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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옵티머스 엉뚱한 채권 사는데도 문제 안 삼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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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옵티머스자산운용이 하나은행에 보낸 ‘옵티머스 크리에이터 14호’ 펀드 재산 평가서(위쪽)와 펀드운용지시서(아래쪽). 공공기관이 아닌 부동산 자문사에 투자했다. [사진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실]

옵티머스자산운용이 하나은행에 보낸 ‘옵티머스 크리에이터 14호’ 펀드 재산 평가서(위쪽)와 펀드운용지시서(아래쪽). 공공기관이 아닌 부동산 자문사에 투자했다. [사진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실]

고객에게 돈을 모은 뒤 ‘좋은 사과’(공공기관 매출채권)만 골라 ‘바구니’(펀드)에 담겠다고 약속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좋은 사과는커녕 바구니 속에는 ‘썩은 사과’(부실채권) 투성이였다. 고객이 맡긴 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안갯속이다. 옵티머스 사모펀드의 부실 문제를 비유로 정리한 것이다.

작년 12월 펀드 재산 평가서 입수 #투자평가서엔 ‘LH 매출채권’ 명시 #운용지시서엔 부동산 자문사 투자 #유의동 “관리 부실 혹은 알면서 방치” #하나은 “펀드운용사 지시 따른 것” #자본시장법상 감시의무 위반 정황

제일 나쁜 쪽은 고객을 속이고 바구니에 썩은 사과를 담은 회사(옵티머스자산운용)다. 하지만 옵티머스가 이런 짓을 저지를 동안 관련 금융회사와 공공기관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특히 펀드의 돈으로 투자업무를 대행한 수탁회사(하나은행)의 책임론이 제기된다. 자본시장법이 정한 감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펀드 투자자의 피해를 키웠다는 논란이 일고 있어서다.

자본시장법(247조 5항 4호와 5호)은 사모펀드 수탁회사인 하나은행에 두 가지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사모펀드가 투자한 재산의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하고 있는지(투자재산 평가의 공정성)와 ▶펀드 수익률 계산의 기초가 되는 기준가격을 제대로 산정했는지(기준가격 산정의 적정성)를 확인하는 의무다.

중앙일보는 ‘옵티머스 크리에이터 26호’ 펀드의 집합투자재산 평가서를 최근 입수했다. 지난해 12월 작성된 이 자료는 펀드에 담은 재산이 무엇이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평가서에는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6-3M1블록 아파트 건설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받을 매출채권 미청구 잔액 OO억원” 등이 명시돼 있다.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실이 확보한 ‘옵티머스 크리에이터 14호’ 펀드의 재산 평가서도 비슷한 내용이다. 옵티머스가 하나은행에 “LH 매출채권을 펀드에 편입하는데 가격을 얼마로 산정하겠다”는 것을 수시로 통보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옵티머스가 실제로 투자한 것은 전혀 엉뚱한 채권이었다. 옵티머스의 지시를 받아 펀드에서 유가증권을 사고파는 업무를 대신했던 곳은 하나은행이었다. 그동안 하나은행은 “펀드 운용사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며 “사모펀드는 공모펀드와 달리 수탁회사가 감시·감독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자본시장법이 사모펀드에 각종 예외를 인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펀드 재산 평가와 기준가격 산정의 두 가지는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나은행에는 옵티머스 펀드의 재산 평가나 기준가격 산정에 문제가 있으면 추가로 자료 제출을 요구할 권한도 법적으로 보장돼 있었다. 그런데 하나은행은 옵티머스가 스스로 제출한 자료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지난 1월 옵티머스가 하나은행에 보낸 운용지시서에는 “제44호 아트리파라다이스 이자를 수령하니 처리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아트리파라다이스는 공공기관이 아닌 비상장 부동산 투자자문회사다. 이 회사에는 2031억원의 옵티머스 투자금이 들어갔다. 유의동 의원은 “투자제안서와 신탁계약서, 재산평가서까지 3중 확인 장치가 있는데도 사모채권이 담길 때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은 이해가 안 된다”며 “관리가 부실했거나 알면서 방치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서류상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100% 담게 돼 있으면 실무자가 (문제를) 인지했을 텐데 95%로 돼 있어 다른 채권이 편입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았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서울중앙지검은 하나은행에서 수탁 업무를 담당한 A팀장을 최근 피의자로 전환해 수사하고 있다. 지난 13일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유 의원은 “하나은행이 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한 신탁업자의 선량한 관리자 의무를 다했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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