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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교육, 공정성보다 다양성 찾는 노력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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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호 08면

중앙일보대학평가원 대담

김창환 교수와 최성수 교수가 지난 22일 기자와 인터넷을 통해 한국 대학 교육을 주제로 비대면 화상 대담을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김창환 교수와 최성수 교수가 지난 22일 기자와 인터넷을 통해 한국 대학 교육을 주제로 비대면 화상 대담을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대학교육의 공정성 문제를 탐색했던 중앙일보대학평가원 리포트(본지 10월17일자 1,6,7면)가 보도된 후 메일과 댓글 등을 통해 많은 문제제기와 논란이 있었다. 이 리포트는 우리나라 저소득층이 대학교육을 통해 소득계층의 상향이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현행 대입제도는 과연 공정성을 강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이 분야를 계량적으로 분석한 두 개의 논문 결과를 토대로 대학교육의 현실을 드러낸 기획이었다.

기회의 평등 지나치게 강조하면 #특정 대학·학과로 쏠림 심화 #다양성과 불평등은 동전의 양면 #두 가치 트레이드오프도 필요해

기획이 나가자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저소득층이 명문대에 많이 가는 게 공정한 것이냐’ ‘어차피 상위 계층은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소득층에 특혜를 주면 중간층이 소외된다’는 등의 현실적 문제와 ‘도대체 무엇이 공정한 것이냐’는 근원적 문제도 제기됐다.

이에 평가원은 해당 논문을 썼던 김창환(미국 캔자스대, 이하 김) 교수, 최성수(연세대 사회학과, 이하 최) 교수와 함께 보도 후에 제기된 문제들을 중심으로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대담은 줌을 활용한 비대면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어떠한 입시제도도 상위 계층이 유리

대학평가원

대학평가원

보도 후 반응을 보면서 대학교육의 공정성을 보는 시각 차이도 크다는 걸 느꼈다. 올초 뉴욕타임스 기사에선 소득에 반비례하는 가점 점수제에 대한 논의를 했는데 우리나라에선 저소득층에 대한 혜택을 더 줘야 한다는 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 반응이 많더라. 공정에 대한 해석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는 계량적 분석을 통해 불공정한 현상은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기회 균등이란 무엇이며, 공정한 상태는 무엇이며, 어떻게 성취해야 하는가는 수치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다. 이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하는 문제다.

=공정성이란 평등의 관점에서 기회의 평등을 말하는 것이다. 동일한 기회가 주어지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그런데 기회의 평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지 않은데 교육에서 갑자기 평등해질 수는 없다. 공정이란 느낌은 있어도 기준으로 세우기는 어렵다. 사실 공정한 입시제도도 없다. 어떤 방식도 상위 계층이 유리하다.

=공정성이란 이상적 가치로는 논할 수 있지만 현실적 가능성이 과연 있는가. 이런 추상적 가치를 사회 개혁의 어젠더로 내놓는 게 현명한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할 필요도 있다.

공정의 화두가 위험하다는 말인가? 교수님들도 원활한 계층 이동의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논문을 쓴 게 아닌가.
=정책 목표를 공정성 강화에 두면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다. 하나는 공정성이 과연 무엇인지 합의가 안 된다는 것이다. 혹자는 객관식 평가 성적으로 평가하는 게 공정하다고 말하고, 혹자는 내가 다른 능력을 지녔는데 객관식 문제로만 평가받는 게 불공정하다고 말한다. 이번 연구처럼 ‘공정성=계층이동 개선’이라고 봐도 문제가 있다. 계층이동 개선을 목표를 뒀을 때 희생해야 하는 가치들이 있다. 이번 기획에 대해서도 ‘저소득층은 6%라도 올라가는데, 중간층은 그마저 없다’고 말씀하신 분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공정성 강화 시도는 대부분 실패했다. 그나마 세계적으로 볼 때 한국은 오히려 입시에서의 공정성은 상당히 성공한 나라다. 다만 사람마다 지향하는 게 다른데 ‘공정’이라는 추상적 구호를 앞세우고, 이게 도달해야 할 목적지처럼 몰고 가는 건 위험하다는 말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계층이동이 원활한 사회를 원한다. 그리고 교육을 그 중요한 관문으로 생각한다.
=공정·형평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교육이 추구해야 할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는 점에서 출발하면 어떨까. 경쟁에 매몰된 교육이 아니라 다양성을 추구하는 교육, 학생들이 각자 꾸는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시스템이 중요하지 않나. 그래서 학교 선택권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특목고, 특수고 같은 교육의 다양화는 불평등을 발생시켰다. 사실 다양성과 불평등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어느 지점에선 두 가치의 트레이드오프가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다양성을 선택하는 순간 공정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느슨한 공정성을 선택할 수 있다. 성적이라는 단일 기준이 아닌 다양한 기준이 공정성 안에 있다. 한국엔 대학 서열이 분명하고, 입시만 잘 하면 인생이 보장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대학도 그쪽 방면으로만 달렸다. 사실 한국 교육의 문제는 공정성이 아니다. 왜 1등은 다 의대에 가느냐가 가장 큰 문제다. 다양성의 실종이 진짜 문제다.
지난 17일 보도된 ‘중앙일보대학평가원 리포트’ 6,7면. 대학군별 대졸자 계층이동 수준을 분석했다.

지난 17일 보도된 ‘중앙일보대학평가원 리포트’ 6,7면. 대학군별 대졸자 계층이동 수준을 분석했다.

수능 비율 50%가 가장 중립적이라는 독자 의견도 있었다.
=수능 비율 몇 %가 절대로 옳다고 말할 수 없다. 결국 합의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데이터 근거가 없으면 합의가 안 된다. 사람마다 근거로 삼는 경험이 달라서 그렇다.

=본인과 본인 자녀의 경험만으론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단적으로 조국 사태도 현재 학생부종합전형(학종)과 거리가 멀다. 2010년 입학사정관제 도입 초기에 발생한 문제였다. 그 뒤로 보완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학종을 판단 근거로 쓰고 있다. 데이터를 가지고 따져보지 않아서 발생하는 오해라고 본다.

이번 두 분의 연구는 교육당국이 주장하는 공정성의 허구를 보여줬지만 전수자료가 아닌 표본조사를 바탕으로 한 점은 아쉬웠다. 
=미국은 국세청 세금자료 등 방대한 데이터를 연구용으로 공개하지만 한국은 원 데이터를 가장 공개하지 않는 나라 중 하나다. 사실 데이터 분석을 제대로 하면 사회 불평등 연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한국도 기초 자료에 대한 전향적 접근이 필요하다. 개인정보 문제라고는 하지만 기관들 간에 일관된 기준이 없다. 개인정보 보호를 하면서 통계는 공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제도만 바꾸려 말고 교육 예산 늘려야

이번 기획보도 이후 주변이나 독자의 반응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나.
=노동시장을 바꿔야 한다는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노동시장 문제가 해결되면 교육은 따라서 해결될 거다. 노동시장 안정성이 떨어지다 보니 의과대학처럼 안정성을 얻을 수 있는 특정 대학·학과에 학생이 몰린다.

=고등교육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반응이 있었다. 정부에서 손 안대고 코 풀려고 하니 자꾸 입시 제도를 만지작거린다. 무상교육은 아니라도, 우리가 흔히 비교하는 나라들과 비슷한 수준으로는 예산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논문·저널리즘 조화 이룰 새 윤리 기준 마련할 필요

‘대학평가원 리포트’(10월 17일자 1,6,7면)는 언론이 학계의 연구를 통해 사회적 어젠더를 제시하는 새로운 보도 방식으로 시도됐다. 언론이 기획하고, 해당 주제 관련 연구물을 발굴해 탐구하는 방식이다. 학계엔 사회 문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연구가 많지만 대개 학술지 안에서 머문다. 연구도 보도돼야 알려지고, 알려져야 세상을 위해 쓰일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기획이었다.

이번 ‘대학의 공정성’ 기획에선 관련 논문을 발표했던 최성수 교수팀과 또 다른 연구자, 기획 당시엔 논문을 준비 중이던 김창환 교수팀의 연구(9월 학술지 발표)를 발굴했다. 연구자들에게 이를 바탕으로 저널리즘의 필요에 따른 자료의 재분석을 부탁했다. 마감시간까지 분석을 끝내지 못한 한 연구는 제외하고, 두 개의 연구만 취재팀과 연구자 이름을 함께 바이라인으로 올려 보도했다.

그러나 이런 보도에선 저널리즘 관행과 학계의 연구윤리 기준이 충돌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신문 바이라인에 논문 저자를 올린 만큼 아이디어 소스인 기존 논문 제목은 명시하지 않았다. 또 대학평가원 요청에 따른 논문 자료의 재분석을 ‘공동연구’ 타이틀로 표현했다. 이에 최 교수는 “기존 논문의 아이디어를 채용한 만큼 인용 출처를 명시하지 않으면 학자들은 ‘자기표절’로 인한 윤리위반이 될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또한 “공동연구가 함의하는 연구비 수혜 등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들이 제기돼 피해를 입게 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동안 학계는 여러 차례의 표절 논란을 겪으며 엄격한 윤리기준을 확립했고, 연구용역에 대한 연구비 지급기준 등을 마련했다. 이에 비해 언론은 학계의 윤리기준에 부합하는 새로운 보도 관행을 만들지 못한 게 사실이다. 저널리즘은 일반 독자 대상인 만큼 최대한 쉽게 써야 한다는 점에서 그동안 논문 제목을 전재하는 일이 별로 없었고, 연구자 멘트나 도움말 처리로 끝내는 경향이 있었다. 김 교수는 “학계의 연구는 여러 논문을 저널리즘의 언어로 해석하고, 저자 인터뷰를 통해 그 자체의 의미를 소개하는 미국식 사회과학 저널리즘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기획은 사회과학 연구물을 보도하는 방식과 관련해 학계의 윤리 기준과 저널리즘의 보도 기준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합의된 기준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과제도 남겼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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