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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기사연감’은 예술 장르 뒤섞은 ‘통섭’의 원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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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호 18면

바우하우스 이야기 〈46〉

‘청기사연감’ 표지. 단 한 번 출판된 이 잡지는 음악, 무용, 회화를 뛰어넘는 메타언어로서의 추상회화에 관한 설명이다. [그림 김정운]

‘청기사연감’ 표지. 단 한 번 출판된 이 잡지는 음악, 무용, 회화를 뛰어넘는 메타언어로서의 추상회화에 관한 설명이다. [그림 김정운]

한 때, 연구 과제의 타이틀에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함께 참여한다는 뜻의 ‘학제적(學際的·interdisciplinary)’이란 단어를 붙여야 연구 지원금을 잘 받을 수 있었다. 학문 간의 접근 방식이 너무나 달라, 서로 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다. 소통이 불가능하니, 같은 현상에 대해 전혀 다른 설명을 내놓고는 나 몰라라 한다. 거의 바벨탑 수준이다.

칸딘스키의 공감각적 추상회화 #게슈탈트심리학보다 10년 앞서 #그림·사진·악보 등 다양하게 수록 #새로움 찾는 ‘시대정신’ 오롯이

그러나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참여한다고 연구 성과가 획기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았다. 공유할 수 없는 개념을 쓰기 때문이다.

심리학만 해도 상황은 아주 심각하다.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내가 전공한 ‘문화심리학’을 이야기하면, ‘뭔 소린가?’ 한다. 통계나 실험 위주의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고착돼 이론적 전개가 허접해진 현대 심리학에 대한 비판에서 생겨난 최근의 접근 방법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의 각 영역은 이제 너무 세분화되어 서로 사용하는 개념이 완전히 달라졌다. 임상 심리학자와 교육 심리학자는 서로 소통하기 어렵다. 같은 심리학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10여 년 전 ‘통섭(統攝·Consilience)’이란 개념이 학자들 사이에 아주 뜨거운 토론 주제였다. 영어 ‘컨실리언스’가 낯설기도 했지만, 그 번역어인 ‘통섭’ 또한 아주 특이했다. 인간을 설명하는 모든 학문을 ‘사회생물학(Sociobilogogy)’으로 통합하겠다는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의 야심찬 개념을 그의 제자 최재천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인문사회과학자들은 들고 일어났다. ‘진화론적 환원론’으로 수백 년간의 인문사회과학적 성과를 통합하겠다는 윌슨의 ‘과욕’을 성토했다. 인간 유전자 관련 지식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생물학적 개념에 기초한 ‘종합학문’은 가당치도 않다는 비판이다.

시선에 따라 정육면체 방향 달라져

그러나 생물학자가 손을 내밀기 전, 인문사회학자들이 먼저 소통을 시도했어야 했다. 근대 과학의 성과들을 인문사회과학적 개념으로 수용하지 못한다면 박물관적 지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통섭’은 무리였다. 윌슨의 생물학적 개념들은 ‘메타언어’로서의 확장성에 한계가 분명했다. 그러나 이를 ‘인문과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결코 넘을 수 없어 보이는 벽을 뛰어넘자는 ‘소통’의 시도로 받아들인다면, ‘통섭’은 매우 의미 있는 문제 제기였다.

비슷한 시도가 백 년 전 심리학에도 있었다.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라는 주장의 ‘게슈탈트심리학(Gestaltpsychologie)’이다(사실 이 문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나왔다). 인간은 대상을 그 부분들의 지각을 종합해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전체’로 인식한다는 게슈탈트심리학적 통찰은 각 학문의 분절화가 부지런히 진행되던 20세기 초반의 상황에서는 매우 획기적이었다.

정육면체의 ‘게슈탈트 전환’. 눈의 초점을 어느 모서리에 맞추는가에 따라 정육면체의 방향이 달라진다. 스스로 눈의 초점을 빨리 바꾸면 정육면체가 움직이기까지 한다. [그림 김정운]

정육면체의 ‘게슈탈트 전환’. 눈의 초점을 어느 모서리에 맞추는가에 따라 정육면체의 방향이 달라진다. 스스로 눈의 초점을 빨리 바꾸면 정육면체가 움직이기까지 한다. [그림 김정운]

예를 들어 오른쪽에 보이는 정육면체에서 A와 B중 어느 모서리에 눈의 초점을 맞추는가에 따라 정육면체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다. 눈의 초점을 의식적으로 빨리 바꾸면 정육면체는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경과 배경의 ‘게슈탈트전환’이다. 대상은 가만히 있는데, 주체의 의지만으로 일어나는 ‘게슈탈트전환’은 ‘현상은 결코 객관적일 수 없으며, 언제나 주체적 시각의 사회문화적 조건, 그리고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메타이론적 확장성을 갖는다. 지각심리학의 범주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게슈탈트(Gestalt)’라는 명사는 ‘형태’라는 뜻이고, 동사 ‘게슈탈텐(gestalten)’은 ‘형성하다’ ‘조직하다’ 혹은 ‘꾸미다’라는 뜻을 갖는다. ‘디자인’ 개념이 본격 사용되기 전, 독일에서는 ‘게슈탈텐’이 ‘디자인’의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인식론적 구성과정에 관한 게슈탈트심리학은 하늘에서 떨어진 개념이 아니다. 당시 바그너의 ‘종합예술’ 이후로 유럽을 달구던 ‘시대정신(Zeitgeist)’이기도 했다.

근대 학문은 분류에 기초한다. 그러나 분류는 지속적으로 변증법적 과정을 거친다. 즉 분류와 통합, 그리고 또 다른 차원에서의 분류라는 메타언어의 창출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20세기 초반 게슈탈트심리학을 낳은 시대정신이었다. 이는 ‘예술과 기술의 통합’을 주창한 바우하우스의 철학이기도 했다.

나치 정권에 의해 해체되기 전, 베를린의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수시로 데사우의 바우하우스에 내려가 학생들을 가르쳤다. 당시 칸딘스키는 자신의 추상주의가 게슈탈트심리학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고 뒤에서 피식거렸다. 실제로 그랬다. 게슈탈트심리학보다 10여 년 앞서 칸딘스키는 게슈탈트적 시도, 즉 공감각적 추상회화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청기사파’는 그 명성에 비해 활동내용이 많이 빈약했다. 일단 공식적인 활동 기간이 매우 짧았다. 1911년 12월 18일, ‘청기사’라는 이름의 첫 전시회로 시작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던 14년 7월까지 3년도 채 지속되지 않았다. 공식 전시회도 단 두 번뿐이었다. 전쟁이 아니었더라도 ‘청기사파’는 그리 오래 갈 모임은 아니었다. 마르크와 연인 뮌터 이외에 칸딘스키의 추상회화에 진심으로 동조하는 이가 없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적국인 독일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던 칸딘스키는 14년 러시아로 돌아가고, 전쟁에 나간 마르크는 16년 전사했다. 혁명 후의 러시아에 적응하지 못한 칸딘스키는 21년 독일로 돌아와, 22년부터 바우하우스의 선생이 된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다른 여인이 있었다. 만약 12년 5월에 펴낸 ‘청기사연감’이 없었다면 ‘청기사파’는 미술사에 언급조차 되기 힘든 그룹이었다.

칸딘스키는 ‘청기사연감’을 펴내고 싶어 ‘청기사파’를 조직했다. ‘청기사연감’은 일단 수록된 내용 자체가 파격적이었다. 145개의 그림과 사진이 실려 있지만, 19개의 글에 더 중점을 둔 잡지였다. 그 글의 성격들도 제각각이어서 논문·수필·시·희곡·인용문이 뒤섞여 있다. 필자들의 국적은 독일·러시아·오스트리아·프랑스 등이고, 그들의 직업은 화가·음악가·비평가·작가였다. 연감의 끝에 실려 있는 쇤베르크와 알반 베르크, 그리고 안톤 베베른의 악보는 이 잡지의 성격을 더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통섭적’ 혹은 ‘게슈탈트적’인 이 산만한 잡지의 목적은 다양한 분야의 교차적 접근을 통해 추상회화라는 새로운 메타언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데 있었다.

‘청기사연감’의 프로타고니스트는 물론 칸딘스키였다. 칸딘스키의 글은 네 개가 수록되었다. 잡지는 마르크의 글로 시작한다. ‘정신적 자신’, ‘독일의 야수들’, ‘두 개의 그림’이란 제목의 글이 연속적으로 실렸다. 물질적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독일 사회에 내면세계의 표현이 긴급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짚으며, 칸딘스키가 고민하는 추상회화가 새로운 시대의 길잡이가 될 것임을 강조한다. 내면세계를 추구한 러시아와 프랑스, 그리고 고대예술의 경우를 설명한 여러 저자의 글에 이어 쇤베르크의 ‘텍스트와의 관계’가 나온다.

내적 필연성 같다면 형식 상관 없어

쇤베르크는 음악을 텍스트로 된 메시지로 해석하려는 시도에 대해 반복해서 비판한다. 심지어는 슈베르트의 가곡이 무슨 내용인지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것이 슈베르트 음악에 대한 이해를 더 방해했다는 자신의 경험까지 소개하며, 회화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즉 음악이 텍스트와 그 어떤 관계없이도 가능한 것처럼, 회화도 대상과 꼭 관계를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칸딘스키의 막 나온 책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를 추천한다. ‘칸딘스키의 추상회화’와 ‘텍스트와 아무런 관계없는 자신의 음악’이 예술의 미래라는 것이다.

오이겐 칼러라는 젊은 화가에 대한 추도사에 이어 칸딘스키는 ‘형식의 문제에 관하여’라는 긴 글을 싣고 있다. 대부분의 화가들이 형식에 얽매여 내용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며, 내면의 세계를 표현한다면 형식은 어떻든 상관없다고 주장한다. 형식이라는 물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내적 필연성’에 의해 해당 형식이 선택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적 필연성’이 동일하다면 러시아 민속화든 아동의 그림이든 모두 같은 것이며, 더 나아가 극단의 추상과 극단의 리얼리즘은 차이가 없다고 설명한다.

‘내적 필연성’에서 출발한다면 꼭 회화의 영역에 머무를 필요도 없다. 그 어떤 형식이든 상관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칸딘스키는 자신의 또 다른 글 ‘무대 구성에 관하여’에서 ‘종합예술’을 주장하면서도 텍스트에 집중한 바그너를 비판한다. 바그너 역시 형식의 틀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음악, 무용, 회화라는 형식은 ‘내적 필연성’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노란 소리’라는 희곡을 ‘칸딘스키의 무대 구성’이라는 부제를 달고 소개한다. 6막으로 되어 있는 이 희곡에서는 소리와 동작 그리고 색채가 서로 교차하는, 그야말로 공감각적 ‘종합예술’이 시도된다. 이어 3명의 악보가 소개되며 처음이자 마지막 ‘청기사연감’은 끝이 난다.

‘통섭’을 메타언어의 완성, 즉 모든 학문들의 ‘통합’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닫힌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학문들 간의 ‘소통’이라고 한다면, ‘청기사연감’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겨우 논의되기 시작한 ‘통섭’의 백 년 앞선 시도였다. 지극히 소통적이며 구체적인 통섭이었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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