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국인 만나면 잉글리시 아닌 브리티시라 불러야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708호 26면

[런던 아이] 영국의 정체성

지난 8일 런던 웸블리구장에서 벌어진 잉글랜드(흰색 유니폼)와 웨일스(붉은색 유니폼)의 친선축구 경기.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는 같은 영국(UK)이지만 축구 등 주요 스포츠대회에선 각각의 국가대표팀이 경쟁한다. [AP=연합뉴스]

지난 8일 런던 웸블리구장에서 벌어진 잉글랜드(흰색 유니폼)와 웨일스(붉은색 유니폼)의 친선축구 경기.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는 같은 영국(UK)이지만 축구 등 주요 스포츠대회에선 각각의 국가대표팀이 경쟁한다. [AP=연합뉴스]

영국(United Kingdom)은 하나의 나라이지만,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 4개 지역으로 구성돼 있다. 정식 명칭은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 영국에서는 각 지역을 한 나라를 의미하는 영어단어인 ‘country’라 부른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영국이 주권을 가진 국가다.

역사· 문화 다른 4개 지역 모여 #한 국가 ‘유나이티드 킹덤’ 구성 #브리티시는 포괄적 정체성 의미 #잉글랜드 출신 대다수가 선호 #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는 #독자적인 명칭으로 불리길 원해

이 제도는 많은 혼란을 야기한다. 실제로 내가 한국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영국이 잉글랜드를 뜻하냐는 것이다.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가 나라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도 종종 듣는다. 영국이 4개 지역이 연합해서 구성된 한 국가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일랜드는 영국과 무관한 독립국가

927년 여러 부족이 통합돼 잉글랜드라는 나라가 생겼다. 잉글랜드가 1282년 웨일스를 정복한 역사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잉글랜드의 웨일스 통치는 웨일스 왕가 출신인 오와인 글린두르가 이끄는 반란이 실패한 후 1400년대에 이르러서야 확고해졌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를 흡수한 것은 정복에 의해서가 아니라 결혼에 의해서였다. 1503년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4세는 영국 왕 헨리 7세의 딸 마거릿 튜더와 결혼했고, 이로부터 100년 후, 손자인 제임스 6세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두 나라의 왕이 됐다. 그리고 다시 100년 후인 1707년 스코틀랜드·잉글랜드·웨일스가 공식적으로 한 국가가 됐다.

4개 연합국가

4개 연합국가

아일랜드의 문제는 훨씬 더 복잡하다. 오늘날 영국은 북아일랜드만 포함하고 있다.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아일랜드는 영국과 무관한 독립 국가인 아일랜드 공화국이다.

항상 그래왔던 것은 아니다. 1155년 교황 아드리안 4세는 노르만왕 헨리 2세에게 아일랜드 전체를 지배할 통치권을 줬다. 그리고 그 후 900년 동안 잉글랜드 그리고 이후의 영국(Great Britain)은 아일랜드를 점령하고 탄압했다. 아일랜드의 반란을 격렬하게 진압하고, 그곳에 살지도 않는 잉글랜드의 영주들이 아일랜드 땅과 사람들을 오랜 시간 동안 착취했다.

1921년에 와서야 아일랜드는 독립국가인 아일랜드 공화국과 영국의 일부로 남아 있는 북아일랜드로 분할됐다. 오늘날에도 아일랜드는 이 형태로 나뉘어 있으며, 이 때문에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 사이의 이동과 무역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브렉시트를 실행하는 데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가 영국이 되고,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나누어졌다.

현재의 영국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 길고 어려운 역사적 배경이 바로 현재의 영국이 다양한 국가 정체성을 가진 이유다. 영국 출신을 의미하는 말은 브리티시(British)다. 잉글리시(English)는 잉글랜드 사람을 뜻한다. 스코틀랜드 사람은 스코티시(Scottish), 웨일스 사람은 웰시(Welsh), 북아일랜드 사람은 노던 아이리쉬(Northern Irish)다. 잉글랜드 출신을 제외하고 나머지 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 출신들은 자신들을 브리티시라고 부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스코티시, 웰시, 노던 아이리시임을 주장하며 원래의 정체성을 고수하려 한다. 잉글랜드 출신 사람들만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대다수가 자신을 잉글랜드인인 잉글리시가 아닌 영국인인 브리티시로 여긴다.

각 출신 지역마다 다르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사적 배경에서 유래한다. 잉글랜드는 다른 지역을 침략하여 그 지역들을 영국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즉 억압하는 쪽이었다. 반면, 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는 억압을 당하는 쪽이었으며, 자발적으로 독립을 포기한 적이 없다. 즉, 잉글랜드에 의해 영국의 일부가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 사람들은 그들 본래의 문화적 유산을 유지하는 데 훨씬 더 관심이 있다. 영어는 여전히 어느 지역에서나 공통으로 쓰이지만, 세 지역 모두 그들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고, 그 언어를 학교에서 가르친다.

영국이라는 국가를 탄생시킨 배경에 있는 역사 때문에, 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는 여전히 강한 반(反)잉글랜드 정서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이런 현상은 무엇보다 스포츠에서 볼 수 있다. 올림픽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 스포츠에서는 4개 지역이 따로따로 경쟁한다. 예를 들면 잉글랜드가 웨일스와 경기를 한다면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웨일스를 지지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잉글랜드만 아니면 괜찮다 (Anyone but England)”는 말이 흔하게 쓰일 정도다.

잉글랜드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 표현하는 데 더 큰 혼란을 느낀다. 잉글랜드 출신인 나는 나 자신을 잉글리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 나의 출신을 물을 때면 브리티시라고 답한다. 나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대다수의 사람도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브리티시라는 단어는 보다 포괄적인 정체성을 의미한다. 이는 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 문화뿐만 아니라 영국이 수백 년의 역사에 걸쳐 이룬 다른 모든 문화와 민족을 통합한 하나의 넓은 개념이다.

‘잉글리시’ 백인 우월주의 색깔 강해

스코틀랜드의 영국으로부터의 분리독립 찬반 국민투표를 사흘 앞둔 2014년 9월 15일 런던 트래펄가광장에서 ‘함께하자’ 캠페인 지지자들이 영국 국기와 스코틀랜드 기를 함께 들고 분리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스코틀랜드의 영국으로부터의 분리독립 찬반 국민투표를 사흘 앞둔 2014년 9월 15일 런던 트래펄가광장에서 ‘함께하자’ 캠페인 지지자들이 영국 국기와 스코틀랜드 기를 함께 들고 분리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실제로 자신을 브리티시라고 생각하는 잉글랜드인들이 잉글리시라고 하는 잉글랜드인들보다 문화적 다양성을 더 많이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또 백인인 잉글랜드인이 자신을 잉글리시라고 부르는 비중이 백인 아닌 잉글랜드인이 자신을 잉글리시라고 부르는 비중보다 높다. 2018년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잉글랜드 출신 백인의 61%가 자신을 잉글리시라고 부르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반면 백인이 아닌 잉글랜드인의 경우 32% 정도만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잉글리시로 불리는 것을 더 선호하는 사람 중 문화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중은 3분의 1에 불과했다. 브리티시로 불리기를 더 선호하는 사람들의 3분의 2가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답한 것과 대조되는 결과다. 게다가 잉글리시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영국에서 가장 큰 백인 우월주의 집단이 영국방위동맹이다.

영국의 6700만 인구 중 5600만 명이 잉글랜드에 살고 있다. 즉, 영국인 대부분이 잉글랜드인이다. 영국 총리 55명 중 42명이 잉글랜드 출신이다. 영국 의회의 하원 의석은 650석인데, 이 중 533석은 잉글랜드 선거구에 속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에서 바라보는 잉글랜드는 침략국이다. 영국의 역사는 오랜 식민주의와 팽창주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런 분열은 브렉시트(Brexit) 투표에서도 엿볼 수 있다. 2016년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야 할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잉글랜드인의 53.38%, 웨일스인의 52.53%는 EU를 떠나는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인은 38%, 북아일랜드인은 44.22%만이 브렉시트에 찬성했다.

영국과 한반도는 서로 정반대인 면이 있다. 영국은 역사적 분열을 바탕으로 하나의 정체성을 수립한 단일 국가다. 반면 한반도는 역사적으로는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통합 국가였지만 최근에 분단된 두 개의 국가다.

만약 당신이 영국에서 온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들이 잉글리시가 아닌 브리티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잉글랜드인일 수도 있지만 스코틀랜드인·웨일스인·북아일랜드인일 수도 있다. 영국인을 보고 무조건 잉글리시라고 부르는 건 영국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번역:유진실

짐 불리 코리아중앙데일리 에디터 jim.bulley@joongang.co.kr
짐 불리(Jim Bulley)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한때 영국 지역 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한국에 왔고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스포츠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KBS월드, TBS(교통방송), 아리랑TV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진행자 및 패널로 출연 중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