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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밭 사냥·신산업 규제 비판 받는 을지로위…진성준 "세입자, 예술인 살피겠다"

중앙일보

입력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기 을지로위원장에 당선됐다. 그는 통화에서 "당명에 입각한 의정 활동 외에도, 자유로운 입장에서 하고 싶은 의정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뉴스1]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기 을지로위원장에 당선됐다. 그는 통화에서 "당명에 입각한 의정 활동 외에도, 자유로운 입장에서 하고 싶은 의정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신임 사령탑에 오른 진성준 위원장은 이달 9일 당원 투표로 당선됐다. 그는 지난달 28일 출마 기자회견 직후 “공정경제3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상법), 부동산 후속법 등 입법 과제에서 을지로위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입법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지금껏 을지로위의 주요 문제 해결 수단이었던 ‘협약 타결’이 임시방편에 가까웠다는 인식이 있다.

진 위원장은 18일 통화에서 “이제 을지로위는 의원 75명이 참여하는 규모 있는 조직”이라며 “내부 상임운영위원회를 활성화해 분야별 현안을 체계적으로 논의하고 지역위원회를 통해 수도권 외 지역의 ‘을’ 문제에도 관심을 갖겠다”고 말했다.

입법에 있어 ‘을’은 어떻게 정하나.
최근 을 간의 문제, 을-병간 문제도 제기되는 걸 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는 을이지만 하청업체에는 갑이다. 어떻게 볼지 고민스러워지는 대목이다. ‘누가 조금 더 우월적 지위에 있는가’를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약자라면 떠오르는 계층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을지로위원장(오른쪽)과 우원식 의원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륜차 배송 및 대리운전 표준계약서 도입을 위한 협약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우 의원은 을지로위원회 초대 위원장이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을지로위원장(오른쪽)과 우원식 의원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륜차 배송 및 대리운전 표준계약서 도입을 위한 협약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우 의원은 을지로위원회 초대 위원장이다. [연합뉴스]

민주당 상설 정책 기구인 정책위원회와 역할이 겹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위는 비단 공정거래나 갑질 문제만 보지 않는다. 정치·경제·외교·국방 모든 분야를 다 관장한다. 을지로위는 그중 경제·사회 활동에서 차별·소외 문제에 집중해 온 만큼 그런 데서 좀 더 현장 목소리를 정책위에 실어나르겠다.
취임 후 중점적으로 다룰 쟁점은.
표준계약서 도입에서 나아가 택배노동자 보험료 문제 등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상가 세입자들이 코로나 국면에서 여전히 임대료 부담 때문에 타격을 받는 부분도 고민거리다. 최근 관심이 조금 높아지긴 했지만, 예술인의 열악한 지위 개선, 권익 실현 문제도 있다. 국정감사 기간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당 대표를 지낼 때 전략기획위원장이었던 진 위원장은 당내에서 친문으로 분류된다. 우원식(1기)·이학영(2기)·박홍근(3기) 등 전임 위원장들의 권유로 4기 위원장에 출마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을지로위는 선명성이 뚜렷한 의원들이 이끌었다. 노사·가맹점 등 이해 대립이 뚜렷한 사안을 다루면서 “불공정한 갑을(甲乙) 관계를 개선하겠다”(우원식 의원)고 활동 지침을 정한 영향이 있었다.

혁신 막는 규제 양산소 되나

타다는 을지로위원장이던 박홍근 의원이 주도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통과로 운영을 중단했다. 사진은 지난 3월 서울 서초구의 한 차고지에 주차돼 있던 타다 차량들. [뉴스1]

타다는 을지로위원장이던 박홍근 의원이 주도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통과로 운영을 중단했다. 사진은 지난 3월 서울 서초구의 한 차고지에 주차돼 있던 타다 차량들. [뉴스1]


하지만 174석 거여의 당정청 기구로 힘이 세진 을지로위를 향해 “뿔을 고치려다가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의 잘못을 범할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수도권 재선)는 우려가 생겼다. “야당일 때와 달리 여당은 갑·을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소 전체를 살리기 위해 이전보다 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원한 한 비주류 의원은 “집권당으로서 유연한 정책을 펴야 하는데 을지로위원회가 과제를 선점하면 이를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올해 3월 타다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법 개정안) 본회의 처리에 앞장선 게 대표적 예다. 당시 을지로위원장이던 박홍근 의원이 “택시업계·모빌리티플랫폼 업계 간 사회적 대타협과 논의 성과를 반영한 대국민 교통서비스 증진법”이라고 대표 발의했지만, 결과는 타다 폐업이었다. 당시 이재웅 쏘카 대표가 “타다금지법을 강행하면 민주당의 총선 공약인 벤처 4대 강국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반발했지만 법 통과를 막지 못했다.

20대 국회 때 을지로위 소속으로 민주당에서 유일하게 타다금지법에 반대표를 던졌던 최운열 전 의원은 통화에서 “을지로위는 전체적인 사안을 보지 못하고 건건이 약자와 강자를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 신기술이 물밀 듯이 들어올 때, 산업을 발전시키고 궁극적으로 국민 후생을 증진하는 결정을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덧붙이면서다.

민원 창구·옥상옥 우려도

을지로위원회는 최근 택배, 배달업 종사자 보호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주최로 열린 '배달앱-소상공인·자영업의 바람직한 상생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박홍근 전 을지로위원장(왼쪽),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연합뉴스]

을지로위원회는 최근 택배, 배달업 종사자 보호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주최로 열린 '배달앱-소상공인·자영업의 바람직한 상생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박홍근 전 을지로위원장(왼쪽),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연합뉴스]

19대 국회 때부터 조직을 키우며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온 점은 을지로위의 순기능으로 평가받는다. 집권 후 “민주당이 진보적인 당은 아니다. 좀더 개혁적으로 가야 한다”(2018년 이해찬 전 대표)는 문제의식 속에서 꾸준히 약자 편에 서려고 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비례대표를 지낸 한 의원은 “몇몇 의원들이 지역구 일로 바쁜 와중에도 을지로 현안에 보인 열정은 인정할 만 하다”고 말했다.

반면 시장과 업계 반응은 차갑다. 2018년부터 을지로위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카드수수료 개선, 가맹점주 종합대책, 택시월급제 등 일련의 입법을 추진한 걸 두고 한 금융사 임원은 “부동산부터 금융, 유통, 교통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산업 규제에 앞장선다”고 했다. 올 1월 을지로위는 배달의민족과 딜리버리히어로(DH) 간 M&A(인수·합병)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자 업계는 택배 서비스 사업 등록제 도입, 택배 노동자 처우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법)을 ‘제2의 타다금지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택시기사, 가맹점주, 택배기사 등 ‘을’을 돕는다고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을지로위가 이른바 ‘표밭’을 노린 민원 창구로 기능한다는 시각이 적잖다. 타다금지법 통과 때도 “택시업계와 노조의 눈치를 보며 발의한 총선용 포퓰리즘의 산물”(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토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을지로위가 민주노총과 시민단체 등 기득권의 무기로 활용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일을 주도해 추진하는 몇몇 의원의 이해관계와 무관치 않은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의제 설정 과정 투명화, 과도한 시장 개입 자제 등이 향후 과제라는 조언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불공정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라는 공식 정부 기구가 존재한다”며 “을지로위는 이를 지원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옥상옥이 되거나, 또 하나의 감독기구가 되는 것은 정부와 시장에 모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심새롬·김효성·김홍범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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