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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영준의 시시각각

웃픈 트럼프 더 웃픈 홍남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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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10월의 서프라이즈는 없었다. 애초부터 가능성이 없었던 북·미 깜짝쇼를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혹시나 하고 눈여겨본 건 코로나 백신 개발 완료 선언이란 서프라이즈였다. 도널드 트럼프는 대선(11월 3일) 전에 백신 개발을 끝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독려했다. 바이든과의 격차를 일거에 줄일 수 있는 유일한 카드라 본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격인 앤서니 파우치 국립전염병연구소장은 내년 4월에도 될까 말까 한 이야기라고 선을 그어 버렸다.

트럼프 확진과 전세난민 홍남기 #두 편의 블랙코미디 공통점은 #독선과 확증편향의 산물이란 점

트럼프 확진 판정 소동은 깜짝쇼라기보다 블랙코미디에 가까웠다. 하루 확진자가 7만 명씩 쏟아져 나오고 마스크 쓰기를 비웃던 대통령도 비켜가지 못하는 방역 실패, 그러면서도 방역과 정치를 뒤섞고 표(票)계산으로 이어가는 미국 권부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 리얼리티 쇼이기도 했다. 확진 사흘 만에 병상을 박차고 나온 트럼프는 예상대로 ‘중국 바이러스를 물리친 수퍼맨’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다. 제 허물은 보지 않고 희생양을 만들어 몰아세우는 건 익히 보던 수법이다. 대선 코앞의 트럼프에겐 그게 중국이다. 밥 우드워드의 저서 『격노』에 따르면 트럼프가 ‘중국 바이러스’란 명칭 사용을 자제한 시기가 딱 한 번 있었다. 올봄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의 인맥을 통해 중국에 마스크 지원을 요청하던 무렵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트럼프의 입에선 중국 바이러스란 용어가 되살아났다. 방역 이외의 논리가 끊임없이 방역에 개입한 사례들을 『격노』는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내가 아니었다면 미국은 훨씬 많은 사망자로 쑥대밭이 됐을 것”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 아니면…”이야말로 어디서 많이 보던 아집이요 확증편향이자 낯 뜨거운 나르시시즘 아닌가. 이런 논리가 유권자에게 먹힐지는 곧 판명나겠지만, 분명한 건 미국에도 트럼프가 뭘 하든 밀어주는 ‘대깨트’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블랙코미디의 또 다른 버전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주인공의 격이 약간 떨어지지만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희비극적 요소는 절대 뒤지지 않는다. 이 코미디의 제목은 ‘전세난민 홍남기’다.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자화상이기에 웃기지만 웃음이 안 나온다. 말 그대로 ‘웃픈’ 현실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임차인이자 임대인이다. 두 가지 입장에 모두 있는 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전세난민이 됐다는 사실 자체가 정책 실패를 웅변해 준다. 이보다 더 확실한 실패의 증거가 또 어디 있으랴. 임대인도, 임차인도 모두 보호받지 못하는 법을 ‘보호법’이랍시고 국회 토론조차 잘라먹고 밀어붙인 결과다. 그러고서는 또 보완책을 마련 중이라 한다. 방향은 옳고 일시적 혼란에 불과하다는 변명도 빠지지 않는다. 하도 들어 더 이상 귀에 못이 박일 자리조차 없을 지경이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비서실장이 관료들에게 집 한 채만 남기고 다 팔라고 지시한 것 자체가 코미디의 시작이었다. 관료들이 투기를 해선 안 될 일이지만 앞뒤 사정 가리지 않고 일률적으로 집을 팔라 마라 하며 어기면 역적 취급을 하는 것이나 아무리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지만 잠재적 투기꾼 의심을 받는 것만도 억울한데 재산권과 사적 자치의 원칙 침해까지 군말 없이 받아들이는 상황이 21세기 자유국가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그게 부동산 값을 잡는 데 무슨 효과가 있단 말인가. 고위 공무원이 솔선수범했으니 이제 국민 여러분이 집을 팔 차례라며 세금 폭탄을 안긴 결과가 선의의 1주택자들에게도 피해를 주고, 연쇄적으로 시장의 왜곡과 혼란을 가져오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두 코미디는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본질은 같다. 나만 옳다는 위정자의 독선과 내 편만 챙기면 된다는 책략,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오만이 불러 온 결과란 점에서다. 웃픈 현실에 국민은 조소를 던지며 분노한다. “당신도 당해 보니 이제 알겠나”고.

예영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