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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 9659일 매일이 혁신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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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건희 1942~2020

“1987년 회장에 취임하고 나니 막막하기만 했다. 삼성 내부는 긴장감이 없고 내가 제일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 92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불면증에 시달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업 한두 개를 잃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사그라들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1987년 회장 취임 이후 경영 행보 #미 매장 구석 처박힌 삼성TV에 충격 #95년엔 불량 애니콜 15만대 불태워 #디자인경영·열린채용 등 혁신 선도 #삼성 매출 39배, 시총 396배 증가

세탁기 불량제품 제조 몰카 보고 격노

이 회장이 1997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담소를 나누고있다. [중앙포토]

이 회장이 1997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담소를 나누고있다. [중앙포토]

이건희 회장이 1997년 쓴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 나오는 내용이다. 선친인 이병철 회장 타계 후 13일 만인 87년 12월 1일 회장에 취임한 이건희 회장이 내부에서 본 당시 한국 최고기업 삼성은 ‘위기’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가 오랜 숙고 끝에 내놓은 것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로 유명한 ‘신경영 선언’이다.

이 회장은 회장 취임 5년째이던 93년 2월 임원들과 해외시장을 순방했다. 하지만 첫 방문지였던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베스트바이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 삼성TV를 보고 충격을 받고 순방을 중단한다. 이 회장은 또 사내 방송국이 제작한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격노한다. 삼성전자 세탁기 생산라인의 불량품 제조 현장에서 몰래 촬영한 영상에는 세탁기 뚜껑이 몸체와 맞지 않자 한 직원이 아무렇지 않게 칼로 뚜껑 테두리를 잘라내 조립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93년 6월 7일, 프랑크푸르트의 켐핀스키 호텔. 이 회장은 본사와 각국 법인장을 불러모은 비상경영회의에서 ‘양 경영’에서 ‘질 경영’으로의 근본적인 혁신을 주문한다. “결국 내가 변해야 한다.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 봐라. 농담이 아니다. 그래야 비서실이 변하고 계열사 사장과 임원이 바뀐다. 과장급 이상 3000명이 바뀌어야 그룹이 바뀐다. 나는 앞으로 5년간 이런 식으로 개혁 드라이브를 걸겠다. 그래도 바뀌지 않으면 그만두겠다. 10년을 해도 안 된다면 영원히 안 되는 것이다.”

“품질 위해서라면 생산라인 멈추라”

이건희 당시 삼성전자 회장이 2004년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을 방문해 방진복을 입고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사진 삼성]

이건희 당시 삼성전자 회장이 2004년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을 방문해 방진복을 입고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사진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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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혁신에서 하나의 변곡점이 된 ‘휴대전화 화형식’도 이 무렵이었다. 삼성은 90년대 초반 휴대전화 사업에 진출한다. 산악지형이 많은 국내에서 잘 터진다는 의미로 ‘애니콜’ 브랜드를 내세웠지만, 당시 글로벌 선두업체인 모토로라나 노키아 제품과 비교하면 통화 품질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이 회장은 95년 3월 구미사업장에서 ‘애니콜 화형식’이란 충격요법을 동원한다. ‘품질은 나의 인격이오 자존심!’이란 현수막을 내걸고 임직원 20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불량 휴대전화와 팩시밀리 등 15만 대를 불태웠다. 애니콜 화형식을 계기로 11.8%에 달했던 삼성 휴대전화의 불량률은 2%대까지 떨어졌다.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삼성의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졌다. “품질을 위해서라면 생산·서비스 라인을 멈추라”는 지시로 시작된 ‘라인 스톱제’, “문제가 생기면 다섯 번 정도는 이유를 따져 보라”는 이건희식 ‘5WHY’ 사고론, ‘디자인과 경영은 별개가 아니다’는 디자인 경영론, 학력·성별 제한을 없앤 ‘열린 채용’ 제도 같은 혁신이 계속됐다. 이를 통해 삼성은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이 회장은 94년 2월 비즈니스위크 표지 모델에 올랐다. [사진 삼성]

이 회장은 94년 2월 비즈니스위크 표지 모델에 올랐다. [사진 삼성]

1987년 12월 1일 삼성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2014년 5월 11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질 때까지 9659일 동안 삼성을 이끌었다. 이 기간 삼성은 현대 기업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했다.

취임 당시 약 9조9000억원이었던 삼성의 그룹 전체 매출은 2018년 약 387조원으로 39배 증가했다. 2000억원 정도였던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72조원으로 259배 증가했다. 삼성의 시장가치도 급등했다. 87년 1조원 수준이던 시가총액은 2018년 396조원으로 증가했다. 10만 명이던 삼성의 임직원 수는 52만 명으로 늘었다. 특히 D램 등 메모리 반도체와 스마트폰, TV 등 20개 품목이 시장점유율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 가치도 껑충 뛰었다. 컨설팅 업체인 인터브랜드가 최근 발표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Best Global Brands)’에서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623억 달러(약 71조원)로 처음으로 5위에 올랐다. 인텔, IBM 등 IT 강자는 물론 코카콜라와 도요타도 뛰어넘었다.

김태윤·김영민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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