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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점심시간에 맞는데, 접종 뒤 30분 어떻게 기다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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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며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22일 대구 북구 한국건강관리협회 경북지부 입구가 한산하다. [뉴스1]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며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22일 대구 북구 한국건강관리협회 경북지부 입구가 한산하다. [뉴스1]

“점심시간에 나와서 접종한 거라 30분을 기다릴 수가 없어요.” 22일 낮 12시40분쯤 서울 강서구 한 내과에는 대기 환자가 한 명뿐이었다.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을 한 김재혁(64)씨는 주사를 맞자마자 병원을 나서며 “불안한 마음은 있어 일부러 5000원 비싼 프랑스 백신을 맞았다”며 “매년 맞았는데 부작용이 없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다.

시민들 독감백신 불안감 확산 #“5000원 비싼 프랑스산 맞았다 #매년 접종했는데 부작용 없어서” #“백신 맞아도 되나” 문의 쇄도

아나필락시스와 같은 이상반응에 대비하기 위해 질병관리청이 예방접종 후 15~30분 정도 의료기관에 머무르며 상태를 관찰하길 권유했지만 일반 병·의원에서는 백신 주사를 맞은 사람들이 급하게 병원을 나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특히 병원 근처에 직장이 있는 사람들은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독감 백신을 맞은 뒤 사망한 사례가 급증하면서 백신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일선 병원과 보건소에는 백신을 맞아도 될지 문의하는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독감 백신 접종을 위해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어든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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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11시 서울 동대문구 건강관리협회 동부지부에는 독감 백신 접종과 건강 검진 등을 위해 방문한 20여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15명 정도는 거리두기를 지키도록 마련한 자리에 앉아 독감 예방접종 관련 문진표를 쓰고 있었다. 협회 관계자는 “보통 병원보다 1만5000~2만원 정도 백신 접종 비용이 저렴해 지난 월·화요일만 해도 사람이 확 몰렸었는데 오늘은 확실히 인원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협회 안 비어 있는 자리 곳곳에는 백신 접종을 한 후 앉아서 쉬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근처에 살고 있다는 최모(54)씨는 “수납하려고 기다리고 하다 보니 5~10분이 이미 지났더라. 기왕 시간이 흐른 거 10분 정도 더 앉아 있으려 한다”며 “이전에 딱히 부작용이 있던 적은 없지만 조금 불안해서 대기하는 게 낫겠다 싶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한 소아청소년과도 상황이 비슷했다. 오전 10시쯤 문을 연 이곳은 30분 넘게 독감 백신 접종을 하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간호사는 “원래 평일 오전이어도 15명 정도는 있어서 이번 주 초에 백신 물량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아직 물량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데리고 접종을 하러 온 이모(33)씨는 주사를 맞은 뒤 아이와 함께 병원에 비치된 동화책을 읽었다. 그는 “지난달에 아이가 열이 난 적이 있어서 불안해도 그냥 접종했다”며 “의사도 대기하는 편이 좋다고 설명하고 병원에 사람이 많지도 않아서 20분 정도 있다가 갈 생각이다”고 말했다.

보건당국은 백신 접종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판단해 예방접종 사업을 이어갈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의사단체와 학회 등 전문기관 간에도 백신 접종 지속 여부를 놓고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어 혼란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전국 의사들에게 일주일간 독감 예방접종을 잠정 유보하라고 권고했다. 반면에 대한백신학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함께 계절 독감 유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소아·청소년과 고령자, 만성질환을 갖고 있는 면역 저하자에 대한 독감 백신 접종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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