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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50년]"사형시킨 4명 대방동에 묻었다" 48년만의 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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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사형 집행 후 시신들을 비밀리에 대방동에 묻었습니다.” 

‘실미도 부대’의 서울 도심 총격전 후 공작원 중 생존자 4명은 군사재판을 거쳐 1972년 3월 10일 사형됐다. 군은 이들의 매장지를 비밀에 부쳤다. 2000년대 들어 실미도 부대가 세상에 알려졌지만, 사형당한 공작원 4명의 암매장지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날의 총성을 찾아…실미도 50년⑭]김중권 전 공군 검찰부장 증언

중앙일보는 사형당한 공작원 4명의 암매장지를 밝히기 위해 당시 공군본부 검찰부장으로 사형에 관여한 김중권 전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을 최근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1967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공군 검찰부장, 서울고등법원 판사, 민정당 국회의원과 21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김중권 전 공군본부 검찰부장이 8월 24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여운하 기자

김중권 전 공군본부 검찰부장이 8월 24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여운하 기자

공작원 4명을 사형한 뒤 어디에 묻었나.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느냐…. 지금까지는 보안 때문에 말하기가 굉장히 부담스러웠는데요. 지금 처음 하는 이야기입니다. 매장지는 서울 동작구 대방동이었습니다. 매장하려면 관할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허가도 받고 비밀 유지도 시키기 위해 대방동사무소를 2번 정도 왔다 갔다 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게 클로즈업되면 문제가 될 수 있어서 굉장히 은밀하게 진행했습니다. 매장지를 대방동으로 정한 이유는 공작원 4명의 당시 주소가 공군본부 소재지(대방동)였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매장 지점 등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김 전 검찰부장의 증언에 앞서 국방부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서울 구로구 오류동 일대(2325전대 뒷산 등)와 경기 고양시 벽제시립묘지를 유력한 암매장지로 지목하고 발굴 활동을 벌였지만 허사였다. 현재 국방부는 “벽제시립묘지에 묻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시립 묘지에 묻혔던 시신이 홍수에 의해 유실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벽제시립묘지는 1971년 8월 23일 서울 총격전 사태 당일 숨진 공작원 20명의 유해가 발굴된 곳이기도 하다. 이번에 김 전 검찰부장이 제3의 장소인 서울 대방동을 암매장지로 지목하면서 관련 조사와 발굴 활동이 필요해 보인다.

“사형 대신 베트남전 제안하며 상고 포기시켜”

김 전 검찰부장은 실미도 사건과 관련해 새로운 증언을 더 내놓았다. 공작원 4명이 1심과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이후 대법원에 상고하려고 했지만, “상고를 안 하면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것으로 사형을 면하게 해주겠다”는 식의 회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공작원들은 사형을 선고받고도 상고를 포기했다.

공작원들이 상고를 포기하도록 회유한 데는 실미도 부대를 끝까지 들춰내지 않으려는 공군의 계산이 숨어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공군은 사형을 선고받은 공작원들이 상고할 경우 대법원에서 심리를 진행하는 동안 실미도 부대에 대한 진상이 밝혀질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공작원들은 사형을 선고받고도 왜 상고를 포기했나 
“대법원은 군사 법원이 아니라 일반 법원이잖아요. 그럼 모든 기록이 다 그곳으로 이첩되고, 실미도 부대의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헌병대에서 ‘너희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진데 베트남전에 파병 가면 어떤가’라고 했더니 공작원들이 상고를 포기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베트남전에 보낼 생각도 없었으면서 공작원들을 속인 건지, 실제 보내려고 했는데 추후 상황 변화에 의해 못 보낸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김중권 수사해 정확한 암매장지 찾아야”

8월 23일 안김정애 전 국방부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 조사2과장이 암매장지로 추정되는 서울 오류동의 한 야산 인근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8월 23일 안김정애 전 국방부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 조사2과장이 암매장지로 추정되는 서울 오류동의 한 야산 인근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김중권 전 공군 검찰부장이 공작원 4명의 암매장지로 지목한 서울 대방동은 국방부가 추정하고 있는 벽제시립묘지, 오류동과 완전히 달라 논란이 예상된다. 2005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에서 활동한 안김정애 전 과장은 사형 집행과 암매장에 관여한 77명 중 조사에 응한 10여 명의 진술을 근거로 사형을 집행한 공군 2325전대 인근(오류동)을 암매장지로 지목했다. 특히 암매장 당시 공군이 극도로 보안에 신경을 썼기 때문에 시신 4구를 오류동에서 대방동으로 굳이 옮기지 않았으리라는 게 안김 전 과장의 추론이다.

또 중앙일보가 입수한 국방부 비공개 문서에 따르면 김 전 검찰부장이 오류동을 암매장 장소로 보고받은 정황도 있다. 과거사진상규명위에 앞서 활동한 국방부 실미도사건 진상조사 T/F가 2005년 6월 17일 공군본부를 방문해 공군 법무감을 면담한 결과 과거 김 전 검찰부장이 공군 법무감에게 “오류동 안에서 처리(암매장)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2011년과 2013년 오류동 내 암매장 의심 지역에서 공사 도중 무연분묘(추정)가 14기 이상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이 유골은 경기 평택시의 한 납골당에 안치돼 있다.

“수사 통해 암매장지 찾아야”

김 전 검찰부장은 이 같은 정황에 대해 “매장 장소와 관련 없는 정보 혹은 잘못된 정보”라며 “암매장지는 대방동이 맞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안김 전 과장은 김 전 검찰부장의 증언에 대해 “수사를 통해 정확한 매장 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김 전 검찰부장이 오류동 내 정확한 지점 추적을 방해하기 위해 엉뚱하게 대방동을 가리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 “일단 재조사 추진”

국방부는 “암매장지에 대한 재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말 재출범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서다. 국방부 인권담당관실 관계자는 “유족의 신청 등에 의해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재조사를 한다면 국방부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할 예정이다”라며 “재조사 이후 수사 등의 후속 조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회에 계속.

김민중·심석용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지난 기사〉
#그날의 총성을 찾아…실미도 50년
https://www.joongang.co.kr/issue/11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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