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왕의 남자'가 임금 앞에서 광대 공연 하던 곳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28)

교태전에서 바란본 강녕전과 근정전의 모습. 강녕전은 원래 왕께서 편히 머물고 사람을 만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좀 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것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중앙포토]

교태전에서 바란본 강녕전과 근정전의 모습. 강녕전은 원래 왕께서 편히 머물고 사람을 만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좀 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것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중앙포토]

강녕전의 높은 월대(月臺)는 그 전각에 딸린 외부공간의 확장으로 웬만한 행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왕은 이곳에서 종친들을 위한 연회를 열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사극 드라마에서처럼 왕의 마음을 달래고 죄를 빌기 위해 석고대죄를 했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 강녕전은 원래 왕께서 편히 머물고 사람을 만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강녕전은 좀 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것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세종은 강녕전에서 곡연(曲宴: 작은 규모의 잔치)을 베풀고, 소헌왕후의 탄신일이나 온천을 다녀온 후에도 왕비를 위해 강녕전에서 잔치를 했다. 동궁 문종의 생일잔치를 강녕전에서 베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연회 하다가 밤중이 되어서야 파하기도 하였다.

또 새해가 되면 새해의 회례연(會禮宴)을 근정전에서 베풀고 임금이 사정전에서, 왕비가 강녕전에서 각각 잔치했다. 회례연은 조선시대 설날과 동지에 임금과 문무 관료들이 궁궐에 함께 모여 술과 음식을 들며 베풀던 큰 잔치이다. 왕이 베푸는 잔치에는 왕세자 이하 모든 문무 관료들이 참가하며, 왕비가 이끄는 내전에서는 별도로 잔치를 베풀어 왕비, 세자빈 이하 모든 내외명부(內外命婦)가 참석했다.

이때의 잔치는 세종께서 관료들로부터 회례연의 배례를 받고 다시 사정전에서 술과 음식을 대접한 것이다. 그리고 소헌왕후는 강녕전에서 내외명부를 거느리고 잔치를 베풀었다. 종친과 관료들에게 잔치를 베풀 때 왕은 대체로 사정전을 이용하고 강녕전은 왕후께서 내외명부를 거느리고 잔치를 펼칠 수 있게 배려했다. 왕비의 처소인 교태전(交泰殿)이 세종 25년(1443)에 증축되었기 때문이다.

왕의 남자, 강녕전에서 나례를 보이다

연산군일기 연산 11년(1505년) 11월 9일 3번째 기사에 따르면 왕이 전교하기를 “금년에는 경복궁 강녕전 널찍한 곳에서 나례(儺禮)를 구경하겠으니, 정재인(呈才人: 대궐 안 잔치에 춤과 노래를 하는 사람)을 빠짐없이 불러 모으게 하라”고 했다.

영화에서 공길과 장생의 대화는 시대적 풍자를 하는 언어유희인데 이는 옛 문헌의 표현을 빌리면 '소학지희'의 일종이다. [사진 영화 왕의남자 스틸]

영화에서 공길과 장생의 대화는 시대적 풍자를 하는 언어유희인데 이는 옛 문헌의 표현을 빌리면 '소학지희'의 일종이다. [사진 영화 왕의남자 스틸]

2005년 이준익 감독이 만든 ‘왕의 남자’는 여자보다 더 매혹적인 신인 배우 이준기가 등장한 영화다. 영화에서 남사당패의 광대 장생(감우성 분)은 힘 있는 양반들에게 농락당하던 생활을 거부하고,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이자 최고의 동료인 공길(이준기 분)과 보다 큰 놀이판을 찾아 한양으로 올라온다. 이들은 드디어 임금 앞에서 공연을 펼쳤는데 이 당시의 놀이마당이 강녕전 마당일 수 있다는 근거가 연산군일기에 나온다.

연극 ‘爾(이)’는 왕으로부터 이라고 불리며 사랑을 받았던 광대 공길이 권력의 맛에 취해 자신의 본질을 잊게 되지만, 결국 광대 본연의 풍자 정신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조선시대의 언어유희 ‘소학지희(笑謔之戱)’를 통해 풀어낸 수작이다. 영화 ‘왕의 남자’는 여기에 드라마틱한 광대의 삶과 화려한 공연을 더 해 새롭게 태어났다.

공길과 장생의 대화
공길: “너는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프냐? 양반으로 나면 좋으련?”
장생: “아니, 싫다!”
공길: “그럼 왕으로 나면 좋으련?”
장생: “그것도 싫다! 난 광대로 다시 태어나련다!”
공길: “이놈아! 광대짓에 목숨을 팔고도 또 광대냐?”
장생: “그러는 네년은 뭐가 되고프냐?”
공길: “나야, 두말할 거 없이 광대, 광대지!!!!”
장생: “그래, 좋다. 징한 놈의 이 세상 한 판 신나게 놀고 가면 그뿐! 광대로 다시 만나 제대로 한 번 맞춰보자!”
- 영화 ‘왕의 남자’ 마지막 줄타기 장면에서

영화에서 공길과 장생의 대화는 시대적 풍자를 하는 언어유희인데, 이는 옛 문헌의 표현을 빌리면 소학지희의 일종이다. 곡예인 규식지희와 구별된다. 한 사람의 광대가 자문자답하는 형식으로 배우의 재담이나 익살 등으로 이끌어가던 일종의 즉흥극을 소학지희라고 한다. 가면이나 인형 없이, 곡조 없는 말로 하는 독립적인 연극이기도 하지만 산대희 등 놀이의 일부로 단편적인 사실을 희극적으로 다룬다.

새해가 되면 새해의 회례연을 근정전에서 베풀고 임금이 사정전에서 잔치하고 중궁(中宮)이 강녕전에서 잔치하였다. 사진은 경복궁 사정전. [중앙포토]

새해가 되면 새해의 회례연을 근정전에서 베풀고 임금이 사정전에서 잔치하고 중궁(中宮)이 강녕전에서 잔치하였다. 사진은 경복궁 사정전. [중앙포토]


연산군일기 연산 11년(1505년) 12월 29일 2번째 기사에 따르면 왕이 전교하기를 “『주례(周禮)』에 방상씨(方相氏)가 나례를 맡아 역질을 쫓았다면 역질 쫓는 것과 나례가 진실로 두 가지 일이 아닌데, 우리나라 풍속이 이미 역질은 쫓았는데 또 나례를 하여 역질을 쫓는 것은, 묵은 재앙을 쫓아버리고 새로운 경사를 맞아들이려는 것이니, 비록 풍속을 따라 행하더라도 오히려 가하거니와, 본디 나례(儺禮)는 배우의 장난으로 한 가지도 볼 만한 것이 없으며, 또 배우들이 서울에 떼를 지어 모이면 표절(剽竊)하는 도둑이 되니, 앞으로는 나례를 베풀지 말아 옛날 폐단을 고치게 하라”고 했다.

이보다 앞서 배우 공길(孔吉)이 늙은 선비 장난을 하며, 아뢰기를 “전하는 요(堯)·순(舜) 같은 임금이요, 나는 고요(皐陶) 같은 신하입니다. 요·순은 어느 때나 있는 것이 아니나 고요는 항상 있는 것입니다” 했다.  또 『논어』를 외어 말하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 하니, 왕은 그 말이 불경한 데 가깝다 하여 곤장을 쳐서 먼 곳으로 유배(流配)하였다.

조각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