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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부, 구글에 반독점 소송 “혁신 아닌 독점 문지기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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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빅테크 권력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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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법무부(DOJ)가 20일(현지시간) 구글을 상대로 반(反)독점법 위반 혐의 소송을 제기했다. 구글이 스마트폰에 검색엔진을 선(先)탑재하는 행위로 시장의 경쟁을 저해했단 이유다. 미 법무부는 “20년 전 구글은 혁신적 검색 방법으로 실리콘밸리의 사랑을 받았지만, 오늘날 구글은 인터넷 독점의 문지기가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애플·삼성·LG 등과 거액 계약 #구글 엔진으로 모바일 검색 독점 #“애플에 연간 최대 13조원 건네” #구글 “소비자에 피해 안 줬다” 반박 #정부·빅테크 권력 기싸움 시작 #“구글 패소 땐 분할운명 처할 수도”

구글로선 1998년 창업 이후 최대 위기다. 검색부터 모바일 운영체제(OS), 앱 마켓 등 인터넷에서 정보의 길목을 장악한 구글은 닷컴 버블 이후 미국 혁신 기업의 상징이자 미 경제성장의 견인차였다. 그동안 구글을 견제한 건 주로 유럽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미국 정부가 나섰다. 4차 산업혁명이 무르익는 가운데 거대 기술기업(빅테크)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기업의 나라’ 미국에서 본격화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법무부의 소송은 기술 기업의 시장 지배에 대한 거대한 문제 제기”라며 “(이번 소송은) 소비자의 인터넷 사용 방식을 바꿀 수도 있는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주도 하원서도 반독점 보고서

20일(현지시간) 조시 홀리 미 상원의원이 법무부의 구글 제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조시 홀리 미 상원의원이 법무부의 구글 제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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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부의 법무부가 주도한 이번 소송엔 공화당 주정부들(플로리다·텍사스 등 11개 주)이 먼저 참여했다. 다른 주들도 독자 조사를 마치고 소송에 합류할 방침이다. 민주당 입장도 다르지 않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미 하원 반독점소위원회는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GAFA)에 대해 “독점적 지배력을 남용했다”는 결론의 보고서를 이달 초 내놓았다. 미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빅테크 견제를 밀어붙이고 있는 셈이다.

미 법무부는 구글이 애플·삼성·LG 등 휴대전화 제조업체나 이동통신사 등과 수십억 달러 이상의 계약을 맺고 모바일 검색시장을 독점하려 했다고 봤다. 검색엔진 시장의 경쟁을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안드로이드나 애플 스마트폰을 사면 구글 검색이 기본으로 탑재돼 있는데 사용자가 앱을 삭제할 수도 없다.

소장에 따르면 구글은 아이폰의 사파리 브라우저에 구글 엔진을 기본으로 넣는 대가로 애플에 연간 최대 120억 달러(약 13조5800억원)를 건넸다. 2018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가 매출 극대화를 위한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미팅을 한 일도 소장에 적시돼 있다. 이후 애플 고위 직원은 “두 회사가 한 회사처럼 작업하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라는 메모를 남겼다.

구글의 반독점 견제하는 각국 정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구글의 반독점 견제하는 각국 정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구글은 미국 검색시장의 88%, 모바일 검색의 94%를 점유한다. 이를 기반으로 지난해에만 미국에서 344억 달러(42조1000억원)의 검색 수익을 올렸다. 검색 광고 시장 점유율도 70%로 압도적이다. 제프 로젠 미 법무차관은 “구글은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로 독점력을 유지했다”며 “소비자의 이익을 위해 반독점 행위엔 대응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구글은 ‘소비자 피해’가 없었기에 독점으로 볼 수 없단 입장이다. 켄트 워커 구글 최고법무책임자(CLO)는 “소비자가 강요당하거나 대안이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구글을 쓰겠다고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피차이 CEO도 내부 e메일을 통해 “우리의 기술은 사람들을 돕고 있고, 삶을 개선하며 사회에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다.

NYT “소비자 IT 사용 방식 바꿀 도전”

이번 제소는 거대 플랫폼 기업 등 빅테크의 독과점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글로벌 경제에 큰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미 법무부가 소송에서 이길 경우 구글은 사업을 재구성하거나 일부를 분리해야 할 수 있다”며 “아마존·애플 등 구글과 직간접적으로 협력하는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의 반독점 규제는 강력하다. 80년대 미 최대 통신회사 AT&T가 강제로 쪼개지는 등 분할 사례도 여럿이다. 2000년 마이크로소프트(MS)도 ‘웹 브라우저 끼워팔기’ 혐의로 미 법무부의 반독점 소송에 직면해 회사분할 명령을 받았다. 당시 MS 창립자 빌 게이츠가 CEO에서 물러나며 법무부와 합의해 회사 분할을 막았다. NYT는 “구글은 지난해 미국 내 로비에만 1270만 달러를 쓴 기업”이라며 “법적 대응을 포함해 학계와 정계 로비를 통해 소송에 맞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글은 한국에서도 앱 선탑재와 앱마켓 결제 방식 강제 건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출시된 삼성전자 갤럭시S10, LG전자 V50 등의 스마트폰에는 구글 플레이스토어·크롬(웹 브라우저)·지메일·유튜브 등 구글 앱 10개가 선탑재돼 있다. 영구 삭제는 불가능하고 비활성화만 할 수 있다. 2011년 NHN(현 네이버)과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 신고로 촉발된 구글의 앱 선탑재 건은 일단 무혐의로 결론났으나 2016년 다시 문제가 제기돼 4년째 조사 중이다.

조원영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 실장은 “미국 정부의 본격적 규제로 국내에서도 행정권역 너머의 일이라 여겼던 글로벌 플랫폼에 대한 정부의 개입과 규제에 힘이 실리게 됐다”며 “소극적이었던 해외 기업에 대한 규제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원엽·하선영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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