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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어릴 적 어머니 품 떠오르게 하는 빈민가 부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25)

엘살바도르 산간 지역에서 만난 주방. 밥을 짓거나 빵을 굽기 위해 때는 장작은 대개 여자들이나 자녀가 모아온다. 이렇게 수고해서 가져온 나무에 엄마는 불을 붙이고 자욱한 연기를 들이켜며 가족들에게 먹일 음식을 만든다. [사진 허호]

엘살바도르 산간 지역에서 만난 주방. 밥을 짓거나 빵을 굽기 위해 때는 장작은 대개 여자들이나 자녀가 모아온다. 이렇게 수고해서 가져온 나무에 엄마는 불을 붙이고 자욱한 연기를 들이켜며 가족들에게 먹일 음식을 만든다. [사진 허호]

요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사진을 찍기보다도 소일거리로 하던 가구 만드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됩니다. 손이 바빠지니 머리가 비워지면서 종종 어린 시절의 특별한 정취를 떠올리게 됩니다. 요즘엔 잘 찾을 수 없는 것들이어서 아련한 기분이 들곤 하지요.

깊은 산골짜기까지는 아니지만 야트막한 산야를 뛰어다니다 보면 느닷없이 만나는 소나기에 확 짙어지는 풀 향기라든지, 무더위가 찾아오기 전 시원하게 자라고 어머니가 준비해 주셨던 베를 덧댄 베개와 이불에서 풍겨오던 까슬하고 서늘한 한기라든지, 늦은 저녁 집으로 달려가다 멈추고 보았던 검고 붉은 석양을 배경으로 집집이 흰 연기가 올라오는 광경 등입니다.

부엌으로 뛰어들어가면 장작 타는 냄새와 무쇠솥에서 타닥타닥 밥이 익어가는 소리가 고픈 배를 더 자극했는데, 그 안쪽에서 어머니의 빨리 씻고 밥 먹으라는 소리가 들려올 때야 뱃속 깊은 곳까지 안심되었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고향의 정취이고 어머니의 품을 떠올리게 하는 정서였습니다. 지금은 잘 만날 수 없는 이런 모습을 컴패션 수혜국의 주방에서 본다는 것은 참 묘한 기분입니다. 그것도 밥 한 끼에 들어갔던 어머니의 수고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그때는 놓쳤던 것을 멀고 먼 다른 나라의 좁디좁은 주방에서 알게 됩니다.

페루에서 만난 부엌. 나무를 때고 난 시커먼 그을음으로 찌든 벽이 시선을 압도한다. 나무를 때고 또 땐 흔적으로, 켜켜이 쌓인 그을음이 만들어 낸 시간의 때가 고스란히 벽에 남아 있는 것이다.

페루에서 만난 부엌. 나무를 때고 난 시커먼 그을음으로 찌든 벽이 시선을 압도한다. 나무를 때고 또 땐 흔적으로, 켜켜이 쌓인 그을음이 만들어 낸 시간의 때가 고스란히 벽에 남아 있는 것이다.

최소한 생존할 수 있는 제일 조건은 먹는 것이죠. 먹는 것이 채워지고 난 뒤에야 공부도 하고 병도 고치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기본은 먹는 건데 그것을 만들어내는 곳이 부엌이죠. 부엌은 집 공간에서 최고의 우선순위는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살림살이의 진면목이 거의 그대로 드러나더군요. 그 집의 살림살이가 가난할수록 부엌에 투자를 못 하는 거죠. 먹을 게 어느 정도 있는 집은 조리하는 공간이 필요하지만, 먹는 게 시원찮고 간단하게 먹을 수밖에 없다면 불만 있어도 되거든요.

우리는 바로 수돗물을 틀면 물이 나오지요. 이들에게는 물이 귀한 데다 상하수도가 있는 집 자체가 별로 없으니까 물을 길어와야 하죠. 불을 때는 아궁이에서 밥이나 빵을 굽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땔감을 주워오거나 만들어오지요. 이게 전반적으로 노동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여자의 몫이든 아이의 몫이든, 우리에게는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물과 불을 해결하는 데 있어 이곳에서는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은토토 산에서 만난 아이들만 해도 자기 몸무게보다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내려와 시장에 내다 팔곤 했는데 남은 것은 자기 집으로 가져가 땔감으로 사용했습니다. 그 가지들이 가시처럼 아이의 등과 머리를 찌르곤 했던 것을 나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필리핀 도시빈민의 부엌. 장작을 때는 것이 아닌, 가스버너를 사용하고 있다. 도시에 사는 이들은 나무마저도 주워 땔 수 없다.

필리핀 도시빈민의 부엌. 장작을 때는 것이 아닌, 가스버너를 사용하고 있다. 도시에 사는 이들은 나무마저도 주워 땔 수 없다.

태국 치앙마이의 카렌족 소녀. 장녀여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였고 많은 가사 일에 참여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밭에 나가 일을 하고는 나이 어린 동생들을 먹이고 돌본 뒤 한밤중 숙제까지 하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가족들에게 먹일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집 안에 마련된 부엌에서 불을 피우는 장면.

태국 치앙마이의 카렌족 소녀. 장녀여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였고 많은 가사 일에 참여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밭에 나가 일을 하고는 나이 어린 동생들을 먹이고 돌본 뒤 한밤중 숙제까지 하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가족들에게 먹일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집 안에 마련된 부엌에서 불을 피우는 장면.

에콰도르 아마존에서 만난 부엌. 사실 부엌이라고 할 형태가 없었다. 그냥 맨바닥에 불을 때는 자리가 부엌이었다. 재에서 온기가 남아 있었는지, 개가 그곳에 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다.

에콰도르 아마존에서 만난 부엌. 사실 부엌이라고 할 형태가 없었다. 그냥 맨바닥에 불을 때는 자리가 부엌이었다. 재에서 온기가 남아 있었는지, 개가 그곳에 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다.

화장실이 살림을 드러내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까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화장실은 집 안에 있는 경우가 드물어요. 한 평 남짓한 판잣집 방 한 칸에 여러 명이 사는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그런 좁은 공간에 화장실을 어떻게 만들어 놓겠어요.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거나 밖에 있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부엌은 그렇게 해결이 안 돼요. 부엌은 자기네 거주하는 공간 안에 만들어야 하지요.

불을 피워본 사람은 불을 붙이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요즘에는 버튼 하나를 누르기만 하면 가스레인지에서 불이 붙지요. 원할 때 언제든 불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혜택입니다. 하지만 내가 가서 본 곳은 그런 혜택이 없는 거죠. 착화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스레인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삶과 생활의 지혜를 가져와 불을 붙이지만 끼니마다 그런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죠.

매번 불을 붙이고 물을 끓이고 음식을 조리한다는 행위가 여성의 몫인 거고, 그 전반적인 행위와 노동의 강도는 간단치가 않았습니다. 이들인들 편리하고 깨끗한 식수와 깨끗한 취사도구에 대한 욕구가 왜 없겠습니까. 가난이 욕구를 억누르고 짓누르고 있는 거지요. 하지만 그 안에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여러 차례 컴패션 가정에서 보고 느껴왔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이라든가, 감사하는 마음이라든가,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 모습이죠.

나무로 불을 지피고 물을 길어다 써야 했던 시절에 부엌일은 여성의 어마어마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그만큼의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게 되었죠. 그보다는 가정과 삶의 문화를 보여주고 생활의 방식을 드러내는 중요한 공간이 되었죠. 넓은 주방, 깨끗하고 편리한 주방에 자신만의 개성을 담는 것이 주부의 로망이고 집을 선택하는 중요 기준이 되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꼭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 자체를 번거로워하고 귀찮아하기도 하다 보니, 주방을 만들지 않는 집 구조를 원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먹는다는 것은 삶의 아주 기초적인 부분이고 부엌은 그런 삶의 기초가 시작되는 곳으로 나는 추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음식을 만들지 않는 이런 문화는 삶의 큰 의미를 잃은 것은 아닌지 반문이 듭니다. 오늘 가족들과 소소한 음식을 먹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며 다시 한번 돌아봐야겠습니다.

사진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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