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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함무라비 법전 깬 예수···“원수 사랑하라”엔 비밀코드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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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말씀 중에 참 이해가 안 가는 게 하나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말씀은 좋습니다. 그런데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또 원수는 원수잖아요. ‘솔직히 왜 원수를 사랑해야 하나?’ 속마음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담긴 비밀 코드는 무엇일까요? 정희윤 기자가 묻고, 백성호 종교전문기자가 답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죠. 원수는 원수니까. 더 미워하지 못해 오히려 속이 상하는데, 원수를 사랑하라니. 그건 듣기에만 좋지,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니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왜 굳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거에요? 내 속은 타들어가는데, 왜 굳이 나 자신보다 원수를 먼저 챙겨야 하는 건가요?
“거기에는 ‘마음의 치유’에 대한 비밀 코드가 숨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버튼을 누르라고 하는 거고, 우리는 그 버튼을 왜 눌러야 하는지 모르는 거죠. ‘원수를 사랑하라’에 숨어 있는 버튼의 작동 원리를 우리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 거기에 뭔가 비밀 코드가 있다고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 그대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뜻 아닌가요? 거기에 더 이상 뭐가 있죠?
“옛날에 함무라비 법전이 있었어요. 기원전 1700년쯤에 생긴 법전이에요. 함무라비 법전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 뭔지 아시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며 받은대로 갚아주는 것이 원칙이던 시대에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며 받은대로 갚아주는 것이 원칙이던 시대에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잖아요. 받은 대로 갚아준다! 그건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의 함무라비 왕이 선포한 법전 아닌가요?
“맞아요. 예수님 태어나기 1700년 전에 생겨난 법이에요. 이 법이 메소포타미아를 포함한 서아시아 일대, 그러니까 근동 지역에서 통용됐어요. 예수님 당시에도 통용이 됐으니까, 무려 1700년 동안 적용되던 법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당시의 상식적으로 통하는 법이었군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내가 상대방에게 다섯 대 때렸으면, 상대방도 나에게 다섯 대 때리게 하는 식인 거죠?
“맞아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믿던 사람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니까. 어땠겠어요?”
함부라비 법전에 새겨진 비석. 메소포타미아 일대에서는 이 법이 수천년 동안 통용됐다.

함부라비 법전에 새겨진 비석. 메소포타미아 일대에서는 이 법이 수천년 동안 통용됐다.

함무라비 법전에 새겨진 그림과 문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법은 함무라비 왕이 선포한 법전이다. [중앙포토]

함무라비 법전에 새겨진 그림과 문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법은 함무라비 왕이 선포한 법전이다. [중앙포토]

정말 황당했을 것 같아요. 예수님 가르침을 따르다가는 내가 화병이 나서 죽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죠.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어요.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복음 5장44절)’  원수를 사랑하는 것도 힘든데, 나를 괴롭히는 놈들을 위해 기도까지 해야 돼. 그래야만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될 수 있다는 거야. 다시 말해 그래야만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거지. 율법만 지키면 천국에 간다고 믿던 유대인에게 이건 그야말로 파격적인 선언이었죠.”
그럼 하나씩 따져볼게요. 우선 왜 원수를 사랑해야 하죠? 미워하기만 해도 성에 차지 않는데, 왜 내가 원수를 사랑해야 하죠?  
“사람마다 원수 하나씩은 다 있잖아. 자 눈을 감고 그 원수를 떠올려보세요. 그럼 어떻게 돼요?”
원수를 향해서 독화살을 쏠 때마다 내 가슴이 먼저 독기에 젖는 법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의 한 장면.

원수를 향해서 독화살을 쏠 때마다 내 가슴이 먼저 독기에 젖는 법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의 한 장면.

생각만 해도 화가 나요. 기분이 불쾌해져요. 생각을 많이 할수록 더 많이 화가 나요. 마음 속에서 원수를 향해 화살을 막 쏘아대고 있는 기분이에요.
“맞아요. 원수를 미워할 때 우리는 화살을 쏘아요. 원수를 향해 화살을 쏘고 독기를 뿜어요. 그 화살과 그 독기가 날아가서 원수의 가슴에 꽂히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원수를 떠올리면 저절로 독기가 올라오잖아요. 내 마음에서 독기가 올라와요. 그럼 그 독기가 가장 먼저 어디를 적시겠어요?”
설마, 그게 내 마음인가요? 원수의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인가요?  
“맞아요. 그 독기는 내 마음을 먼저 적시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 독기의 1차 희생자는 원수가 아니라 나 자신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를 먼저 적신 뒤에 독기가 원수를 향해서 날아가죠. 그런데 그 독기가 원수에게 닿을 때보다, 닿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아요. 생각으로 미워하는 거니까. 그런데 독기가 원수를 때리지 못할 때도, 나 자신은 때리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뭐에요. 내가 만든 독기와 내가 만든 화살이 나를 먼저 때린다는 말인가요?
“그렇죠. 내가 만든 독기와 화살의 1차 희생자가 나 자신이에요. 원수를 때리기 전에 나를 먼저 때리니까. 원수를 적시기 전에 나를 먼저 적시니까. 그러니까 원수를 더 많이 떠올리고, 더 많이 미워할수록 어떻게 돼요? 내 가슴에 독화살이 꽂히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거예요.”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통해서 내 가슴에 먼저 박힐 독화살을 빼라고 말한 셈이다. [중앙포토]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통해서 내 가슴에 먼저 박힐 독화살을 빼라고 말한 셈이다. [중앙포토]

그런데 원수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고 했잖아요. 그건 왜 그래요? 왜 원수를 사랑해야만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거예요?
“하느님의 자녀가 뭐에요? 하느님의 마음과 자녀의 마음이 통하는 거예요. 예수님을 따른다는 게 뭐예요?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거예요. 천국에 간다는 게 뭐예요? 하늘나라의 속성과 내 마음의 속성이 통하는 거예요. 그런데 내 마음에 흉터가 있어. 독기가 있어. 원수를 떠올릴 때마다 화살이 ‘타닥타닥’ 꽂혀. 독기에 쩔어있어. 그럼 예수님의 마음과 통할 수 있겠어요? 하느님의 마음과 통할 수 있겠어요? 안 돼요. 통할 수가 없죠. 하느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은 그런 독기가 없는 곳인데. 그러니까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고 하신 거예요.”
아~아! 그러니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마음으로 들어가기 위한 일종의 티켓이네요.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티켓이요.
“맞아요. 다시 말하면 ‘천국의 열쇠’죠. 그러니까 ‘원수를 사랑하라’의 궁극적인 목표가 뭐에요? 단순히 원수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그걸 통해서 내 마음의 독기를 없애라는 거예요. 내 마음의 흉터를 지우라는 거예요. 그래야 내 마음과 하늘나라의 마음이 통하게 되니까요.”
예수님이 언덕에 앉아 산상수훈을 설하고 있는 모습이다. 산상수훈을 통해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속성에 대해서 설명했다. [중앙포토]

예수님이 언덕에 앉아 산상수훈을 설하고 있는 모습이다. 산상수훈을 통해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속성에 대해서 설명했다. [중앙포토]

이제 알겠어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라는 게 아니네요.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한 게 아니네요. 내 마음의 독기를 없애라는 말이네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훨씬 쉬워졌어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겠어요. 그럼 다음 편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 건가요?
“네에, 다음 편에서는 ‘코로나 시국, 예수님은 어떻게 했을까?’를 다루어 볼게요...”

다음 편도 많이 기대해 주세요.~

백성호 종교전문기자ㆍ정희윤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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