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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정치 위해 봉사” 중국이 한국전쟁을 기념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 작전 70주년 기념 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 작전 70주년 기념 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1950년 6월 25일 조선(북한) 내전이 폭발했다. 미국 정부는 세계 전략과 냉전 사유에서 출발해 조선 내전에 무장간섭을 결정했고, 7함대를 파견해 대만해협에 침입했다.”
시진핑(習近平67)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6‧25 전쟁에 중국군이 개입한 70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한 연설의 일부다. 미 7함대는 10년 전 국가부주석으로 했던 60주년 연설에 없던 내용이다. 홍콩 시사 평론가 류루이사오(劉銳紹)는 그때그때 달라지는 중국의 역사 발언에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에게 역사는 눈앞의 정치적 필요를 위해 봉사한다”고 설명한다.
다음은 류루이사오가 지난 21일 홍콩 명보에 게재한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왔다)’를 통해 본 중공의 역사관” 칼럼이 밝힌 중공이 보는 역사관의 네 가지 특징이다.

지난 9월 19일 6년만에 재개관한 단둥 항미원조기념관에 북한 김일성과 마오쩌둥이 악수하는 사진이 걸려있다. [항미원조기념관 웹사이트 캡처]

지난 9월 19일 6년만에 재개관한 단둥 항미원조기념관에 북한 김일성과 마오쩌둥이 악수하는 사진이 걸려있다. [항미원조기념관 웹사이트 캡처]

첫째, 중공의 눈에 역사는 눈앞의 정치적 필요에 봉사하는 존재다. 중국의 한국전 개입 40‧50‧60주년 당시 중공의 기념 규모와 내용, 논조는 올해처럼 거창하지 않았다. 올해는 미·중 관계 악화 때문에 ‘항미원조’ 기념을 통해 뭔가를 보여줄 필요가 생겼다. 문제는 중국의 ‘좌파’가 발동한 맹목적인 적대감을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일단 폭발하면 수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지난 9월 27일 인천 국제공항에서 한국군 의장대가 중국 인민해방군 장병에게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군 유해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27일 인천 국제공항에서 한국군 의장대가 중국 인민해방군 장병에게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군 유해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둘째, 중공은 역사 연구를 존중하지 않는다. 늘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이유’로 그때그때 다르다. 역사에서 경험과 교훈을 얻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국전쟁도 마찬가지다. 외국을 상대로 하는 중공 기관지 ‘인민일보 해외판’은 2013년 “조선 전쟁은 전략적 오판으로 발발”했다며 “시의에 맞지 않은 전쟁”이라는 글을 실었다. 인민일보 해외판의 SNS 계정인 ‘협객도(俠客島)’는 북한이 핵‧ICBM 실험에 몰두하던 2017년 5월 “만일 김일성이 (조선) 반도를 통일하려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전쟁이 폭발할 수 있었나. 중국은 북한이 그 해 ‘제멋대로(任性)’ 한 경거망동의 대부분의 대가를 치렀다”고 북한을 비난한 바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등 수뇌부가 지난 21일 평남 회천의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 묘를 참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등 수뇌부가 지난 21일 평남 회천의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 묘를 참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셋째, 중공은 역사적 사실까지 부정한다. 자신이 이미 말했던 내용도 포함된다. 관점의 편향만 문제가 아니다. 20년 전 중국중앙방송(CC-TV)은 30부작 드라마 ‘항미원조’를 제작했다. 김일성이 패퇴한 뒤 중국에 도움을 요청하고, 김일성이 베이징에 가서 마오쩌둥에게 감사하는 역사적 사실을 다룬 장면이 담겼다. 하지만 북한이 김일성은 배우가 연기할 수 없으며, 당시 역사적 사실을 말해서 안 된다며 항의해 해당 드라마는 방영되지 못했다. 중공 특유의 정치 지상, 임무 우선 문화 때문에 늘 역사를 왜곡한다. 1970년대 타도의 대상이던 공자를 공자학원으로 되살리고, 항일전쟁에서 중공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8년 전쟁을 ‘14년 전쟁’으로 바꿨다.

1951년 중국인민지원군 모 부대에서 열린 항미원조 동원 대회. 무대에 오성홍기와 펑더화이와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이미지차이나]

1951년 중국인민지원군 모 부대에서 열린 항미원조 동원 대회. 무대에 오성홍기와 펑더화이와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이미지차이나]

넷째, 중공은 자신에 유리한 역사만 말하고, 불리한 역사는 감춘다. 한국전쟁도 마찬가지다. 한국전쟁에서 중국군 포로는 약 2만여 명. 중국으로 돌려보낸 포로는 7110명이었다. 중공 당원은 그 가운데 2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90%가 당적을 박탈당했다. 이유는 하나같이 ‘변절’, ‘비밀누설’, ‘적에 봉사’였으며 “감시 관찰” 조치했다. 전쟁포로 장쩌스(張澤石)는 귀국 후 계속된 정치적 탄압을 제소했고 27년에 걸친 싸움 끝에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전우 대부분은 누명 속에 시달리다 자살 등으로 생을 마감했다. 중국 공식 역사에는 모두 언급되지 않는 부분이다.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베이징 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에서 개막한 한국전 참전 70주년 전람회에 참석했다. 그는 ’70년전 영웅적인 중국인민지원군이 정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선(북한) 인민·군대와 함께 생사를 잊고 피흘려 싸워 항미원조(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운)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둬 세계 평화와 인류진보사업에 거대한 공헌을 했다“고 주장했다. [신화=연합뉴스]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베이징 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에서 개막한 한국전 참전 70주년 전람회에 참석했다. 그는 ’70년전 영웅적인 중국인민지원군이 정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선(북한) 인민·군대와 함께 생사를 잊고 피흘려 싸워 항미원조(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운)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둬 세계 평화와 인류진보사업에 거대한 공헌을 했다“고 주장했다.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주석의 23일 연설은 화약내 자욱한 선전포고문을 연상시켰다. “중국 인민은 침략자를 대하면 그들이 알아듣는 말로 대화할 줄 안다. 전쟁으로 전쟁을 막고, 무력으로 창을 막고, 승리로 평화를 얻고, 존중을 얻는다”고 했다.
류 평론가는 “중공 눈에 역사라는 단어는 NEXT다. 갑자기 지나간다. 어떤 일들은 마치 발생조차 하지 않은 듯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중공의 역사관에는 역사의 진실이 존재하지도 않고, 진실을 구할 수도 없다는 이야기다.
사공관숙 중국연구소 연구원=sakong.kwans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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