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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사류(四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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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국립국어원 표준 대사전에 따르면 ‘일류’(一流)는 ‘어떤 방면에서 첫째가는 지위나 부류’. ‘이류’(二流)는 ‘어떤 방면에서 일류보다 약간 못한 지위나 부류’, ‘삼류’(三流)는 ‘어떤 방면에서 가장 낮은 지위나 부류’다. 그렇다면 ‘사류’(四流)는. 사전에 없다. 다만, 일·이·삼류에 이어 쓰면 ‘어떤 방면에서 가장 낮은 지위나 부류인 삼류보다도 못한 것’이라고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세상일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다 보면 네 번째까지 가기도 한다. 2500년 전 공자도 세상일의 옳고 그름이나 사람의 됨됨이에 순위를 매겼다. 네 번째까지 얘기한 사례 중 하나가 『논어』 ‘계씨’ 편에 나온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상급이고(生而知之者上也), 배워서 아는 사람이 그다음이고(學而知之者次也), 어려움에 부닥쳐 배우는 사람은 또 그다음이며(困而學之又其次也), 어려움을 겪고도 배우지 못하면 사람은 하급이 된다(困而不學, 民斯爲下矣).” 핵심은 두 번째와 네 번째다. 태어나면서 아는 건 성인(聖人)이나 가능하니, 사람은 꼭 ‘배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려움을 겪게 될 경우 거기에서 꼭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거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생전 어록이 회자한다. 1995년 4월 중국 베이징을 찾은 고인이 한국 언론사 특파원 간담회 때 했던 말도 그중 하나다. 비보도(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한 말인데, 한 언론사가 보도해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고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정치인은 사류 수준, 관료행정은 삼류 수준, 기업은 이류 수준이다. (…) 기업인이란 으레 현실을 비관적으로 보는 속성이 있다. 나도 우리나라가 21세기를 잘 대비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을 비관적으로 보는 것이며, 이대로 가다간 우리나라는 이류 국가 축에도 끼지 못할 것이다.” 21세기를 5년 앞둔 시점에 고인이 했던 고민이 행간에 담겼다. 그 고민이 초일류 기업을 키운 토양이 됐다.

25년 전 사류로 지목되자 고인에 대해 이를 갈던 그들은 지금 몇 류(流)쯤에 위치할까. 정권 교체를 당하는(한쪽은 두 번, 다른 쪽은 한 번) 어려움을 통해 뭔가 배웠을까. 오류(汚流)에서 부유하며 오류(誤謬)를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