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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주년 015B "옆방서 '월간윤종신' 나와..새로운 길 자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015B 장호일(왼쪽)과 이장우가 20일 서울 논현동 녹음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기자

015B 장호일(왼쪽)과 이장우가 20일 서울 논현동 녹음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기자

메인보컬이 없는 프로듀서 중심 밴드, 시대를 앞서간 실험적 음악, TV에 출연하지 않는 신비주의 등 015B는 한국 대중문화의 르네상스 1990년대에 새로움으로 무장한 X세대의 상징과도 같은 밴드였다.
‘이젠 안녕’ ‘아주 오래된 연인들’ ‘신인류의 사랑’ ‘슬픈 인연(리메이크)’ 등 많은 히트곡을 냈을 뿐 아니라 윤종신, 유희열, 솔리드 등이 015B 음반을 통해 대중에게 존재를 각인하기도 했다. 넥스트, 전람회 등과 함께 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이들이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21일 ‘너와 얘길 나눠보고 싶어’ 발표 #'객원보컬 이장우 24년만에 다시 참여 #"1집만 내고 해체할 줄 알았는데... #30년 채우다니 놀라워"

“1집 때만 해도 기념 앨범으로 만들고 곧 현업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오래 하게 됐네요.”
20일 서울 논현동의 ‘더(The) 015B’ 작업실에서 만난 장호일은 웃으며 말했다. 예전만큼 알려져 있진 않지만, 이들은 2018년부터 거의 매달 신곡을 발표해 유튜브 등에서 알리고 있다.
21일엔 내놓은 신곡 ‘너와 얘길 나눠보고 싶어’는 015B 특유의 감수성을 맛볼 수 있는 발라드곡이다. ‘5월 12일’, ‘어디선가 나의 노랠 듣고 있을 너에게’ 등 015B의 발라드곡을 도맡았던 이장우가 불렀다. 그가 015B 정규 음반에 참여한 건 1996년 6집 이후 24년 만이다. 다음은 장호일ㆍ이장우와의 일문일답.

015B 장호일(왼쪽), 이장우 씨가 20일 논현동 녹음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기자

015B 장호일(왼쪽), 이장우 씨가 20일 논현동 녹음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기자

-2018년부터 매달 싱글을 발표하고 있다. 계기가 있나

장호일(이하 장)=얼마 전까지만 해도 윤종신이 이 작업실 옆방에서 ’월간 윤종신‘을 작업했다. 그의 성격이 게으른 걸 알기 때문에 ’얼마나 가겠어‘ ’무슨 음반을 매달 내‘ 하면서 지켜봤는데, 굉장히 오래 하는 걸 보고는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우리도 따라가자.(웃음).
이장우(이하 이)=원래 따라 하는 걸 꺼려서 ’주간 015B‘ ’격월 015B‘로 낼까도 고민하더니, 결국 월간으로 내더라.

-오랜만에 이장우가 참여한 이유는?
장=한동안 이런 장르의 음악을 안 하다가, 최근 ‘레트로’라고 해서 90년대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다 보니 일종의 ‘자기 복제’를 해봤다. 그런데 젊은 후배들에게 맡겨보니 창법도 다르고 예전의 그 맛이 안 났다. 그러다가 생각해보니 이장우가 부르면 되겠더라. 또 목소리가 서정적이라서 사람들의 향수를 일으킨다.
이=늘 다시 해보고 싶었는데 요즘 015B가 실험적 음악을 많이 하다 보니 그동안에는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더라. (정) 석원이 형이 본인이 가성으로 부른 데모 버전을 줬을 땐 ‘오랜만에 불러선 이렇게 어려운 노래를 부르게 하다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사 하나하나 써보면서 음의 높낮이도 혼자 조절하고 시험공부 하듯이 준비하며 노래했다.

015B에게 대중적 성공을 안긴 3집 '아주 오래된 연인들' 장호일은 가장 아끼는 앨범으로 3집을 꼽았다. [사진 015B]

015B에게 대중적 성공을 안긴 3집 '아주 오래된 연인들' 장호일은 가장 아끼는 앨범으로 3집을 꼽았다. [사진 015B]

고교 때부터 최장기간 객원보컬 이장우 

-015B 앨범에서 2집을 시작으로 6집까지, 가장 오랜 기간 객원 보컬로 활동한 게 이장우다.
장=앨범에서 발라드가 한 두 곡 들어가는데 항상 1순위가 장우였다. 015B의 정서에 맞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목소리라서 대안이 없었다.
이=솔직히 말하면 015B로부터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이런 그룹이 있는 줄도 몰랐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는데, 학교에 가서 친구한테 015B라고 아냐고 물어보니, 친구가 요즘 뜨는 그룹이라고 말해줘서 참여했다.

-윤종신, 김돈규 등 많은 가수가 015B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객원가수를 쓴 이유는?
장=그룹 초창기 멤버가 신해철을 제외한 '무한궤도' 잔류 멤버들이다. 다들 '밴드는 왜 보컬과 연주자는 엔(N)분의 1이 아니고 보컬이 90, 나머지는 10 정도만 주목을 받냐'는 생각도 있었고, 어차피 곧 흩어질 팀이니 그냥 메인 보컬 없이 앨범을 만들자고 했다. 그게 전통이 됐다. 깊은 생각은 아니었다.
이=당시엔 특이한 시스템이어서 낯설기도 했었지만 한 사람 목소리만 계속 들으면 지겨울 수도 있는데 015B는 종합선물세트처럼 골라 듣는 재미가 있어 좋아하는 분도 많았다.

015B 정석원, 장호일과 객원가수 김돈규 (왼쪽부터)

015B 정석원, 장호일과 객원가수 김돈규 (왼쪽부터)

-곧 흩어질 팀이라는 건, 015B를 오래 할 생각이 없었던 건가?
장=무한궤도가 소속된 대영기획은 당시 인기가 높았던 메인 보컬 신해철을 솔로로 독립시키기로 이미 짜인 것 같았다. 그래서 음악을 계속하고 싶었던 정석원, 조형곤 등 무한궤도 세션 멤버들이 ’우린 뭐하지‘라며 쭈뼛거리고 있으니까 회사에서 “그럼 너희들은 기념 앨범이나 내라”고 만들어준 게 015B 1집이다. 이때는 직업 음악인으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또, 대학생 동아리 밴드 정도로 인식해서 당시 멤버 중에 일부는 학교로 돌아가거나 직업을 택했다.

-그런데 대박이 난 것인가
장=2집이 ‘이젠 안녕’ 등으로 인기를 얻자 회사에서도 계속 다음 음반을 내게 해줬고 3ㆍ4집은 밀리언셀러가 됐다. 그런데 사장님은 언제나 “너희 음반은 5만장밖에 안 팔려”라고 말했다. 나중에 6집을 우리가 직접 만들어보고는 사장님이 돈을 많이 버셨다는 걸 알게  됐다(웃음).

1위에도 방송출연 안해...소개팅 핑계로 스케쥴 거절도 

015B의 '93 내일은 늦으리' 공연모습

015B의 '93 내일은 늦으리' 공연모습

-TV에 나가지 않은 것도 특이했다. 당시 가요순위 프로그램에 1위를 하고도 나오지 않은 것인 화제였다.
장=모두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해서 밴드 활동에 매이는 걸 꺼렸고, 스케줄이 잡히니 소개팅 잡혔다고 거절하는 멤버도 있었다. 외부노출을 꺼리는 정석원의 성향도 컸다. ‘신인류의 사랑’이 1등을 했다고 했는데, 안 나간다고 했다. 그래서 안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TV를 보니까 생방송인데 발표만 하더라. 회사에 컴플레인이 들어와서 절충안으로 그 이후로는 객원가수 김돈규만 나갔다.
이=015B가 TV 안 나간다고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났는데, 1등 준다고 나가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을까. 다만 당시에 015B를 끌어내는 게 서로 관심사여서 누가 먼저 1등을 줘보느냐를 갖고 눈치 게임을 벌였다고 들었다.

-정석원의 근황이 궁금하다. 015B의 작사와 작곡을 도맡는데도 소식은 알려진 게 없다.
이=잘 있다. 나도 얼굴을 자주 보지는 않지만, 전화통화는 자주하고, 노래 작업 때도 봤다. 다만 원래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니까…
장=2006년 10년만에 015B 활동을 재개할 때, 정석원이 내건 조건이 “외부활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였다. 집과 작업실만 왔다 갔다 한다.

-015B 팬들은 발라드 노래 대부분이 정석원의 옛 여자친구에 대한 내용이라고 알고 있다.
장=대단한 건 아니고, 대학 신입생 때의 만남을 예쁘게 포장한 것이다. 드라마틱한 요소는 없고, 초반만 하더라도 큰 의미는 없었다. 그런데 발라드 노래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양념을 넣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5집의 ‘그녀의 딸은 세 살이래요’는 우리끼리 모여서 상상한 이야기다. 픽션이다.
이=그런데 많은 팬은 그런 환상을 갖고 좋아하는데, 갑자기 이런 내용이 나가면 거짓말쟁이들이라고 실망하지 않을까요.
장=이제 우리 팬들도 나이가 있는데…(웃음)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015B는 당초 기념 공연을 준비하기도 했으나,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 19) 사태 등으로 무기한 연기했다고 한다. 전성기만큼 주목받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신곡을 발표하는 이유에 대해 장호일은 “뮤지션은 음악을 계속해야죠. 다른 것을 떠나서 자아실현이에요. 안 하면 불행하더라고요”라고 웃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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