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리셋 코리아

서두르지 말고 건강 상태 좋은 날 독감 백신 맞기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전병율 차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질병관리본부장

전병율 차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질병관리본부장

올해 인플루엔자 예방 접종 사업만큼 백신 관련 사건이 많은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백신 배송 과정에서 백신 상자가 상온에 노출돼 48만 도스가 회수됐고 백색 입자와 관련해 61만5000 도스가 회수되는 등 총 106만 도스가 수거·회수됐다. 이런 이유로 올해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 사업은 시행 초기부터 국민적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백신 접종과 사망의 인과관계 낮아 #접종 후 30분 이상 병원 머물러야

설상가상으로 민간 의료기관에서 무료 접종을 받은 17세 남성이 지난 16일 사망한 이후 사망자가 속출하며 총 48건의 백신 접종 사망자가 보고됐다. 이러다 보니 백신 접종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커지고 대한의사협회에서는 23일부터 1주일간 독감 백신 접종을 중단해달라고 정부와 일선 의료기관에 요청했다. 이 기간에 안전성을 조사하고 안전성이 확인되면 백신 접종을 재개하라는 주장이다.

과거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에 의한 사망 사례는 단 1건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65세 여성이 접종 이틀 후 몸에 힘이 빠지는 등의 증상으로 입원하고 독감 백신 희귀 부작용으로 알려진 ‘밀러 피셔 증후군’ 진단을 받고 약 4개월 후 사망했다. 신종플루가 유행했던 2009년에도 대규모 예방 접종이 이루어졌는데, 접종 후 8명이 사망해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불안에 떨었다. 당시에도 전문가와 방역 당국이 사망자들에 대해 조사한 결과, 모두 접종과의 인과 관계는 없는 것으로 발표됐다. 이후 인플루엔자 예방 접종은 계속 진행됐고 국민도 이를 믿고 백신 접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 사태가 안정적으로 종식됐다.

질병관리청이 지난 23일 전문가들과 접종 이후 사망 사례 36건에 대한 인과성을 밝히기 위한 회의를 갖고, 26건에 대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부검이 진행된 20건 중 8건은 심혈관 질환, 2건은 뇌혈관 질환이 사망 원인이었다. 3건은 다른 질환, 7건은 추가 검사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부검이 시행되지 않은 6건 중에서 4건은 질병, 1건은 질식 사망이었다. 결론적으로 백신 접종에 의한 사망 인과성이 매우 낮다고 했다.

인플루엔자 백신의 중증 부작용은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알려진 알레르기 반응이다. 이는 접종 이후 불과 몇 분에서 몇 시간 이내에 발생한다. 즉각적인 치료가 이루어지면 회복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 또 근육 마비 증상이 생기는 부작용인 ‘길랭-바레 증후군’은 백신 접종 100만 명당 1~2건의 빈도로 발생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의 사망 사례는 위 2가지 종류의 부작용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백신 접종의 장점은 독감 발생을 예방하고 특히 소아와 성인·고령층에서의 인플루엔자 감염에 따른 입원을 줄여서 생명을 구하는 효과가 매우 크다. 특히 심장 질환과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자에게는 인플루엔자 감염으로 인한 질환 악화 예방에 매우 효과적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임산부와 소아에서도 인플루엔자와 이로 인한 급성 호흡기 감염증을 줄여 건강 향상에 큰 역할을 한다.

백신 접종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접종을 너무 서두르지 말고 건강 상태가 양호할 때 접종을 받고 접종 이후에는 적어도 30분간은 의료기관에서 부작용 발생 등을 면밀히 관찰한 후에 귀가할 것을 권고한다. 아울러 접종 이후 2~3일 정도는 몸 상태를 잘 살피는 것이 좋고 이상 증상 발생 시에는 즉시 보건당국에 신고해서 관리를 받아야 할 것이다.

백신 접종을 받는 것이 실보다 득이 크다는 점을 기억하고 백신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멀리해도 좋을 것이다. 기분 좋은 날, 마음 편하게 백신 접종을 받을 것을 권유한다.

전병율 차의학전문대학원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