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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자이 125% 뛴 669만원…집값 누르는 정부의 '세금 폭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진은 서울 송파,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사진은 서울 송파,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공시가격을 올리기로 하면서, 부동산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가 급격히 오른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시뮬레이션] #시세의 90%까지 오르면 보유세 2배 이상 #공시가 9억대 보유자, 재산세+종부세 폭탄

27일 국토연구원 주관으로 열린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수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제시된 방안은 부동산 공시가격을 시세의 80%, 90%, 100%로 올리는 3개 안이다. 지금은 시세 반영률이 50~70%다. 가장 유력한 안은 공시가격을 시세의 90%로 올리는 것이다. 이 안을 적용할 경우, 9억원 미만 아파트는 10년 후, 9억~15억원 미만은 7년 후, 15억원 이상은 5년 후 시세 반영률이 90%가 된다.

이렇게 되면 보유세는 빠르면 5년 내에 올해보다 최대 2~3배 늘 수 있다.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이 높아지면 집값이 오르지 않아도 보유세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이미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한 상황에서, 공시가격 현실화까지 이뤄지면 내년도 보유세 부담은 대폭 커질 수 있다.

공시가 현실화 보유세.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공시가 현실화 보유세.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시세 90% 반영'으로 공시가격을 결정하게 되면 가장 먼저 영향권에 들어오는 것이 시세 15억 이상의 고가 아파트다. 현재 15억 이상 아파트의 공시가격 시세반영율은 75.3%다. 2025년까지 시세의 90%로 공시가격을 맞추려면 5년 안에 매년 3%포인트씩 높여야 한다.

예컨대 A씨가 서울 종로구에 17억원(최근 실거래가)의 경희궁자이3단지(전용 84㎡) 한 채를 갖고 있다면 2025년 보유세로 669만원을 내야 한다. 올해(297만원)보다 125% 오른 금액이다. 27일 양경섭 세무사(온세그룹)가 시세반영률을 90%(15억3000만원)로 높인 공시가격을 고려해 시뮬레이션(모의계산)한 결과다. 집값은 현재 수준에서 변동이 없고, 공시가격만 현실화한다는 가정에 따른 수치다.

강남 래미안대치팰리스(전용 84㎡) 한 채를 가진 사람은 올해(974만원)보다 165% 뛴 2586만원을 5년 뒤 보유세로 납부해야 한다.

다주택자의 세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만일 A씨가 경희궁자이3단지와 래미안대치팰리스 두 곳의 아파트를 한 채씩 보유한 2주택자라면 2025년 보유세 부담은 1억3000만원을 넘어선다. 올해(3818만원)의 4배 수준이다. 지난 7ㆍ10대책으로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 최고세율이 기존 3.2%에서 6%로 높아진 영향이다. A씨가 보유한 2채의 공시가격 총액 43억2000만원(시세의 90% 적용)에 매겨지는 종부세 세율도 3.6%로 올해(1.8%)의 두배로 오른다.

올해 집값 상승으로 시세 10억원 넘는 아파트를 소유한 1주택자의 부담도 커진다. 공시가격이 9억원을 넘으면 종합부동산세 납부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울 마포구 신공덕삼성래미안1차(114㎡) 한 채를 가진 B씨는 공시가격이 시세의 90%까지 오르면 종부세까지 내야 해 보유세가 466만원이 된다. 재산세만 납부했던 올해(152만원)보다 세금 부담이 3배로 불어난다.

9억 미만 주택 보유자도 안심할 수 없다. 이들 아파트의 공시가격 시세반영률도 앞으로 10년에 걸쳐 90%로 맞춰질 수 있어서다. 현재 정부는 서민 주택의 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공시가 9억원 이하 1주택자에 한해 재산세 세율을 최대 50% 낮추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만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공시가 5억원(시세 8억원) 상당의 SM엘 루이(84㎡)를 보유한 1주택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아파트의 공시가격 시세반영률이 90%가 되면, 62만원 수준이던 재산세는 109만원으로 늘어난다. 다만, 정부의 재산세 경감 방안을 적용하면 실제 부담은 54만원으로 줄어들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시가격 시세반영률 인상 가능성에 시장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윤곽이 나오자 온라인 부동산 카페를 중심으로 “1주택자건, 다주택자건 간에 정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증세에 나선 것” “기승 전 세금밖에 없는 정부” “앞으로 수십만원에서 수백만 원가량의 월세를 나라에 내게 됐다”와 같은 아우성이 쏟아졌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공시가격 인상 정책을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집값이 내려갈 경우 소형 면적이나 저가 주택은 공시가격이 시세를 초과하는 역전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공시가격의 정확성이나 신뢰성,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산정기준과 검증체계 등 공시가격 시스템 전반의 공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는 지금까지 집값이 투기적 요인으로 거품이 껴 있어서 이를 잡아야 한다고 말해왔는데 거품이 껴 있는 시가를 반영해 세율을 올린다는 정책은 이율배반적"이라며 “만약 저가 아파트는 세율을 낮추고 고가 아파트는 그대로 간다면 결국 징벌적 세제로 과세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시세가 실거래가인지 무엇인지 명확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공시가격 시세반영률을 90%까지 끌어올린다는 건 말도 안 된다”며 “공시가격을 올리면 그 여파가 집값 상승뿐만 아니라 조세 전가 효과에 따른 임차 보증금 상승으로 이어지며 결국 임차인들의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염지현ㆍ한은화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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