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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별세] 해도해도 안되는 게 있다, 그도 못이룬 두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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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유통. 두 사업은 재계의 거목인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못 다 이룬 꿈, ‘아픈 손가락’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삼성의 자동차 진출을 이건희 회장의 개인적 관심사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삼성그룹의 자동차 산업에 대한 꿈은 선대인 이병철 창업 회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병철 창업 회장은 1980년대 초부터 “현재 제조업의 핵심은 전자와 자동차이며, 앞으로 두 산업은 ‘융합’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84년 삼성그룹 비서실에 자동차 태스크포스(TF)팀이 구성됐지만 87년 이병철 회장의 별세로 자동차 산업 진출은 중단됐다.

1997년 5월 12일 삼성자동차 부산공장을 방문해 시험차량 시승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연합뉴스

1997년 5월 12일 삼성자동차 부산공장을 방문해 시험차량 시승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연합뉴스

이병철 회장때 삼성에 자동차TF

이건희 회장이 ‘자동차 매니어’였던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유학시절 중고차를 직접 수리해 주변에 판매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개인적 관심보단 산업의 발전과 아버지가 꿈꿨던 ‘기술의 융합’에 더 주목했을 것으로 재계는 추측한다. ‘한국의 메르세데스-벤츠’를 꿈꿨던 이건희 회장은 89년 잠시 중단됐던 자동차 TF를 재가동하고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93년 상용차 부문에서 자동차 산업의 첫 발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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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부터 삼성은 일본 도요타ㆍ혼다, 독일 폴크스바겐, 미국 포드 등과의 제휴를 타진했다. 삼성의 성장을 견제했던 ‘완성차 공룡’들은 제휴ㆍ협력에 소극적이었고, 결국 일본 닛산과 제휴해 첫 승용차인 ‘SM5’를 내놓는다. 하지만 외환위기의 파고는 ‘전자-자동차 융합’이라는 이건희 회장의 꿈을 가로막았다. 닛산 맥시마를 조립한 SM5는 닛산이 만든 차보다 품질이 뛰어나다는 극찬을 받았다.

부산공장, 당시 최고의 자동차 설비 도입 

부산공장(현재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최고의 완성차 공장이라는 이건희 회장의 꿈이 반영됐다. 갯벌에 수십만 개의 파일(말뚝)을 박아 지반을 다지고, 당시로선 최고의 자동화 설비를 도입했다. 당시 현대자동차 공장 건설비의 5배에 달하는 비용을 쏟아부었다. SM5는 초기엔 닛산의 부품을 사용했지만 이후 부산 지역 자동차 부품 생태계를 조성해 국산화도 앞당겼다. 국산 부품을 사용했으면서도 내구성과 품질에서 한국 완성차 역사상 가장 뛰어난 ‘명차’란 평가를 받았다.

1995년 4월 26일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기공식. 4000여명의 각계인사및 삼성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신호공단에서 거행됐다. 중앙포토

1995년 4월 26일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기공식. 4000여명의 각계인사및 삼성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신호공단에서 거행됐다. 중앙포토

삼성그룹은 외환위기로 부도 상황에 몰렸던 기아자동차 인수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당시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란 게 재계의 추측이지만, 공들였던 기아차 인수에 실패하면서 ‘삼성 자동차’의 꿈도 타격을 입었다. 이어 더해 김대중 정부의 ‘전자-자동차’ 빅딜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경영난에 빠진 삼성자동차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건희 회장은 사재(私財)인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를 출연해 삼성자동차의 부채를 탕감한 뒤 매각 절차에 들어갔다. 2000년 옛 삼성자동차가 청산했고, 기존 자산을 프랑스 르노그룹이 인수해 지금의 르노삼성자동차가 됐다.

르노삼성차는 20년 동안 부침을 겪는 중이다. 한국 시장에 맞는 신차를 적기에 내놓지 못하고,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생산기지 역할에 의존하고 있다. 그나마 모기업의 경영진 교체나 경영 상황에 따라 장기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삼성카드가 지분(19.9%)을 소유해 ‘삼성’의 이름이 남아있지만 언제 이름마저 사라질지 모르는 상태다.

이건희 회장(가운데)이 임경춘 당시 삼성자동차 부회장(오른쪽)과 함께 국내에서처음으로 선보인 알루미늄 실린더 블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이건희 회장(가운데)이 임경춘 당시 삼성자동차 부회장(오른쪽)과 함께 국내에서처음으로 선보인 알루미늄 실린더 블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유통 부문에서도 성과보다는 아픔이 많다. 유통 부문은 이 회장의 직접 관심사는 아니지만, 신경영 시대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국내 유통산업진출’이었다. 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할인점(대형마트) 매장 크기 관련 규제 등이 풀리면서 대기업도 할만한 사업으로 떠올랐다. 할인점 체인, 선진국형 편의점 집중 육성이 매력적 사업으로 부상했고 96년엔 국내 유통시장이 전면 개방하면서 토대도 마련됐다.

하지만 삼성은 이병철 회장 별세 이후인 90년대부터 친족간 계열 분리를 진행해 91년 이명희 회장의 신세계백화점 등을 떼어냈다. 이렇게 되면서 삼성에서 유통부문 사업은 사실상 사라졌다. 소비재 산업인 유통망 확보는 전형적인 캐시카우로 자금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삼성은 이에 따라 독자적으로 90년 초부터 유통사업 진출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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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코와 손잡고 대형마트 진출 

삼성의 유통부문 본격 진출은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97년 삼성물산이 대구 옛 제일모직 대구공장 부지에 삼성 홈플러스 칠성점을 열면서 전국 체인점 시대를 연다고 발표했다. 이즈음 분당 서현역사 쇼핑타운 사업권도 따내면서 전국에 레저와 쇼핑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복합쇼핑몰 설립 계획도 진행됐다.

2003년 7월 방한한 토니 블레어(왼쪽에서 세번째) 당시 영국 총리가 한국과 영국의 합작기업인 삼성홈플러스 영등포점을 방문해 삼성전자 윤종용 전 부회장(왼쪽에서 두번째), 이승환 전 삼성테스코 사장(왼쪽)의 안내로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중앙포토

2003년 7월 방한한 토니 블레어(왼쪽에서 세번째) 당시 영국 총리가 한국과 영국의 합작기업인 삼성홈플러스 영등포점을 방문해 삼성전자 윤종용 전 부회장(왼쪽에서 두번째), 이승환 전 삼성테스코 사장(왼쪽)의 안내로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중앙포토

한 집안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세계 그룹의 이마트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홈플러스는 이를 피해 대구 등 지방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초기엔 2001년까지 3조2000억원을 투자한다는 목표였다. 1호점을 낸 뒤 예상보다 투자금이 많이 들자, 99년 영국 테스코와 합작사인 삼성테스코를 세우면서 테스코에 지분의 대부분을 넘기고, 자금을 조달했다.

그러나 실적은 시원치 않았다. 여기에 삼성이 자동차 산업에 자금을 쏟아부으면서 그룹 관심사에 밀리면서 투자에도 한계에 봉착했다. 결국  2006년엔 삼성물산의 마지막 남은 유통 부문인 분당 서현역 삼성플라자까지 애경그룹에 넘기고 전면 철수했다. 삼성물산은 2011년 테스코에 남은 삼성테스코 지분(11%)을 모두 넘기고 홈플러스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테스코는 한동안 홈플러스 직접 경영을 시도했지만 치열해진 시장 상황에 대응하지 못하고 2015년 홈플러스를 매물로 내놓으면서 결국 사모펀드 MBK 파트너스에 넘어갔다.

홈플러스 매각, 제과 사업도 손 떼 

현재 삼성그룹 유통부문이라 부를만한 사업은 호텔신라와 면세점, 에버랜드 정도다. 이밖에 삼성물산 패션 부문(구 제일모직)의 각 브랜드 유통망도 범 유통부문으로 꼽을 수 있다. 호텔신라는 2007년부터 홈플러스와 합작으로 자회사 보나비를 세우고 아티제를 운영하면서 커피·제과 사업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대기업 오너 2, 3세들이 빵집 사업으로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여론에 밀려 2012년 지분 전량을 대한제분에 매각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주요 연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주요 연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영선ㆍ이동현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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