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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가 불붙인 日 ‘도장 깨기’···학교도 종이 알림장 없앤다

중앙일보

입력

날인(捺印)의 나라 일본에서 때늦은 디지털 소통방식이 학교에 퍼지고 있다. 종이로 전달되던 통신문에 도장 찍기 관행을 없애라는 지시가 떨어지면서다. 스가 요시히데(管義偉) 내각이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디지털화의 하나로 풀이된다.

종이 서류에 일일이 도장을 찍어야 하는 '도장 문화'가 재택근무 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인터넷 캡쳐]

종이 서류에 일일이 도장을 찍어야 하는 '도장 문화'가 재택근무 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인터넷 캡쳐]

21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문부과학성은 전날(20일) 지역 교육위원회에 종이에 붙는 날인을 생략할 것을 지시했다. 일본에서 교육위원회는 공립 초·중·고등학교에 대한 정책을 관할하는 곳이다.

디지털 후진국 일본에서도 특히 아날로그 문화에 익숙한 학교가 이 같은 방침을 시행한 데 학부모들이 반색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 자녀를 둔 오사카 사카이(堺市)시의 한 학부모는 “반상회에서도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학교에서만 종이로 연락을 주고받아야 해 위화감이 있었다”며 “고마운 개혁”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본 학교에선 상당한 양의 종이가 소통 도구로 사용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글로벌 소프트웨어 업체인 어도비시스템즈가 일본 학부모 25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유아 학부모 중에선 “주 1~2매 종이를 교육기관으로부터 받는다”는 응답이 41.2%로 가장 많았다.

초등학교 학부모 가운데는 주 3~5매를 받는다는 응답 비율이 30%로 가장 많았고, 주 6매 이상을 받는다는 응답도 24.4%에 달했다. 또 이 같은 양에 대해 초등학생 학부모 56.8%가 많다고 느꼈고, 70% 이상의 학부모가 종이를 분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토요후쿠 신페이(豊福晋平) 국제대학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센터 교수는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의한 학습 도달도 조사(PISA) 결과를 봐도 다른 나라와 비교해 일본 학교에서의 디지털 활용은 많이 뒤처져있다”고 지적했다.

문부성은 교원의 업무 방식도 바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의 계정이 분리돼 학생들의 ‘몰래 날인’ 행위를 놓고 골머리를 앓는 일도 사라지고, 교무실에서 결석 전화를 받아야 하는 잔무도 줄어들 것으로 본다.

전교생이 1천명 이상인 큐슈(九州)의 한 초등학교 교감은 “매일 인쇄기 4대와 복사기 4대를 총동원하고 있다”며 “방과 후 서류 작업 부담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반면 급속한 디지털화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정보 사각지대를 만들고 대면이나 전화 연락의 장점을 없앨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후쿠오카(福岡)현의 한 공립 중학교 교장은 “학부모와 직접 대화를 하다가 학교생활에 관한 고민이 발견돼 가정방문이나 3자 면담 등으로 이어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디지털 소통에 100%를 맡기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종이 서류에 일일이 도장을 찍어야 하는 일본 '도장 문화'가 재택근무 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인터넷 캡쳐]

종이 서류에 일일이 도장을 찍어야 하는 일본 '도장 문화'가 재택근무 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인터넷 캡쳐]

일본 교육당국이 이처럼 종이 관행을 없애려 하는 건 스가 내각이 추진하고 있는 '항코(はんこ·도장) 문화' 철폐와 맞닿아있다. 재택근무 중 도장을 찍으러 출근하거나 팩스로 한 박자 늦게 소통이 이뤄지는 등 아날로그 방식의 업무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 갖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내년 가을까지 각 분야의 디지털 정책을 총괄하는 디지털청 설립을 목표로 한 스가 내각은 학교뿐 아니라 병원, 관공서 등에서도 강도 높은 탈(脫)종이 개혁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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