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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한병에 11만원? "막 먹는 막걸리 잊어달라"는 이 남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1만원짜리 막걸리 ‘롤스로이스’를 만든 해창주조장의 오병인 대표. 감미료를 넣지 않고 찹쌀로 빚어 두 달간 숙성한 술은 걸쭉하면서 담백한 단맛을 자랑한다. 김상선 기자

11만원짜리 막걸리 ‘롤스로이스’를 만든 해창주조장의 오병인 대표. 감미료를 넣지 않고 찹쌀로 빚어 두 달간 숙성한 술은 걸쭉하면서 담백한 단맛을 자랑한다. 김상선 기자

“막걸리는 우리가 종주국이니까 한국의 최고가 세계 최고가 되는 거죠.”
땅끝 마을 해남에 위치한 ‘해창주조장’ 오병인(59) 대표의 말이다. 최근 그는 11만원짜리 막걸리 ‘롤스로이스’를 출시했다. 막걸리가 한 병에 11만원? 자다가도 눈이 번쩍 뜨일 가격이지만 오 대표에게는 다 이유가 있다.
“와인 종주국인 프랑스 와인은 몇 천만 원짜리도 마시면서 우리는 우리 전통주에 너무 인색해요. 왜 막걸리는 늘 1달러(약 1100원)짜리여야 하나요? 언제까지 외국인들에게 막걸리를 ‘먹을 게 없어서 주린 배를 달래던 술’ ‘막 걸러서 막 먹는 술’로만 설명해야 하죠. 이제 막걸리도 격 있게 즐겼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최소 100달러(약 11만2000원) 짜리 막걸리도 있어야죠. 그래서 롤스로이스를 만들었어요.”
서울에서 도시가스공사에 근무하며 관련 사업을 하던 오 대표는 2008년 해창주조장을 인수했다. 바다로 이어지는 삼산천 앞에 자리 잡은 해창주조장은 1927년 일본인에 의해 설립됐고, 해방과 함께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후 2대, 3대 주인을 거쳐 지금의 오 대표가 4대 주인이 됐다. 은퇴 후 살 집을 구하려고 전국을 여행하다 40여 종의 수목이 어우러진 해창주조의 일본식 가옥과 정원이 맘에 들어 덜컥 집부터 사버렸다고 한다. 해창주조장 막걸리를 좋아해 서울에서 매번 주문해 먹었던 그는 “놀면 뭐하나” 하는 생각에 아내 박리아씨와 함께 막걸리학교를 다니며 양조를 익혔고, 지금까지 해창주조장의 맥을 잇고 있다. 현재 해창주조장에선 6도, 9도, 12도짜리 막걸리 3종을 시판 중이다. 그리고 최근 작정하고 18도짜리 롤스로이스를 내놓았다.

해창주조가 최근 출시한 11만원짜리 막걸리 '롤스로이스' 패키지. 장진영 기자

해창주조가 최근 출시한 11만원짜리 막걸리 '롤스로이스' 패키지. 장진영 기자

인공 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고 계약재배한 해남 유기농 찹쌀과 맵쌀로만 빚은 롤스로이스는 덧술을 세 번 더한 사양주로 약 2개월간의 숙성 기간을 거친다. 일반적인 막걸리의 발효가 5일이면 끝나는 것에 비하면 긴 시간의 힘이 응축된 술이다.
전화주문만 받아 택배를 보내는 해창주조장은 오 대표와 아내 오롯이 두 사람의 힘으로만 술을 빚는다. 주문량이 그때그때 달라지기 때문에 직원을 둘 수가 없단다. 요즘은 아내가 많이 힘들어해서 양조를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 2명을 아르바이트로 들였지만 여전히 반자동 기계와 함께 대부분의 과정을 손으로 한다.

그런데 술 이름은 왜 롤스로이스일까. “제조업계 최고의 상징”이라는 게 오 대표의 설명이다. 해창주조장이 생긴 게 1927년. 그래서 오랜 단골인 ‘식객’ 허영만 화백에게 부탁해 1920년대 롤스로이스를 레이블에 그려 넣었다고 한다.
“술도 스토리텔링이 돼야 해요. 어디 가서 11만원짜리 막걸리를 마셨는데 이름이 롤스로이스다, 이러면 다들 그 스토리가 궁금하겠죠.”

해창주조가 최근 출시한 11만원짜리 막걸리 '롤스로이스' 레이블. '식객' 허영만 화백이 그린1920년대 롤스로이스가 들어가 있다. 사진 오병인

해창주조가 최근 출시한 11만원짜리 막걸리 '롤스로이스' 레이블. '식객' 허영만 화백이 그린1920년대 롤스로이스가 들어가 있다. 사진 오병인

오 대표의 바람대로 롤스로이스는 현재 막걸리 매니아와 전통주 전문가들 사이에서 화제다.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사 먹어봤다” “너무 궁금해서 먹어봤다”는 후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일단 일반 대중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맛’에 대한 이견은 없다. “18도임에도 그 도수가 티가 나지 않고 좋은 차를 마시는 것처럼 스르륵 목을 타고 내려간다. 술에 한 글자 더 붙어 예술이 되는 술이다”(블로거 투명한***) “우아한 단맛 한 모금에 눈이 크게 떠지는 특별한 명품”(블로거 비니**) 등의 후기가 눈에 띈다. 우리술 홍보대사이자 전통주 소믈리에 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개그맨 정준하씨는 “유산균 덩어리를 먹는 느낌이다. 가격 이슈를 제외하고 술맛으로만 평가한다면 아주 훌륭한 맛이다. 중요한 사람들과 막걸리의 고급스러움을 이야기하며 먹고 싶은 맛”이라고 평했다. 한국식품연구원 기획본부장 김재호 박사도 “술 자체로만 판단하면 상당히 좋은 술이다. 밸런스가 좋다. 추천하고픈 술”이라고 했다.
문제는 패키지다. 일반 막걸리 병인 페트병을 사용한 조잡한 디자인에선 도저히 11만원의 가치를 느낄 수 없다는 게 공통 의견이다. 한국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은 “술의 가격은 맛보다 가치에 비례한다. 플라스틱에, 입국(일본의 개량 누룩)에, 형편없는 디자인에, 특별하지 않은 원료를 사용하고도 11만원의 가격을 매겼을 때 소비자가 얼마나 동의할지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의 이대형 박사도 “레이블에서 느껴지는 혼란스러움이 술 전체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고 평했다. 우리술 이야기 플랫폼인 ‘대동여주도’의 이지민 대표는 “막걸리의 고급화를 선도하는 막걸리가 나왔다는 건 크게 반길 일이지만 대한민국 최고가 막걸리라는 타이틀을 납득시킬 수 있는 설명과 디자인, 패키지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술의 위상을 높이는 이미지 마케팅과 단순 화제성 노이즈 마케팅 사이에서 롤스로이스의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오 대표는 “다음 목표는 ‘찹쌀 위스키’”라고 말했다.
“롤스로이스 20L를 증류하면 중국의 ‘수정방’보다 맛있는 60도짜리 술 딱 1병이 나옵니다. 원가를 계산해보니 1병에 300만원 가격이에요. 우리나라 600개 양조장이 다 편하고 부담 없는 가격의 술을 만드니 해창만큼은 한국의 자존심을 건 국제적 위상의 술을 만들고 싶습니다.”
11만원짜리 막걸리의 출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판단은 소비자의 몫인 것 같다.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김상선,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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