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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를 지지하는 이민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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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지난 4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입원해 있던 메릴랜드의 월터 리드 군병원을 찾았다. 병원 앞에는 밤낮으로 그의 쾌유를 비는 지지자들 수십명, 많을 때는 수백명이 모이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역수칙을 어기고 이들을 보러 차를 타고 ‘깜짝 외출’을 한 바로 그날이었다. 22만 명 미국인의 목숨을 앗아간 감염병을 여전히 얕보는 지도자에게 열광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흑인이나 라틴계, 아시아인 등 다양한 배경의 지지자가 꽤 많은 점도 눈에 띄었다. 이들 역시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가 쓰인 붉은 모자에, 트럼프 얼굴이 그려진 플래카드, 직접 쓴 손팻말 등 다양한 장비를 갖추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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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인 반(反)이민정책, 인종 차별주의를 감싸는 듯한 모습으로 논란이 되고 있지만 현장의 지지자들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왜 그런지 직접 물어봤다. 이민 1세대라는 라틴계 남성 폴 루이즈는 “나는 남미 사람이 아니라 미국 시민”이라며 인종 문제에 선을 그었다. “강한 미국이 좋아 이곳을 택한 것인 만큼 강한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이야기였다. 여론조사를 보면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라틴계는 30%를 꾸준히 웃돈다. 뉴욕타임스는 “공산주의 정권이 싫어 넘어온 쿠바나 베네수엘라 출신, 복음주의 기독교인 이민자들은 트럼프의 정책과 상관없이 그를 지지한다”고 분석했다.

한인 지지자들 사이에서의 감정은 좀 더 복합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차이나 바이러스’가 퍼진 뒤로 애꿎은 한인들을 상대로 한 크고 작은 혐오 범죄가 늘었다. 그럼에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한인 단체의 김태수씨는 강력한 ‘법질서’를 외치는 트럼프에게 표를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신처럼 1992년 LA 폭동을 겪은 사람들은 더 그렇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심각한 타격을 받은 자영업자 한인 입장에선 “더 강력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민주당 주장이 딴 세상 이야기 같이 들린다고 했다. 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 웬만한 흠결은 눈감을 수 있다는 분위기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56%가 “4년 전보다 잘살게 됐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오바마 4년 차엔 45%, 부시와 레이건 때는 각각 44%에 그쳤다. 지지율 숫자에선 좀처럼 회복을 못 하지만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를 자신하는 것도 이런 대목에서다. 그는 지금도 유세장에서 “우리에겐 바이든 쪽에 없는 열정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번에도 이런 ‘열정’이 ‘숫자’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이제 미 대선은 2주 남았다.

김필규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