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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 소리’ 나는 멍멍·야옹 영상…열 자식 안 부러운 ‘펫튜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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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호 25면

견공, 직업의 세계

견공, 직업의 세계 메인

견공, 직업의 세계 메인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는 직업의 변천사를 보면 가장 잘 알 수 있다. 기술의 혁신에 따라 사라진 직업이 있는가 하면 새로 생겨나는 직업도 많다.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 게임에 매달리는 자녀는 부모의 고민거리였으나, 요즘 프로게이머는 ‘게임 한류’를 이끌며 국위를 선양하는 e-스포츠 스타다. 과거 부동의 인기를 누렸던 판·검사와 의사 등 소위 ‘사짜’ 직종에 대한 선호도 많이 달라졌다. 요즘 아이들이 손꼽는 최고의 직업은 뭐니뭐니해도 ‘유튜버’. 좋아하는 콘텐트를 올리며 수십억, 수백억원을 번다는 ‘억소리’를 들으면 “나도 유튜브나 해볼까”라는 생각이 슬며시 올라온다.

반려동물 등장 유튜브 관심 후끈 #“드러누워만 있어도 조회 수 폭발” #구독자 379만 명, 월 수익 억대 #사연 있는 유기견들 스타 되기도 #일부 펫튜버들 자극적 영상 연출 #학대·재미 아슬아슬 줄타기 눈살

개 직업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로, 양을 몰며 주인의 목장 관리를 돕던 목양견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개들 사이에서도 요즘 최고의 수익을 올리는 1위 직종은 역시나 ‘유튜버’.

사연 있는 강아지를 모십니다

‘피로 사회’ 속 반려동물에게 포근한 위안을 받으려는 수요가 늘면서 개와 고양이가 등장하는 콘텐트, 일명 ‘펫튜브(Pet+Youtube)’가 인기를 끌고 있다. 랜선을 통해 반려동물 양육에 대한 대리만족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재미 삼아 올린 귀여운 반려동물의 영상 하나로 얼떨결에 ‘떡상’한 유명 유튜버들을 심심찮게 보곤 한다. 주요 형태는 반려동물과 보내는 소소한 일상 브이로그. 콘텐트 진입 장벽이 낮아서일까. 오늘도 많은 이들이 귀여운 포즈로 잠든 반려동물을 보며 ‘우리 애도 가능성이 충분한데’라며 펫튜버 대박의 꿈을 꾼다.

“사람은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요. 고양이가 드러누워만 있는데도 영상 조회 수가 폭발한다니까요.”

최근 영상 촬영에 관한 조언을 얻고자 만난 유튜버 L씨가 자조 섞인 말투로 건넨 말은 이랬다. 싫든 좋은 나 또한 대세를 거스를 수 없기에 이제 막 회사 계정으로 반려견 집밥 레시피 관련 유튜브를 시작했다. 뒤늦게 유튜버 대열에 합류한 나에게 그가 건넨 조언은 딱 하나, ‘무조건 귀여운 개를 등장시키라’였다. 무슨 짓을 해도 자신의 귀여운 고양이가 등장하는 영상보다 더 많은 클릭을 유도할 수 없었기에 내린 결론이라고 했다. 조언을 따라 레시피 영상 말미에 내 반려견 봉구를 등장시킨 먹방을 추가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훨씬 뜨거웠음은 물론이다.

인터넷상 반려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다는 사실은 숫자로 증명된다. 2016년 대구에서 열린 대한민국 IT융합박람회에서는 미국 일리노이대 애드리엔 마사나리 교수 등 3명의 교수가 참여해 ‘인터넷 고양이 이론-고양이 인터넷 정복 시나리오’라는 이색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2010년 13억 장이었던 인터넷상 고양이 이미지는 2015년에는 4배가 폭발해 65억 장으로 늘었고, 유튜브 내 고양이 동영상 조회 수는 250억 회로 영상당 평균 조회 수는 1만2000회에 이르렀다. 이게 벌써 수년 전의 통계이니 지금은 그 숫자가 훨씬 늘어났을 것이다.

국내 펫튜버 구독자 순위 TOP 4

국내 펫튜버 구독자 순위 TOP 4

‘멍멍’, ‘야옹’으로 통일된 언어를 쓰는 펫튜버의 인기는 국경마저 초월한다. 2020년 9월 기준 국내 펫튜버 순위 1위는 구독자 379만 명을 보유한 ‘크림히어로즈’. 루루, 티티, 디디, 코코 등 총 10마리의 고양이가 등장하는 채널로, 누적 조회수 12억 회를 넘어섰다. 재미있는 건 국내 제작 채널임에도 댓글난에서 한글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영어는 기본이고 각종 유럽어와 동남아어, 아랍어까지 등장해 냥님을 향한 팬심을 대동단결 고백하는 ‘고양이 한류’를 만날 수 있다. 유튜브 수익계산기로 추산할 경우 이 채널의 수익은 월 1억~2억원 사이. 이쯤 되면 가히 열 자식이 부럽지 않은 효자 묘, 효자 견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펫튜버 중에서도 특히 장애를 가졌거나 유기되었던 동물이 좋은 주인을 만나 행복해지는 스토리는 더 큰 관심을 끈다. 인천공항 명예홍보대사까지 역임한 ‘달려라 달리’ 채널의 주인공 ‘달리’는 교통사고로 앞발이 잘린 채 버려졌던 유기견 출신이다. 다리는 아파도 씩씩하게 달리라는 의미의 이 작은 포메라니안은 팬데믹 직전까지 미국은 물론 프랑스, 스위스 등 전 세계를 달리며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인절미를 닮은 외모의 ‘짱절미’는 비 오는 날 사과밭 도랑에서 떠밀려와 구조된 믹스견 출신으로, 카드사 모델은 물론 이모티콘과 빵이 출시되는 등 ‘슈스개’의 인기를 만끽 중이다.

이런 펫튜브, 동물 학대 아닌가요?

이처럼 사연 있는 동물들의 견생역전 이야기는 긍정적인 사회 기능을 한다.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버려졌다거나, 학대를 받은 기억 때문에 적응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는 유기견들이 누구보다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통해 이들 또한 훌륭한 가족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달리’나 ‘짱절미’와 같은 유기견 출신 스타가 급부상하면서, 유기동물을 내세운 펫튜브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부작용도 상당수 수면 위로 드러났다. 지난 5월, 50만 구독자의 펫튜버 ‘갑수 목장’이 고양이 학대 논란 끝에 모든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하며 활동을 중지했다. 수의대생이 운영하던 이 채널은 버려진 고양이를 입양하고 기부금을 전달하는 일상을 공개하며 큰 인기를 모았는데, 한 동기가 폭로한 그의 민낯은 충격적이었다. 영상 속 등장하는 유기 묘들은 사실 펫숍에서 구매한 것이며, 말을 잘 듣게 하기 위해 고양이들을 며칠간 굶기기도 했다는 것.

대체 불가능한 직업, 반려동물

학대와 재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인위적인 연출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레몬을 억지로 먹인 후 개의 반응을 촬영하거나, 비닐랩으로 벽을 만들어 통과하게 하는 ‘투명 벽 챌린지’ 같은 영상이 대표적이다. 영상 속 레몬을 맛본 개는 온몸을 바르르 떨고, 비닐 랩을 억지로 뚫고 나오려는 고양이의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진다. 이런 ‘골탕먹이기’ 장르의 영상은 동물을 굶기거나 폭행하는 등의 명확한 동물 학대는 아니어도 위험한 상황에 빠트린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레몬은 반려견의 구토를 유발할 수 있고, 비닐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찢어진 조각이 고양이의 호흡기를 막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많은 시청자가 문제 의식 없이 해당 영상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 오늘날 펫튜브의 현주소다. 어쩌면 직접 키우는 어려움을 삭제한 채 화면 너머로 귀여움 만을 소비할 수 있는 편리함이 동물이라는 실체를 지운 건 아닐까. 미디어 속 동물 학대 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작 중인 동물권행동 카라의 홍보 담당 한희진 팀장은 “더 귀엽고, 더 자극적일수록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고 ‘좋아요’와 ‘구독’이 늘어나는 악순환 속에서 이런 현상이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영상 콘텐트 속 동물 학대에 대해 꾸준히 질문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들의 활동이 사회적인 논의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직업이 명멸하는 와중에도, 로봇이 따라 할 수 없는 인간 만의 손길과 감정이 필요한 직업만큼은 끝까지 살아남는다고 했다. 예술과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대표적이다. 반려동물 또한 마찬가지다. AI를 탑재한 반려로봇 개발이 한창이라지만, 애정을 듬뿍 담은 채 반려인을 쳐다보는 개의 눈동자는 무엇으로도 대체하기 힘들 터. 혹시 반려동물을 키우는데도 정작 내 개를 돌보는 대신 펫튜버가 올린 깜찍한 영상에 열광하고 있지 않은가?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은 잠시 내려두고, 둘 만의 온전한 시간을 보내 보자. 억대 몸값을 자랑하는 견공 스타들도 줄 수 없는 농도 짙은 행복이 바로 곁에 있다.

이수진 ‘라이프앤도그’ 발행인
패션 에디터를 거쳐 매거진 회사 대표를 지내다가 반려견 ‘우연’이와 ‘봉구’를 만나며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현재 반려동물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라이프앤도그’의 발행인이자 푸드 브랜드 ‘키친앤도그’ 대표로 개와 함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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