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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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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병주 경제EYE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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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형’이 국정감사장에 웃음을 줬다. 질타받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참지 못했다. 16일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장에서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부동산 정책으로 국민이 힘들다”며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구절을 틀었다.

전세난에 국민이 힘들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주택 전셋값은 0.53% 올랐다. 5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이다. 국토연구원 조사 결과 지난달 전국의 전세 시장 소비심리지수는 123.9였다. 2015년 10월의 127.8 이후 최고치다. 이달 들어서도 둘째 주 기준 서울 아파트의 전세 가격은 67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지난 여름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골자로 하는 개정 임대차법이 시행되면서 상승세를 부추겼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일도 생겨나고 있다. 13일 서울 강서구의 아파트에서는 전세로 나온 집에 9팀이 줄을 서서 집을 봤다. 이들은 부동산 사무소에서는 가위바위보와 제비뽑기로 전세 계약자를 결정했다. 더군다나 이사 시기를 현재 세입자가 이사하는 날이 결정되면 그 날짜에 무조건 맞추어야 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노트북을 열며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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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은 이런 전세난 해소를 위한 추가 대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실거주자 보호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이를 두고 ‘홍남기 구하기’란 비아냥이 나온다. 서울 마포에 전세를 사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거주 중인 집의 전세 기간을 늘리지도 못하고, 매도 계약까지 한 의왕시 아파트는 세입자의 계약갱신요구로 팔지 못하게 된 사실이 알려진 시기와 대책이 거론된 때가 겹쳐서 하는 말들이다.

이미 홍 부총리는 인터넷상에서 웃음거리가 됐다. 전셋집을 보기 위해 줄 선 대기자에 홍 부총리 얼굴을 합성한 패러디 사진이 돌았다. ‘일국의 부총리로서 청백리의 상징인 듯’ ‘마포구 집주인 여러분…전세 계약하러 오면 잘 좀 해주세요’ 등 글들이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회자한다. 각종 부동산 규제를 관할하는 고위 관료가 오히려 그 규제들로 인해 ‘전세 난민’이 된 상황을 꼬집고들 있다.

홍 부총리는 “전셋값 상승요인에 대해 관계부처 간 면밀히 점검·논의해 나가겠다”고 밝힌 상태다. 여당과 보조를 맞춰 문재인 정부의 24번째 부동산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하지만 불안하다. 대책이 또 다른 부작용을 몰고 오지 않을지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나온다. 테스형에게 묻는다면 이리 답할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라.”

문병주 경제EYE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