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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도 가족 이룰 권리” 가톨릭 뒤흔드는 교황의 한마디

중앙일보

입력

프란치스코 교황. [로마 AP=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 [로마 AP=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 커플의 ‘시민 결합(civil union)’에 대한 지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런 입장을 밝힌 것은 2013년 즉위 이후 처음이며, 역대 교황 가운데서도 최초다.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이후 처음으로 #동성 커플 법적 보호 지지 밝혀 #역대 교황 가운데서도 최초 #주교간 입지 다툼 생길 수 있단 지적도

교황 “동성애자 보호할 법적 장치 필요” 

21일(현지시간) 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 필름 페스티벌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된 교황에 관한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Francesco)’에서 “동성애자도 가족을 이룰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이들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시민결합법”이라고 강조했다. 시민결합법은 동성 결혼 합법화의 대안으로 제시된 개념으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와 미국의 일부 주가 이를 채택하고 있다. 이성 간 결혼과 동등한 권한과 책임이 부여된다.

교황은 “동성애자들 역시 가족에 속할 권리가 있다. 그들 역시 하느님의 자녀”라며 “누구도 이 때문에 버려지거나 불행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지난달 40여명의 성 소수자 아이들의 부모를 만나 “신은 아이들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신다. 교황도 신의 자녀인 아이들을 사랑한다”며 다독였다.

가톨릭교회, 역사적 방향 전환하나 

교황청 안팎에서는 교황의 이번 언급이 성 소수자(LGBTQ) 이슈와 관련한 가톨릭교회의 역사적인 방향 전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가톨릭 교회와 성 소수자 사이의 고통스러운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하던 교회 내 지지자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미국 예수회 사제 제임스 마틴은 22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동성 간 시민결합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지는 교회가 성 소수자들을 지지하는 중대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가톨릭 교회가 그러한 법을 반대해온 나라들에 강력한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적었다. 가톨릭 교회와 성 소수자의 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2014년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한 패션쇼에서 동성 커플이 걸어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2014년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한 패션쇼에서 동성 커플이 걸어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러한 교황의 입장이 동성 결혼을 찬성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NYT는 보도했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것이라고 명시하는 교리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지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가톨릭 칙령은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간주한다.

“가톨릭 가르침과 명백한 모순”…교회 내 권력다툼 우려 

교황의 발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의 토머스 토빈 주교가 제일 먼저 나섰다. 토빈 주교는 성명을 통해 “교황의 발언은 동성 결합에 대한 가톨릭의 오랜 가르침과 명백히 모순된다”며 “교회는 객관적으로 부도덕한 관계를 지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교황의 이번 발언이 교회 내 권력싸움과 분열을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성 소수자 문제에 더 관대한 입장을 취해온 북유럽 가톨릭 교회 주교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반면, 보수적으로 동성애를 보는 아프리카 국가 주교들의 입지가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NYT는 또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즉흥적으로 공적 발언을 내뱉는 버릇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교황의 버릇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뿐 아니라 지지자들마저도 화나게 한다고 덧붙였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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