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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중 施善集中] 유산기부는 미래에 대한 투자, 활성화 위해 법 제정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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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재정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회문제를 정부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대안으로 민간의 기부 활성화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유산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유산기부가 최근 관심을 받고 있다. 아울러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해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한국자선단체협의회 #코로나 장기화로 재정 수요 급증 #민간 자원으로 기부 활성화되면 #사회복지 관련된 국가 부담 감소 #선진국은 기부자에게 세제 혜택

영국 ‘레거시10’으로 유산기부 유도

지난 2011년 11월 롤랜드 러드는 ‘경제 위기가 초래한 문제를 유산기부가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영국의 유산기부 캠페인을 주창하고 시작했다. 그는 한 언론 기고에서 “경제 회복 침체기에 사람들은 큰 좌절감을 느낀다. 자신은 해고되거나 임금이 동결되는데 부유층들이 버는 돈은 계속 늘기 때문이다. 또 재정 적자에 처한 정부가 지원금을 삭감해 자선·문화 사업단체들이 운영난을 겪어 전보다 공익 활동이 위축됐다. 유산기부 운동은 이 두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유산기부 캠페인인 ‘레거시10’은 영국인이 자발적으로 유산의 10%를 자선·문화사업 단체에 기부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사후 자신의 재산 일부를 공익을 위해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정부가 모든 공공 부문을 직접 지원하는 것은 재정 및 효율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으므로 기부금에 대해 조세 혜택을 주고 간접 지원하는 것이다.

정부가 미처 챙기지 못한 복지의 사각지대도 기부가 메워줄 수 있다. 선진국이 기부자에게 과감한 세제 혜택을 주는 이유다. 복지 영역에 민간 참여를 확대하는 건 세계적 트렌드다.

국가에서 소외계층을 위해 지원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예산을 통해 사회적 약자에게 직접 지원하는 방법과 비영리단체 등을 통해 국가 대신 소외된 약자를 지원하게 하는 간접적 방법이 있다. 후자는 기부를 통해 주로 이뤄지게 되는데, 약자를 위해 지원하는 기부는 세제 지원으로 활성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정부 예산은 최근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보건·복지·고용 분야 예산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정부의 총지출예산이 2012년 325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469조6000억원으로 44.3% 증가한 반면, 보건·복지·고용 분야 예산은 92조6000억원에서 161조원으로 73.8%나 증가했다. 특히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확정된 2020년 예산에 따르면 정부 총지출 예산은 512조3000억원이었다. 이 중 최대 증액 분야인 보건·복지·고용 분야는 180조5000억원으로 전체 예산 중 35%에 달하며 전년 대비 19조5000억원(12.1%) 증가했다. 이렇게 사회복지 분야의 재정 부담이 커지는 현 상황에서 민간 자원으로서의 기부금이 활성화되면 사회복지와 관련된 국가 부담이 감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억만장자 40명 ‘기부 서약 운동’  

우리나라는 GDP 대비 기부금 비중이 2011년 0.84%에서 2016년에는 0.79%로 낮아졌다. 대표적 기부 국가인 미국은 GDP 대비 기부금 비중이 2%에 달한다. 국제기부지수(World Giving Index)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46개국 중 60위이다. 경제 규모에 비해 턱없이 낮다.

미국의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은 유산기부는 부의 양극화라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완화하려는 노력과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2010년 6월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마크 저커버그 등 억만장자 40명이 유산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기부 서약(The giving pledge) 운동’을 시작했다.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기부하자는 취지였다. 2017년 기준, 158명이 서명했다. 금액은 무려 7860억 달러(약 83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는 2011년 영국인 10%가 자발적으로 유산의 10% 기부를 서약하는 유산기부 캠페인 ‘레거시(Legacy)10’을 시작했다. 영국은 재산의 10%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면 상속세 10%를 경감해주는 특례제도를 두고 있다. 2017년 영국의 유산기부로 모집된 금액은 22억4000만 파운드(약 3조3000억원)에 달한다. 전체 기부금의 33%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기부금 추계 방식으로는 정확한 유산기부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우나, 0.5% 미만으로 추정된다.

영국과 한국의 전체 기부금은 각각 13조2000억원, 12조9000억원으로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유산기부 비중을 보면 33%와 0.5%로 큰 차이를 보인다. 영국은 상속세 감면을 통해 부가 사회에 환원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유산기부 비중이 낮은 이유는 유산기부에 대한 인식이 낮고, 기부해도 세제 혜택이 없기 때문이다.

‘유산기부법 도입되면 기부하겠다’ 51.6%

지난해 8월 한국자선단체협의회에서 한국갤럽을 통해 ‘우리나라 국민의 유산기부 인식조사’를 한 결과, 유산기부 의향은 26.3%로 나타났다. 또 영국처럼 개인 재산의 10%를 기부하면 상속세 10%를 경감해주는 유산기부법이 도입된다면 51.6%가 유산 기부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소득 계층에 상관없이 전 계층에서 50% 이상으로 나타났다. 유산의 사회 환원 수요가 실제 기부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법적 근거 마련 및 제도적 뒷받침을 하기 위해 유산기부 활성화 법 제정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이일하 한국자선단체협의회 이사장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사회문제는 정부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민간의 자발적 나눔으로 부의 양극화 및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과제 공약 중 ‘기부문화 활성화’가 있다. 공약이 반드시 실천되기를 바라며, 21대 국회에서 공약 이행을 위해 ‘유산기부법’ 제정을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중앙일보디자인=김승수 기자 kim.se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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