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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예쁘장한 savage” K팝부터 힙합까지 왜 ‘야만’ 꽂혔나

중앙일보

입력

‘쇼! 음악중심’에 출연해 ‘프리티 새비지’ 무대를 선보인 블랙핑크. [MBC 캡처]

‘쇼! 음악중심’에 출연해 ‘프리티 새비지’ 무대를 선보인 블랙핑크. [MBC 캡처]

“모던 트랩 장르의 우수한 요소들을 더한 곡. 블랙핑크만의 개성이 뚝뚝 떨어진다.”(빌보드)
“아리아나 그란데의 ‘땡큐, 넥스트’ 이후 가장 대담한 오픈 트랙.”(롤링스톤)

외신 블랙핑크 ‘프리티 새비지’ 주목 #비욘세·카디비 등 센 언니 열풍 이어 #BTS 한국어 랩 더해진 ‘새비지 러브’ #갱단서 출발한 ‘새비지 모드 II’도 인기

미국 음악전문매체들이 블랙핑크의 ‘프리티 새비지(Pretty Savage)’에 보낸 찬사다. 빌보드는 지난 2일 발매 이후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에 오른 블랙핑크의 첫 정규앨범 ‘디 앨범(The Album)’ 중 최고의 곡으로 꼽기도 했다. 총 8곡이 수록된 이번 앨범에서 타이틀곡 ‘러브식 걸즈(Lovesick Girls)’와 선공개곡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이나 ‘아이스크림(Ice Cream)’을 제치고 1위에 오른 것이다. ‘러브식 걸즈’가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아파하던 소녀들이 이를 딛고 일어나는 모습을 그린 곡이라면, ‘프리티 새비지’는 웃어주지만 마냥 약하진 않은 언니들의 당찬 선전포고가 담겼다.

2020년판 ‘내가 제일 잘 나가’ 선전포고  

각각 ‘예쁜’ ‘야만적인’이란 뜻을 지닌 ‘프리티 새비지’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최근 팝 음악 시장에 불고 있는 여풍과도 맞닿아 있다. 지난 5월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른 래퍼 메건 더 스탤리언과 비욘세가 함께 부른 ‘새비지’부터 10주째 1~3위를 오가며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카디 비와 메건 더 스탤리언이 협업한 ‘WAP’까지 이들은 하나같이 ‘나쁜 년(bitch)’을 표방한다. 19금 표시가 붙은 ‘WAP’이 ‘매운맛’이라면, “우린 예쁘장한 savage” “아이 창피하다가도 멍석 깔면 바름”이라고 노래하는 ‘프리티 새비지’는 ‘순한맛’에 가깝다. 2011년 같은 YG엔터테인먼트 출신 선배그룹 투애니원(2NE1)이 발표한 ‘내가 제일 잘 나가’의 2020년 버전인 셈이다.

제이슨 데룰로, 조시 685, 방탄소년단이 함께 한 ‘새비지 러브’. [사진 방탄소년단 틱톡]

제이슨 데룰로, 조시 685, 방탄소년단이 함께 한 ‘새비지 러브’. [사진 방탄소년단 틱톡]

그렇다고 ‘새비지’가 여성의 전유물은 아니다. 방탄소년단(BTS)이 피처링에 참여한 ‘새비지 러브(Savage Love)’ 리믹스 버전도 지난주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랐다. 뉴질랜드 출신 프로듀서 조시 685가 만든 ‘랙스드(Laxed)’에 미국 팝스타 제이슨 데룰로가 노래한 원곡에 방탄소년단이 한국어 랩을 더했다. 황석희 번역가는 “‘배드(bad)’의 사전적 의미는 ‘나쁜’이지만 반어적으로 ‘좋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처럼 ‘새비지’도 ‘끝내준다’, 혹은 힙합 신에서 자주 사용되는 ‘찢었다’ 같은 느낌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어 가사 역시 “내가 두려운 게 그대이든 그때이든/ 불같이 사랑할래 그대 지금” 등 사랑을 향해 직진하는 이미지를 표현했다.

“서구중심 미개한 이미지 벗어 쿨한 느낌”

지난주 ‘빌보드 200’ 1위에 이어 2주차 2위에 오른 ‘새비지 모드 II(Savage Mode II)’도 눈에 띈다. 영국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주로 활동해온 래퍼 21 새비지와 프로듀서 메트로부민이 협업한 앨범이다. 2016년 함께 발매한 EP ‘새비지 모드’에 이은 시리즈 앨범이다. 소니뮤직 관계자는 “21 새비지는 갱단 출신인 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예명”이라며 “각자 추구하는 멈블 랩과 트랩 비트가 잘 맞아 떨어져서 ‘새비지 모드’ 후속 작업을 함께 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2013~2014년 데뷔한 신인이었던 두 사람이 힙합 신을 대표하는 차세대 주자로 거듭날 수 있게 해준 앨범”이라고 밝혔다.

래퍼 21 새비지와 프로듀서 메트로부민이 함께 한 앨범 ‘새비지 모드 II’. [사진 소니뮤직]

래퍼 21 새비지와 프로듀서 메트로부민이 함께 한 앨범 ‘새비지 모드 II’. [사진 소니뮤직]

‘새비지’의 의미가 시대 변화에 발맞춰 확장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조지메이슨대 이규탁 교수는 “과거 문화사에서는 지극히 서구 중심 시선으로 문명의 발전 단계를 미개의(Savage)-야만적인(Barbarous)-반문명화된(Half civilized)-문명화된(Civilized)-계몽된(Enlightened) 5단계로 구분했다면, 다문화주의가 부상하면서 차별적인 의미가 많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랜디 서 대중음악평론가는 “흑인을 중심으로 북미권 Z세대 사이에서 ‘새비지’가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다”며 “역사적으로 폭력이 만연한 사회였기 때문에 저항적인 이미지를 지닌 동시에 쿨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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