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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마을 떨게하는 ‘곰의 습격’···"늑대 모형 설치하니 사라졌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19일 오전 7시 50분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가가(加賀)시 복합 쇼핑몰 ‘아비오시티 가가’에선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직원들과 방문객들이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한데 엉켜 건물 밖 옥외 주차장으로 일제히 달려갔고, 얼마 후 방패와 각목을 든 경찰들이 몰려와 분주히 현장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총을 든 엽사들도 사격 자세를 취하며 함께 했다.

지난 19일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가가(加賀)시 복합 쇼핑몰 ‘아비오시티 가가’에 출몰했다가 사살된 곰. [NHK 뉴스 캡처]

지난 19일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가가(加賀)시 복합 쇼핑몰 ‘아비오시티 가가’에 출몰했다가 사살된 곰. [NHK 뉴스 캡처]

소동의 원인은 곰이었다. 체중 130㎏의 곰 한 마리가 쇼핑몰에 들이닥쳤던 것이다. 쇼핑몰 북쪽으로 약 400m 떨어진 초등학교에선 집단하교가 이뤄졌다. 곰은 경찰과 13시간 넘는 대치 끝에 오후 9시 쇼핑몰 창고에서 사살됐다.

20일 아사히신문은 이 같은 현장과 함께 “이렇게 사람이 많은 쇼핑몰까지 곰이 찾아온 건 이례적”이라는 현지 주민의 반응을 전했다. 가가온천역 앞에 자리한 해당 쇼핑몰 인근에는 식당과 병원이 있어 사람들 왕래가 잦은 곳이다. 곰이 제발로 찾아오기 어렵다고 생각한 장소도 이젠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의미다.

올해 8월 곰 출몰 급증…2명 사망, 22명 부상 

최근 일본이 수시로 출몰하는 곰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곰의 습격으로 올해에만 벌써 최소 2개 현에서 2명이 사망했고, 4개 현에서 22명이 부상을 입었다. 곰을 목격했다는 신고만 전국에서 1만건 이상 접수됐다고 한다.

이를 놓고 지방 인구 감소로 곰의 활동 영역이 넓어진 점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곰 퇴치에 비상이 걸린 지자체에선 급기야 늑대 모형으로 곰을 쫓아내는 아이디어까지 구상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시카와현은 이미 지난 8일 최고 경계 수준인 ‘출몰 경계 정보’를 발령했다. 최근 현 내 곰 목격 신고가 400건에 달했고, 16~18일 가가시와 하쿠야마(白山)시에서 곰의 습격으로 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나가노(長野)현에서도 지난 8월 이후 4명이 곰에게 부상을 입는 등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현 내 가미코치(上高地) 자연공원은 같은 달 17일까지 곰 목격 신고가 100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2018년 전체 40건에 불과하던 수치가 크게 늘었다.

니가타(新潟)현에선 지난 1일 70대 여성이 밭에서 곰에게 습격당해 사망했다. 해당 현에서 곰에게 사망한 사람이 나온 건 200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아키타(秋田)현에서도 지난 7일 83세 여성이 곰에게 공격을 당하고 1주일 뒤 숨졌다.

일본 환경성은 올해 8월 곰 출몰 건수는 3255건으로 최근 5년간 최다라고 밝혔다. 8월까지 5개월간 포획된 곰은 3207마리로 2018년 한해 포획된 곰 수에 육박한다.

사람 빠진 영역에 곰이 들어왔다 

무엇이 곰을 사람들로 이끌었을까. 야마자키 고지(山崎晃司) 도쿄농업대 동물생태학 교수는 아사히신문에 “최근 몇 년 곰의 서식지가 넓어진 게 출몰 증가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지방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로 인간의 활동 영역이 줄어드는 대신 곰이 활동 영역이 확대됐다는 것이다.

아사노 마코토(淺野玄) 기후대 야생동물의학 교수는 “도토리 등 견과류 나무의 흉작도 곰의 출몰에 영향을 미쳤다”며 “굶주린 곰이 마을에서 먹이를 찾는 경우가 빈번해졌다”고 말했다.

늑대 모형 설치했더니 곰 사라져 

인간도 보다 적극적으로 반격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NHK에 따르면 홋카이도 다키가와(滝川)시는 요즘 1m 길이의 늑대 모형을 곰 출몰 지역에 설치해 곰을 쫓아내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몬스터 울프’라는 이름의 해당 모형은 다가오는 곰을 적외선 센서를 통해 감지한 뒤 고개를 흔들고 눈에서 레이저를 발사한다.

홋카이도 다키가와시가 곰 출몰 지역에 설치한 '몬스터 울프' 늑대 모형. 곰이 접근하면 눈에서 빛이 나고 늑대 소리를 내 곰을 쫓아낸다. [NHK 뉴스 캡처]

홋카이도 다키가와시가 곰 출몰 지역에 설치한 '몬스터 울프' 늑대 모형. 곰이 접근하면 눈에서 빛이 나고 늑대 소리를 내 곰을 쫓아낸다. [NHK 뉴스 캡처]

늑대 울음소리는 기본이고, 혹시 곰이 장치를 속임수라고 눈치챌 가능성까지 대비해 사람 소리, 총소리 등 60종류의 소리가 때에 따라 나오도록 만들었다. 몬스터 울프가 설치된 구역에서 곰이 1개월간 출몰하지 않아 홋카이도시는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환경성은 “곰을 만날 경우 소리를 지르지 말고 곰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는 행동지침을 배포하고 있다. 그리고는 “조용히 뒤로 물러나면서 나무 등 장애물을 사이에 둬 곰의 돌진에 따른 충돌을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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