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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서 만나자" 250명 희망퇴직 여행사 사장 편지 [전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여행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NHN에 인수됐던 여행사 '여행박사'가 대규모 희망퇴직을 받으며, 사장이 직원에게 보낸 메시지가 화제다.

회사는 직원 10명을 제외한 나머지 25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신청자는 1개월 치 급여를 위로금으로 받는다. 퇴직일은 11월 30일 자다.

양주일 NHN 여행박사 대표. [인터넷 캡처]

양주일 NHN 여행박사 대표. [인터넷 캡처]

NHN 여행박사의 양주일 사장은 사내 조직장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몇 번을 쓰고 지웠는지 모릅니다. 드라이하게 사유만 적을까,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전달할까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라며 "이 시간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기원했지만 오고야 말았다"고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예약 불가 상황을 일리고 있는 여행박사 홈페이지. [인터넷 캡처]

예약 불가 상황을 일리고 있는 여행박사 홈페이지. [인터넷 캡처]

그는 "누군가는 모든 게 계획적이지 않았냐고 분노하시겠지만 이런 이야기만은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라며 "6개월 전 부임할 때만 해도 좋은 회사를 만들어보겠다는 건 진심이었다. 백 마디 천 마디 말을 해도 납득할 수 없는 말들일 것이고,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이 거부할 것 같다. 그래도 잠시 고민했던 말씀은 드리는 게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글을 이어갔다.

이어 "정상이 비정상이고 비정상이 정상 같은 이상한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그냥 지금처럼 살다가 여행이 재개되면 다시 출근하고 일하면 좋겠지만, 실낱같은 연을 유지하기에도, 회사가 숨만 쉬기에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고민을 토로했다.

그는 "이 재난은 오래갈 것 같다"며 "여행이 재개되더라도 다들 달릴 것이고, 그러면 또 마이너스 경쟁이 될 것이다. 틀림없이 이 업계는 다운사이징으로 갈 것"이라고 미래를 어둡게 전망했다.

그는 "노사협의회를 거쳤고 희망퇴직과 정리해고에 대한 방침도 미리 전달했다"며 위로금이 한 달 치밖에 안 되는 것과 관련해 "그게 뭐 정리해고지 희망퇴직이냐 하겠지만, 지금 그마저도 어려운 잔고가 없어 대출받아 지원하는 실정"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두 달, 석 달 급여로 하고 싶지만 100만원이 100명이면 1억원"이라며 "그놈의 그 알량한 돈이 없다"고 푸념했다.

"메일을 보내놓고 내일 아침이면 후회할지도 모르겠다"며 "다른 곳에서 다른 이유로 다시 만나면 좋겠다. 그땐 저도 다른 위치다. 내일은 해가 늦게 뜨면 좋겠다"라고 글을 맺었다.

양주일 여행박사 대표가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 전문

제목 : 마지막 메일일 것 같네요.

눈 떠보니 이시간이네요
술을 좀 먹고
노트북을 켜고

메일을 보내려다

식탁에서 잠이들었네요

몇번을 쓰고 지웠는지 모릅니다

드라이하게 사유만 적을까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전달할까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이 시간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기원했지만

오고야 말았습니다

매번 다음을 기약한다고 말씀 드렸지만

그 시간은 언제일지 모르게 아득히 멀어졌네요

누군가는 모든게 계획이지 않았냐고 분노하시겠지만

이런 이야기만은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6개월전 부임할때만해도

좋은 회사 만들어 보겠다는 건 진심이었습니다

백마디 천마디 말을 해도

납득할 수 없는 말들일 것이고

머리론 이해해도 가슴이 거부할 거 같네요

그래도 잠시 함께 고민했던 조직장님들께

말씀은 드리는게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예의라 생각합니다

여행업에 와서 만난 분과 술한잔 할때

그분이 그러시더군요

여행업은 미래를 가불해서 살아온 것 같다고

수탁고는 늘었고 통장은 가득했기에

제 살 깎아먹는 줄 모르고 살았다고

정상이 비정상이고 비정상이 정상같은 이상한 상황이네요

그냥 지금처럼 살다가

여행이 재개되면 다시 출근하고 일을 하면 좋겠지만

실낱같은 연을 유지하기에도

회사가 숨만 쉬기에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 재난은 오래갈 것 같습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다른 일을 찾으세요

여행이 재개 되더라도 다들 달릴 것이고

그럼 또 마이너스 경쟁이 될 것입니다

틀림없이 이 업계는 다운사이징으로 갈거에요

어제 노사협의회를 열어

희망퇴직과 정리해고에 대해 이야길 드렸습니다

그게 뭐 정리해고지 희망퇴직이냐 하시겠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잔고가 없고 대출받아 지원하는 실정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2달, 3달 급여로 하고 싶지만

100만원이 100명이면 1억이네요

그놈의 그 알량한

돈이 없습니다...

오늘 낮에 공지를 할 것이고

자세한 내용은 공지를 봐주시길 바랍니다

메일을 보내놓고

아침이면 후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글이 뉴스에 퍼질까 두렵기도 하고

그래도 이렇게 쓰는건

저도 한 사람이라는거

제정신으로는 한마디도 못할거 같아

술 좀 마셨습니다

술먹고 메일 쓰는 거 아니라고 배웠는데...

여러분만은 그 사람 어쩔수 없었을거야라고 생각해주시기를...

다른 곳에서 다른 이유로 다시 만나면 좋겠습니다

그땐 저도 다른 위치에서요

내일은 해가 늦게 뜨면 좋겠습니다

양주일 드림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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