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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고향서 매일 장보던 ‘베트남댁’ 냉장고 열어 봤더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14)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품고 있는 광주광역시에는 다양한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8년 광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중에서 베트남 국적자가 4948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는 중국 4473명, 한국계 중국인 1503명보다 높은 수치다.

물론 이 통계는 외국인 국적자에 한정된 수치일 뿐 다문화가구원까지는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비교는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중국보다 베트남 국적자가 많은 것에 놀랐고, 미처 몰랐던 사실에 베트남 이주민 커뮤니티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다문화 가정이란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국제결혼 가정으로 부모 한쪽이 한국인으로 구성된 가정’을 말한다. 하지만 냉장고 프로젝트에서 바라보는 ‘다문화’란 다문화 가정뿐 아니라 국내에 중·장기간 체류 중인 외국인 근로자, 유학생 등을 모두 포함한 광의의 범위에서 다룬다. 그들이 국내에 들어와 상호작용하며 한국 문화를 함께 만들어나가기 때문이다. 사실 ‘다문화가정’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여전히 고민이 된다. 다문화라고 지칭하는 순간 그들은 타자화하기 때문이다.

묻고 물어서 처음으로 찾아간 집은 탄(Thanh)씨의 가족이었다. 탄씨의 보금자리는 광주의 바로 옆 지역인 전라남도 나주의 나주역 부근에 있다. 준공한 지 30년 정도 되어가는 오래된 아파트이다. 그래도 역 주변이라 교통과 상권 인프라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탄 씨는 베트남 남부 까마우(Camau)성 출신이다. 어느덧 결혼 10년 차 베테랑 주부이다. 웃음이 가득한 탄씨는 겉보기에도 낙천적으로 보인다. 한국인 남편은 호탕한 성격의 택시 운전기사다. 부부는 10살의 아들과 5살 딸, 이렇게 두 명의 자녀와 함께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다. 외부인에게 집과 주방을 공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두 분 모두가 프로젝트의 취지를 공감하고 조사를 반겨주었다.

조사를 위해 평소 즐겨 먹는 일상식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베트남 음식을 요리하겠다고 했다. 탄 씨는 베트남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을 평소 고맙게 여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여름 전라남도 무안에서 음식 때문에 베트남 출신의 아내를 무차별 폭행한 한국인 남편이 구속된 사건도 있었기 때문이다.

탄 씨의 남편은 아내의 고향과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까마우성의 위치를 모르는 나에게 구글 지도를 보여주며 자신의 고향을 방문했던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가족은 평소에는 베트남 음식을 자주 먹지만, 탄 씨가 한국 음식도 곧 잘 해 베트남과 한국 반찬이 함께 식탁에 오르는 날도 많다. 한국 음식점에서 1년 동안 일한 적이 있어서 어느 정도의 한국 음식은 요리할 수 있단다. 식당에서 맛도 보고 조리 과정을 눈여겨봤다가 집에서 그대로 연습했더니, 이제는 웬만한 한국 음식은 요리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특히 메기탕을 잘 끓인다고 하는데, 탄씨의 음식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베트남 음식 중에서는 쌀국수를 잘 만든다고 했다. 사실 베트남 쌀국수는 가정식 메뉴가 아니다. 육수를 오랜 시간 동안 우려내야 하고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집에서 조리하기에 적합한 음식이 아니다. 베트남 현지에서 쌀국수는 출퇴근길에 단골집 식당에 들러 먹고 가는 음식이다. 탄 씨와 같이 음식 솜씨도 좋고 손이 커야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쌀국수를 끓이는 것이 가능하다.

주변에 베트남 출신 친구도 많이 거주하는데, 가끔 불러서 쌀국수를 해준다고 한다. 탄 씨는 음식솜씨가 좋아 고향 음식을 그리는 친구에게 인기가 좋다. 손이 많이 가 힘들지만, 친구들과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오늘 탄 씨가 요리해 준 것은 세 가지의 베트남 음식이었다. 먼저, 우리네 부침개와 비슷한 반세오(Bánh xèo)이다. ‘반(Bánh)’은 빵, 케이크, 떡처럼 밀가루나 쌀가루 반죽으로 만드는 동그란 음식을 말하고, ‘세오(xèo)’는 지질 때 기름이 지글지글 끓는 소리를 뜻한다. 우리가 비가 오면 파전이 생각난다고 하듯이, 베트남 사람도 비가 오면 반세오를 찾는다고 한다.

반세오는 베트남 중남부에서 먹는 음식이다. 북부에서는 먹지 않는다. 탄씨는 고향에서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라 소개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베트남 남부 사람들은 음력 5월 5일이 되면 반세오를 먹는 풍습이 있다. 베트남의 음력 5월 5일은 단오절(똇 도안 응오, Tết Đoan ngọ)로, 베트남에서 설 다음으로 큰 명절이다. 연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는 시기로, 수확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날이다. 여느 문화권과 마찬가지로 명절에는 잘 먹어야 한다.

베트남 중남부 지역의 음식 반세오. [사진 광주대학교 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베트남 중남부 지역의 음식 반세오. [사진 광주대학교 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탄씨가 요리한 타이 전골. [사진 광주대학교 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탄씨가 요리한 타이 전골. [사진 광주대학교 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두 번째 음식은 보솟방(Món bò sốt vang)이다. 남편이 특히 좋아하는 메뉴이다. 보솟방에 반미라는 빵(Bánh mì)을 함께 찍어 먹어야 제맛이란다. 마지막 음식은 타이 전골(Lẩu Thái)이다. 꽃게, 오징어, 생선, 새우와 같은 각종 해산물과 신선한 채소를 넣고 만든다. 국물이 새콤달콤해 독특한 맛이 난다. 가족이 먹고 싶어 할 때마다 이 전골을 만든다.

탄 씨의 고향에서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장을 보러 갔다고 한다. 냉장고가 없는 집도 많아서 매일 한 번 이상은 시장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아침에 장에서 산 신선한 재료를 그날 바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결혼하고 한국에 왔더니 한국 주부는 며칠 동안 쓸 재료를 한 번에 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도 요즘에는 일주일 치 식재료를 마트에서 산다. 한국에 왔으니깐 여기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어디에 살든지 그곳에서 적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탄씨 집의 냉장고. [사진 광주대학교 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탄씨 집의 냉장고. [사진 광주대학교 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탄씨의 냉장고에는 한국 채소랑 베트남 채소가 모두 있다. 미나리, 얼갈이, 버섯, 고수가 보이고 자우므옹(Rau muống, 공심채(모닝글로리))도 있다. 오늘 요리인 타이전골에 들어가는 채소다. 모두가 나주에서 구한 식재료인데, 근처에 아시아 마트가 있어 대부분의 베트남 재료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나주에 있는 아시아 마트에서 구매한 제품. [사진 광주대학교 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나주에 있는 아시아 마트에서 구매한 제품. [사진 광주대학교 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그녀가 느끼기에 한국과 베트남 음식의 가장 큰 차이는 고춧가루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고춧가루를 많이 사용하는 반면 베트남에서는 고춧가루보다 매운맛을 내고 싶을 때는 고추 몇 조각을 넣을 뿐이다. 그리고 베트남과 한국은 기후가 다르므로 식재료도 다를 수밖에 없는데, 무더운 베트남에서는 채소와 과일이 더 맛있고 다양해 요리에도 향신료와 과일이 쓰인다고 했다.

어느덧 결혼하고 한국에 정착한 지 10년 차. 그녀의 솜씨와 큼직큼직한 음식량을 보니, 그동안 얼마나 타국에서 적응하느라 힘들었을까 세월의 내공이 느껴졌다. 베트남 음식을 잘 모르는 내게도 그녀의 요리 솜씨가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그동안 베트남 음식이라고는 프랜차이즈 식당에서의 경험뿐인 촌놈에게, 그녀는 진정한 베트남 집밥의 묘미를 선사해주었다.

아시아문화원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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