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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람사전

투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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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정철 카피라이터

정철 카피라이터

운동장 가장 높은 곳에 홀로 놓인 사람. 어깨가 무거워 더 외로운 사람. 선수, 심판, 관중 모두가 주목하는 사람. 시선이 무거워 더 외로운 사람. 장갑 하나 달랑 끼고 방망이 아홉을 차례로 상대해야 하는 사람. 외로울 수 있는 조건은 모두 갖춘 사람. 우리는 이 사람을 투수라 부르지만 운동장 밖에 앉은 투수들은 이 사람을 에이스라 부른다. 에이스를 조금 길게 풀면, 외로움을 견뎌왔고 견디고 있고 견뎌낼 사람.

『사람사전』은 ‘투수’를 이렇게 풀었다. 외로움을 이겨낸 사람만이 마운드에 설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외로움과 싸워 이긴 대가가 다시 외로움이다. 주목받지 못하는 것도 외로움이지만, 모두의 주목을 홀로 견디는 것 또한 외로움이다. 화려함이 등 뒤에 감춘 것이 외로움이다.

사람사전 10/21

사람사전 10/21

운동선수만 그럴까. 연예인도 정치인도 작가도 조명을 받는 만큼 외롭다. 그러나 우리는 높은 곳에 놓인 외로움은 애써 못 본 척한다. 화려함을 받았으니 외로움 따위는 마땅히 견뎌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이 조금이라도 외로운 표정을 지으면 손가락질을 한다. 배부른 투정이라며 마구 욕을 한다. 독한 말, 바로 악플이다. 악플은 비수가 되어 그들 가슴을 푹푹 찌른다. 그렇게 피 흘리며 쓰러지는 사람을 우리는 수도 없이 지켜봤다.

누군가는 외로워서 악플을 던지는 거라고 말하지만 악플은 외로움을 치유해주지 않는다. 부모에게, 친구에게, 연인에게 독한 말을 쏟아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안다. 그날 밤이 얼마나 외로운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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