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쿠팡 조리원 사망, 작업장 내 유해물질 탓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0.10.21 15:01

업데이트 2020.10.21 21:43

지난 6월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쿠팡 천안 물류센터 조리사 사망 사건 관련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쿠팡 천안 물류센터 조리사 사망 사건 관련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본지, 실험 보고서 단독 입수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지난 7월 쿠팡 천안 물류센터 조리원 사망이 작업장 내 유해물질 탓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사망 당시 현장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실험한 결과, 조리원 박모씨의 사망 원인인 급성 심근경색을 유발하는 유해물질은 기준치에 크게 못 미쳤다는 측정치가 나왔다.

21일 중앙일보가 익명을 요구한 국회 관계자로부터 단독 입수한 '쿠팡풀필먼트목천센터 구내식당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에는 이 같은 분석 결과가 나와 있다. 이 보고서는 지난 9월17일 고용부 의뢰로 안전보건공단이 작성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지난달 17일 작성한 쿠팡풀필먼트목천센터 구내식당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 이 보고서에는 조리원 박모씨 사망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유해물질 검출 실험을 한 결과, 기준치 이상의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자료=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지난달 17일 작성한 쿠팡풀필먼트목천센터 구내식당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 이 보고서에는 조리원 박모씨 사망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유해물질 검출 실험을 한 결과, 기준치 이상의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자료=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조리원 사인은 유해물질? 

고인은 지난 6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구내식당 청소를 하다 갑자기 쓰러졌다. 이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나타났다. 박씨의 유족과 민주노총 등은 고인이 청소할 때 락스와 주방세제를 섞어 쓰면서 발생한 클로로포름 등 유해물질을 사망 원인으로 지목했다. 클로로포름은 과거 마취제로 쓰다 사용 금지된 화학 물질로 다량 흡입하면 심장 부정맥 등을 유발한다. 이 때문에 박씨 유족 등은 사망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해 고용부에 사망 현장과 같은 조건에서 유해물질 발생 여부를 실험해 달라고 요청했다.

실험 결과, 유해물질 기준치 미만 

안전보건공단의 실험은 지난 8월11일부터 한 달간 이뤄졌다. 청소·소독 횟수, 취급한 락스와 주방 세제, 작업자 진술로 확보한 락스와 세제 간 혼합비율 등을 반영해 사고 당시와 같은 조건을 재연했다. 측정 결과 클로로포름·톨루엔·총휘발성유기화합물(TVOC) 등 유해물질은 미량 검출됐지만, 기준치에 크게 못 미쳤다. 락스와 세제를 혼합할 경우 클로로포름이 0.0004ppm이 검출됐으나, 인체에 위험한 노출 기준치(10ppm)의 0.004%였다. 보고서는 "측정 결과 클로로포름·톨루엔·수산화나트륨은 불검출 수준이었고, 염소는 노출 기준의 2.7% 이하 수준으로 평가됐다"고 적시했다.

쿠팡조리원 사망 현장 조사 결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쿠팡조리원 사망 현장 조사 결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정부 산하기관 조사 결과가 이같이 나오면서 박씨에 대한 산재보험 혜택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현재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산재 적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재차 역학조사를 진행 중이다. 실험 조건이 비슷하다면 관련 연구 결과도 비슷하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 보고서에는 "이번 측정 결과만으로는 재해 발생에 대한 인과 관계를 판단할 수 없다"며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에 따라 판단돼야 할 것"이란 의견을 달았다.

방역 지침은 지키지 않아 

유해물질 검출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구내식당 관리 업무를 위탁받은 동원홈푸드 등이 방역 지침을 어긴 행위는 있었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배포한 '코로나19 대응 집단시설‧다중이용시설 소독 안내' 에는 "락스 등은 산성 세정제, 합성 세제와 혼합해 사용 시 유해가스가 발생한다"는 경고 내용이 나와 있다. 이 같은 중대본의 경고가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았다.

박씨 사망 사건은 지난 8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거론되기도 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이에 대한 진상 규명을 당부했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당시 "사망 원인이 화학물질 노출인지, 급성 심근경색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고, 화학물질 사용에 대한 노사 간 이견도 있어 역학조사를 통해 면밀히 판단하겠다"고 답변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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