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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명째 사망 “독감백신 접종, 당분간 멈추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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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독감 백신 접종 후 숨진 사람이 21일 12명에서 하루 새 28명(오후 11시 기준)으로 늘었다. 동일 로트번호(제조번호)로 생산된 백신을 맞고 사망한 사례도 발생했다. 의사협회와 일부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 잠정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의협·전문가 “원인 규명 먼저” #11번·22번, 13번·15번 사망자 #동일 제조번호 백신 맞고 숨져

22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기준 사망자 25명 가운데 11·22번, 13·15번 사망자가 같은 로트번호의 백신을 접종받았다. 로트번호는 단일 생산자가 동일한 조건에서 제조·조립해 동일한 특성을 갖는 제품군에 부여하는 고유번호다. 11·22번 사망자가 맞은 백신은 ‘스카이셀플루4가’로 로트번호는 Q022048이었고, 13·15번 사망자는 ‘스카이셀플루4가’ 로트번호 Q022049 백신을 맞았다.

보건당국은 그간 신고된 사망자 가운데 같은 로트번호의 백신을 맞은 경우가 없었다는 것을 근거로 백신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없다고 설명해 왔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만약 같은 제조공정, 로트번호에서 추가 사망자가 나오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해당 로트는 봉인조치하고, 접종을 중단하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재검정을 요청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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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청과 전문가들은 로트번호가 같다고 백신 접종과 사망 간 인과관계가 입증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23일 예방접종 피해조사반 회의와 예방접종 전문위원회를 개최해 예방접종 상황과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은경 “같은 백신 맞은 사망자 발생 땐 접종 중단” 말했는데 실제로 2건 나왔다

전병률 차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같은 로트번호 백신이 15만 개 정도 생산된다”며 “이 백신이 전국으로 배송돼 접종이 이뤄지며 우연의 일치로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23~29일 일주일간 독감 예방접종을 잠정적으로 유보하라고 회원들에게 권고했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하루에 4~5명의 원인이 불분명한 사망 사례가 지속하고 있어 국민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으며, 접종을 시행하고 있는 일선 의료기관의 불안감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유보 기간 중 의협과 질병관리청이 긴밀히 협조해 사망자의 부검 및 병력 조사 등을 통해 독감 백신과 사망의 인과관계를 의학적으로 철저히 규명하자”고 정부 측에 제안했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독감 백신 접종을 2~3일 잠정 중단하고 이 기간에 사망 원인을 신속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사망자 전수조사가 어려우면 대표 사례 4건 정도만 해도 된다. 밤새워 부검하면 이틀이면 백신 탓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고, 부검 결과와 병원의 진료기록을 종합해 판단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2~3일 접종을 중단한다고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오명돈(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 신종 감염병 중앙임상위원장도 “현재 상황이 계속되는 걸 피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오 위원장은 “17세 고교생 사망 후 기저질환(지병)이 없는 젊은이가 숨지니까 국민 불안감이 커졌고, 신성약품의 ‘상온 노출’ 유통사고가 터지면서 백신 불신의 인지도가 급증했다. 이로 인해 여기저기에서 사망 신고가 증가하는 게 지금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홍보(Publicity)·인지(awareness) 바이어스’로 인한 혼란이 발생한 것이고, 이런 현상이 감염병 분야에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지금 상황이 계속되면 내일·모레 사망자 보고가 급증할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백신을 맞으라고 하게 되면 국민 불신이 증폭될 게 뻔하다”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접종 중단이라는 말을 아꼈지만 그럴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그는 “부검과 진료기록, 역학조사 결과를 토대로 사망 원인을 규명해 국민을 설득해야 불신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백민정·이태윤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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