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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우린 투기꾼 아니다…펀드 사기 연루 증권사 수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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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옵티머스’ 피해자들 하소연을 듣다

옵티머스’ 피해자들이 펀드 판매사인 NH투자증권 본사(서울 여의도)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지난 7월 23일의 모습이다. 피해자들은 NH투자증권에 원금 반환을 요구했다. [뉴스1]

옵티머스’ 피해자들이 펀드 판매사인 NH투자증권 본사(서울 여의도)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지난 7월 23일의 모습이다. 피해자들은 NH투자증권에 원금 반환을 요구했다. [뉴스1]

옵티머스 펀드 개인 피해자는 적게는 1억원, 많게는 수십억원을 넣었다. 한국투자증권 권유로 이 펀드에 가입한 사람들은 피해액의 90%를 돌려받았는데, NH투자증권을 통해 가입한 이들은 아직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여기에 해당하는 피해자가 약 1000명이다. 이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관련 기관 등을 찾아다니고 시위도 벌인다. 최근 검찰 수사가 다소 활기를 보이자 이들의 온라인 대화방에는 원금 회수 희망을 말하는 글들이 속속 올라온다. 넉 달째 애타게 피해 복구를 바라고 있는 그들을 만났다.

증권사 PB가 국공채에 투자하는 #안전한 펀드라고 권유해 돈 넣어 #“NH투자증권이 왜 그렇게 열심히 #판매했는지 검찰이 꼭 확인해야”

①권혁관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아들 장가보낼 돈도 거기에”

1957년생, 한국 나이로 64세다. 1983년에 삼성그룹 공채(24기)로 전주제지에 입사해 현재는 서울 을지로에서 제지사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1인 기업 대표이기도 하다. 옵티머스 피해 금액에 대해서는 “수억원”이라고만 밝혔다. “지금 취급하는 종이들로는 수익을 내기 어려워 특수 용지 수입 사업을 해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지내던 NH투자증권 PB(투자 컨설턴트)가 원금 손실 가능성 없는 6개월짜리 펀드에 투자하면 연 2.8% 수익이 보장된다고 해서 돈을 넣었다. 용지 수입 사업을 해도 시작까지 최소 몇 개월은 걸리는 터라 돈을 은행에 넣어놓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아들 장가보낼 돈도 그 안에 있다”고 했다.

그는 옵티머스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대표직을 맡고 있다. “지난 7월에 서울 잠실에서 피해자 오프라인 모임을 처음 가졌는데 20명쯤 모였다. 내가 IMF 사태 때 기업에서 채권 회수 업무를 해 이런 일에 약간의 지식이 있고 나이도 많아 대표 역할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14일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가 “똑같은 상품인데도 어느 증권사를 선택했었느냐에 따라 (문제 해결이) 다르다. 한국투자증권에선 조건 없이 우선 배상을 했는데 NH에선 여러 가지 조건이 달린 긴급 대출을 하라고 한다. 이걸 제때 갚지 못하면 지연이자를 내야 하고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 결정을 받지 못하면 소송을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씨는 “다른 증권사들은 옵티머스 펀드 판매를 거절하거나 하다가도 중단했는데 유독 NH만 이상하게 열심히 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NH 측에 작용한 것 아닌가 싶다. 검찰이 이 부분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②1인 시위 벌이는 70대 여성 유모씨
“세상 뜨며 돈 남겨준 남편에 미안”

75세의 아마추어 사진작가다. 6월 말에 서울 삼성동의 NH투자증권 지점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이후 여의도의 NH투자증권 본사 앞에서 피켓을 들었다. 최근에는 서초동의 서울중앙지검 앞에서도 시위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도 나홀로 항의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6월에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국영기업에 다닌 사람인데 평생 외식을 모르고 살았다. 한우를 사 먹은 적이 없다. 남편 증권계좌에 5억원이 넘는 돈이 있었다. 내가 그 돈을 갖고 있던 차에 PB가 펀드를 권했다. 국공채에 투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 말이 맞는다면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돈을 잃을 일이 없는 것이었다. 5억원을 거기에 넣었다. 6월 18일이 만기였는데 바로 전날 NH에서 전화가 왔다. 옵티머스에서 환매가 중단돼 돈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바로 지점으로 달려갔다.”

유씨는 “평생을 악착같이 산 남편한테 미안해서 도저히 집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1인 시위에 나선 까닭을 말했다. 딸과 둘째 아들에게는 옵티머스 펀드 피해를 이야기했지만 큰아들한테는 아직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NH투자증권) 본사 주차장 입구에서 주로 시위를 했다. 거기 높은 사람들이 부끄러운 줄 알라는 뜻이다”고 말했다.

③온라인 모임 주도하는 ‘마법사’
“아내에 말 못하고 넉 달째 끙끙”

40 후반의 IT(정보통신) 관련 업체 임원이다. 피해자들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의 닉네임이 ‘마법사’다. 그는 “관리자는 아니고 어떻게 하다 보니 자주 등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피해액은 3억원이다. 부인에게도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집안 재산을 내가 관리하고 있다. 차마 말할 수가 없다. 하루빨리 피해 배상 또는 보상이 이뤄져 아내가 모르고 넘어가게 되기를 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년 전에 파생상품에 투자해 수억원의 손해를 본 적이 있다. 다시는 위험성이 있는 투자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NH투자증권 PB가 공기업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라고 했다. 그렇다면 크게 수익은 안 나지만 원금을 까먹을 일은 없는 것이었다. 공기업 매출채권이 그렇게 많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어 PB에게 물어보니 내부에서 확인 작업을 했다고 했다. 지금 보니 그 확인 작업이라는 게 옵티머스 측의 허위 문서를 받아 그대로 인정했던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NH투자증권은 자기들도 피해자라고 한다. 누가 이런 거대한 금융사기의 공범인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온 집안이 민주당 지지였다. 부친은 실제로 정치 쪽 일을 하기도 했다. 나 역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을 열심히 응원해왔다. 그런데 요즘 생각이 달라졌다. 정권이 라임·옵티머스 사건을 축소해 덮으려 한다는 생각이 든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연루돼 있던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그렇다. 이건 정의가 아니다.”

④부산에서 수시로 상경하는 하모씨
“부모 쓰러질까 걱정, 공황장애도”

부산에서 신발 깔창을 제조하는 중소기업의 전무로 일하는 40대 남성이다. 회사는 부친이 운영하던 곳이다.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 꼬박 꼬박 참석해 피해자들이 특이하게 여기는 인물이다. 온라인 모임에서 ‘하빙’으로 불린다. 그는 부모 돈 14억원을 넣었다. “부모님이 노후 자금으로 모아놓은 돈 관리를 내가 맡고 있었는데 딱 한 번 인사했던 PB가 전화를 걸어 안전하고 수익성은 예금보다 나은 상품이 있다고 권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듯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모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사실대로 말했다고 한다. “충격받고 쓰러지실 것 같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속으로만 끙끙 앓다가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약을 계속 먹었다. 피해자 모임에 가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위안을 받을 수 있어 열심히 상경했다.”

그는 “펀드 피해자들이 제일 억울해하는 것은 마치 큰돈 노리고 투기한 것처럼 비치는 점이다. 대개 금리가 약간 높은 6개월, 9개월짜리 정기예금으로 여기고 가입했다. 안 그랬으면 퇴직금, 노후 자금, 전세 보증금 등을 넣었겠나. 개인 피해자의 80% 이상이 60세 이상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⑤회삿돈 넣은 기업 재무팀장 이모씨
“회사서 얼굴 못 들고 다닌다”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법인 피해자 측 위원이다.  그는 주방 설비 제조업체에서 재무팀장직을 맡고 있다. 그 역시 NH투자증권 측의 권유로 30억원을 투자했다. 회삿돈 수십억원을 날릴 위기에 처했으니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그는 “최고경영자(CEO)가 보고받고 승인을 했던 투자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문책을 당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회사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기가 힘들다. 수면제 먹고 억지로 잠을 잔 날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왜 이런 금융상품에 돈을 넣었느냐는 비판적 시선이 있는 것을 안다. 기업에 자금 여유가 있어 사업 확장을 하려 해도 당장 되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기업이 그래서 안전하고 현금화 하기 쉬운 곳을 찾아 투자한다. 옵티머스 건은 명백한 사기다. 이 일을 같이 꾸민 사람들을 찾아내 처벌해야 한다. 피해자들을 곱지 않게 보는 시각이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