로 옮기기도 했다.

외교부는 올해 UNHAS에 3년간 500만 달러(약 56억원)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동료들로부터 “땡큐 초이, 땡큐 코리아”라는 인사를 받았다며 그 곳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크다고 전했다.

“UNHAS엔 전 세계 항공 전문가들이 모여있어요. 한국인은 조금만 일 해도 다들 ‘굉장히 열심히 한다’고 얘기해요. 채용 공고가 뜨면 언제든 지원해줬으면 좋겠어요.”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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