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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꿈꾸는 93세 송해 “난 맨날 청춘, 드라마도 해보고 싶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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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종로 '송해길' 초입 자신의 흉상 곁에서 활짝 웃고 있는 송해. 흉상은 2017년 박재규 조각가의 작품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2일 서울 종로 '송해길' 초입 자신의 흉상 곁에서 활짝 웃고 있는 송해. 흉상은 2017년 박재규 조각가의 작품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가슴에 묻는 아픔이란 게 당해보지 않은 분은 모르죠. 이제 눈물도 마를 때가 됐고 한숨도 굳을 때가 됐는데 하염없다 하는 게 눈물인가 봐요.”

"정주영 회장이 내게 그랬지 #사람 많이 아는 내가 제일 부자라고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게 가족이야 #먼저 떠난 아들 자작곡 듣고 울었지" #다큐 '송해 1927' 부산영화제 초청 #소탈한 웃음 뒤 질곡의 개인사 담겨

1927년생 최고령 현역 연예인이자, 음악 경연 프로 ‘전국노래자랑’(KBS1)을 33년째 진행해온 국민 MC 송해. 그가 34년 전 스물둘 꽃다운 나이로 떠나보낸 아들을 눈물로 회고했다. 22일 서울 낙원동 ‘원로 연예인 상록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1년간 자신의 삶을 담은 첫 다큐멘터리 ‘송해 1927’(감독 윤재호)을 찍으며 존재조차 몰랐던 아들의 자작곡을 처음 들었다고 한다. 다큐 제안을 받았을 땐 “가족 얘기라고 아픈 것밖에 없고, 주저했다”는 그가 “내 속에 담았던 걸 한번 얘기할 때도 있어야 할 게 아니냐” 생각에 마음을 돌려 만든 다큐다. 이 다큐는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초청돼 26일 상영된다.

26일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이는 다큐 '송해 1927'는 여러 영화의 조단역 배우를 맡아온 송해의 첫 스크린 주연작이기도 하다. 대중에 공개한 적 없는 사적인 일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어느 아침 잠옷 차림으로 혼자 사는 아파트 창가에 선 모습이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26일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이는 다큐 '송해 1927'는 여러 영화의 조단역 배우를 맡아온 송해의 첫 스크린 주연작이기도 하다. 대중에 공개한 적 없는 사적인 일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어느 아침 잠옷 차림으로 혼자 사는 아파트 창가에 선 모습이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1986년 오토바이를 타다 뺑소니 사고를 당한 고(故) 송창진 씨는 가수의 길을 반대하던 아버지 몰래 자작곡 녹음테이프를 4집까지 남겼다. 당시 KBS 라디오 방송 ‘가로수를 누비며’로 큰 인기를 누리던 송해는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 17년간 맡아온 진행 자리에서 하차했다. 막내딸 숙연씨가 차마 아버지한테 말 못하고 간직해온 노래들이 이번 다큐 제작진에 의해 세상의 빛을 봤다.
“왜 이걸 맘 놓고 나에게 들려주게 하질 않았나. 내가 왜 좀 이해를 못 했는가” 한탄했다. 음악 욕심에 고향 이북 해주예술학교 성악과까지 나온 그가 아들 마음을 왜 몰라줬을까. 그는 “나도 딴따라 한다고 아버지한테 쫓겨나도 봤고 내가 너무 어렵게 넘어온 길이라 더 말렸다”며 주름진 눈시울을 적셨다. “전국~ 노래자랑!” 일요일 안방극장 활력소가 됐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한국 희극인 1세대다. 황해도 재령에서 삼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1ㆍ4후퇴 피란 통에 홀로 월남, 부모님·형·여동생과 생이별했다. 본명이 송복희인 그가 ‘송해’란 이름을 얻은 것도 피란길에서다.
“피란길은 미어지지, ‘쌕쌕이’(전투기)가 막 갈겨서 옆에서 사람들은 넘어지지. 얼마나 끔찍합니까. 연평도에서 3000명이 화물선을 탔는데, 어디 방향도 없는 바다 위에 떠 있다 그런 생각이 언뜻 들었어요. 부산항에 내리자마자 이름이 뭐야, 하기에 ‘바다 해(海)’를 붙여 ‘복’자 빼고 ‘송해’. 지금까지 내 이름이 됐어요.”
 휴전 이후 그는 유랑 악극단을 시작으로 라디오ㆍTV 무대를 넘나들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약했다. 지금도 자신을 “38 따라지, 딴따라, 세상에서 제일 센 애주가”라 소개하는 호쾌한 익살꾼이지만 그 웃음 뒤엔 가슴 아픈 개인사도 두텁게 쌓였다. 아들을 한순간에 잃곤 “청소하다 걔 양말 짝 하나 나오면 또 붙들고 한나절” 울곤 했다는 아내 석옥이 여사는 2018년 독감으로 부부가 나란히 입원했다가 홀로 세상을 떠났다.

“부부란 게 맺는 걸 같이 맺어도 떠나는 건 같이 못 떠나는 것 아녜요. 알면서 야속한 거지. 햐, 이런 아픔이 있나. 부모님도 원망해봤어. 하소연도 해보고. 그러고 나서 혼자 껄껄 웃고 또 내가 갈 길이 있다, 애들이 있다, 손주놈이 있다. 이러곤 정신 차리고 그럽니다.”

22일 인터뷰 자리에서 송해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들 이야기를 하며 자주 눈시울을 붉혔다. 2018년 독감으로 부부가 나란히 입원했다 홀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두고 그는 "갈 때도 의논이 좀 됐으면 했지"란 말로 허전한 마음을 털어놨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2일 인터뷰 자리에서 송해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들 이야기를 하며 자주 눈시울을 붉혔다. 2018년 독감으로 부부가 나란히 입원했다 홀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두고 그는 "갈 때도 의논이 좀 됐으면 했지"란 말로 허전한 마음을 털어놨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는 “두 딸과 5~20분 거리에 산다. 그런 숨결이 아니면 숨이 막힐 것 같다”고 털어놓으며 가족의 의미를 거듭 강조했다. “이 세상 제일 부자가 사람 많이 아는 송해라고 돌아가신 정주영(전 현대그룹 회장)씨가 말했지만,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게 가족”이라며 “그래서 ‘전국노래자랑’ 에서도 ‘전국노래자랑 가족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라고 인사한다”고 말했다.

88년 5월 경북 성주 편부터 자리를 지킨 ‘전국노래자랑’을 두고 그는 “내 평생의 소중한 교과서”라고 했다. “아무리 나이 먹어도 세 살짜리한테도 배울 게 있다는 걸 실제로 느낀다”면서 “참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올 초 감기로 입원해 ‘전국노래자랑’ 녹화를 건너뛰었을 땐 그의 이름이 인터넷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점령하기도 했다. 그는  “건강이란 것도 내가 하는 일이 즐거워야 한다”며 건강 비법을 전했다.

22일 서울 종로 '송해길'에서 자신의 흉상과 함께 활짝 웃은 송해. 지하철 종로3가역 5번출구부터 240m의 '송해길' 초입이다. 건강 비결로 걷기를 꼽는 그는 매일 지하철로 바로 옆 건물 3층의 '상록회' 사무실에 출근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2일 서울 종로 '송해길'에서 자신의 흉상과 함께 활짝 웃은 송해. 지하철 종로3가역 5번출구부터 240m의 '송해길' 초입이다. 건강 비결로 걷기를 꼽는 그는 매일 지하철로 바로 옆 건물 3층의 '상록회' 사무실에 출근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는 가장 이루고픈 꿈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고향 황해도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찍는 것. 그는 2003년 8월 평양 모란봉 공원 야외무대에서 북한 진행자 전성희와 공동 사회를 본 광복절 특집 ‘평양노래자랑’ 이야기를 꺼내며 “이후 개성·원산 등을 다 돌자고 약속하고 왔는데 무산됐다. 올해 4월에도 급계획이 있다가 하노이 회담 가면서 깨졌다”고 했다.
“내 고향 재령이 곡창입니다. 구월산 앞에 큼직하게 야단법석 차려놓고 ‘고향 계신 여러분 송해가 왔습니다’ 하는 게 소원이에요. 이제 1000만 이산가족 중 3만 명도 안 남았습니다. 나머지라도 가족하고 단 하루라도 따뜻하게 솥에 밥 해 먹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그의 또 하나의 꿈은 뜻밖에 드라마 배우다. “드라마 보면서 내가 하면 이렇게 한번 해볼 텐데, 해요. 조금 늦긴 했지만. 아니, 나이라는 게 숫자에 불과한 거 아니오? 나이야 가라, 하면 간 거야. 나는 맨날 청춘이요. 그런 마음을 갖는 게 아주 편안해요. 마음이 편안하면 잘 안 늙어.”

그는 코로나19 상황에 대해 “참 답답하고 어려운데 이게 한번 지나가고 나면 이것보다 더 큰 게 올 때 이길 수 있다. 그런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큐 '송해 1927'에서 가는 곳마다 팬이 모이는 송해의 뒷모습. 영화사 이로츠와 빈스로드가 공동 제작한 이번 다큐는 내년초 일반 극장에서도 개봉할 계획이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다큐 '송해 1927'에서 가는 곳마다 팬이 모이는 송해의 뒷모습. 영화사 이로츠와 빈스로드가 공동 제작한 이번 다큐는 내년초 일반 극장에서도 개봉할 계획이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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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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