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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다”던 서울 한복판 첨성대 조형물…6400만원 들인 철거도 ‘시끌’

중앙일보

입력

지난 15일 서울시 중구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앞 통행로에 철거한 조형물 조각이 방치된 모습. 최은경 기자

지난 15일 서울시 중구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앞 통행로에 철거한 조형물 조각이 방치된 모습. 최은경 기자

지난 15일 늦은 오후 서울시청 맞은편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앞길. 파란 비닐과 노란 테이프로 싼 원통형 물체 여러 개가 통행을 가로막았다.

지난 5월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설치 #“도시 경관 해친다” 부정적 여론 #전시관 vs 작가, 비용 두고 분쟁 #2017년 슈즈트리도 9일 만 철거 #“시민 눈높이 맞지 않아 혈세 낭비”

이 물체는 서울시가 지난 10일부터 철거한 첨성대 모양 조형물 일부였다. 시는 지난 5월 서울도시건축전시관 1층 옥상 광장 ‘서울마루’에 이 조형물을 설치했다.

서울시는 6400만원(이전 2000만원, 철거 2200만원, 기반공사와 홍보 2200만원)을 들여 전남 순천의 순천만국가정원에 있던 이 조형물을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 옮겨왔지만 기대한 전시·홍보효과를 보지 못하고 5달 만에 철거했다.

설치 초기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아 오히려 미관을 해친다는 부정적 반응이 나온 데 이어 현재 전시관 측이 조형물을 제작한 작가와 법적 분쟁을 예고해 전시 기획 과정이 적절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 조형물은 2006년 한원석 작가가 제작한 ‘환생’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06년 9월 29일부터 약 한 달 동안 청계천 복원 1주년 기념으로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 설치됐다.

지난 16일 서울시 중구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앞 통행로에 철거한 조형물 조각이 방치된 모습. 조형물이 설치돼 있던 1층 옥상 광장에도 일부가 남아 있다. 최은경 기자

지난 16일 서울시 중구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앞 통행로에 철거한 조형물 조각이 방치된 모습. 조형물이 설치돼 있던 1층 옥상 광장에도 일부가 남아 있다. 최은경 기자

2006년 12월부터 2014년 9월까지 8년 가까이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에 설치됐다가 이후 지난해 11월까지 순천만국가정원에 전시돼 있었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은 지난 5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에게 색다른 빛의 메시지로 희망과 위로를 전하려 한다”며 같은 달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석 달 가량 이 작품을 선보이는 '천 년의 빛으로 희망을 비추다’ 전시회를 연다고 했다.

첨성대 모양의 이 조형물은 폐자동차의 전조등 1300여 개를 이용해 제작했다. 높이는 9m를 넘고 무게는 22톤에 이른다. 조형물이 공개되자 시민들은 낮은 1층 건물에 우뚝 솟은 모습이나 경주 첨성대를 본뜬 작품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것 등이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시관 홈페이지에는 “야간 조명으로 아름다운 성당(조형물 뒤편 성공회성당)의 은은하고 고풍스러운 모습이 첨성대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작품 의도와 모양은 나무랄 데 없지만 다른 건물이나 풍경과도 조화를 이뤘으면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서울시 담당자도 조형물이 공개됐을 때 여론이 좋지 않을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당초 이 조형물은 올 초부터 전시하기로 협약됐다. 도시건축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전시관을 위탁 운영하는 한국건축가협회 회장단이 작품을 결정했다고 한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 1층 옥상 광장에 한원석 작가의 '환생' 작품이 전시된 모습. 현재는 철거됐다. [연합뉴스]

서울도시건축전시관 1층 옥상 광장에 한원석 작가의 '환생' 작품이 전시된 모습. 현재는 철거됐다. [연합뉴스]

서울시 관계자는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있다가 협약 후 조형물이 너무 크고 무겁다는 것을 알았다. 안전문제가 우려돼 구조 검토를 다시 해보라고 했다”며 “여론이 안 좋을 수 있다는 막연한 우려로 계속 미룰 수는 없고 여론이 좋지 않으면 조기 종영도 고려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 5월 공개를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 일정이 늦어지면서 전시 취지에 “코로나19 극복”이라는 메시지를 더했다.

전시는 8월 중순에 끝났지만 조형물 철거는 예정된 일정보다 두 달 정도 늦어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작가와 전시관 측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며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시가 나서 경북도청에 이전할 수 있게 협의 중이었는데 무산됐다”고 말했다.

철거한 조형물 6조각 중 4조각은 경기도 한 창고에 보관돼 있다. 나머지 2조각은 작가가 보관하고 있다. 18~19일 철거된 조형물을 옮길 때 작가가 중단을 요청해 2조각을 실은 트럭이 덕수궁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기도 했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다쳤다고 주장했다.

1층 옥상정원 위 첨성대를 철거하고 조형물을 모두 옮긴 모습.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은 지난 5월~8월 전시 계획으로 조형물을 설치했다가 10월 철거했다. 최은경기자

1층 옥상정원 위 첨성대를 철거하고 조형물을 모두 옮긴 모습.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은 지난 5월~8월 전시 계획으로 조형물을 설치했다가 10월 철거했다. 최은경기자

전시관 측은 “작가의 일방적이고 왜곡된 주장 등으로 큰 손해가 발생했다”며 “민·형사상 법적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작가는 “황당무계한 권모술수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며 “다친 데 대해 전시관이 계약한 용역사를 형사 고소했으니 결과가 나오면 입장을 밝히겠다”고 맞섰다.

서울시는 2017년 5월에는 서울역 고가 보행길인 ‘서울로7017’ 개장을 기념해 서울역광장에 헌 신발 3만 켤레로 만든 작품 ‘슈즈트리’를 설치했다가 논란에 휩싸여 열흘도 안 돼 철거한 적이 있다.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소속 이성배 의원은 “서울시와 전시관 마음대로가 아닌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전시를 해야 한다”며 “시민이 공감하고 좋아한다면 6억4000만원을 들여도 아깝지 않겠지만 시민이 외면하는 전시는 혈세를 낭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위탁업체를 더 꼼꼼하게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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