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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세 번 맞는 노화의 고비…거뜬히 넘는 첫걸음은 정기 검진, 주치의 상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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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인간은 세 번 늙는다? 나이와 노화는 비례한다는 명제가 과학의 발전으로 전기를 맞았다. 특정 시기, 구체적으로 34세·60세·78세 등 세 번에 걸쳐 급격한 노화가 찾아온다는 사실이 혈액 속 단백질 연구를 통해 확인되면서다. 젊다고 건강을 자신하거나 나이가 많다며 관리를 소홀히 하다간 자신도 모르게 ‘노화의 파도’에 휩쓸릴지 모른다. 건강검진과 생활습관 개선 등 체계적인 건강 관리 전략이 요구되는 배경이다.

"30대는 만성질환 예방 초점 #60대는 조기 발견·치료 주력 #70대부턴 건강 유지에 중점"

단백질은 신체를 구성하는 동시에 다양한 화학반응의 촉매제로 쓰인다. 세포가 죽거나 호르몬 분비가 달라지는 등 몸이 변화하면 이에 맞춰 혈장(혈액의 액체 성분) 단백질의 종류와 양이 바뀐다. 예를 들어 간세포의 기능이 떨어지면 이곳에서 만드는 ‘알부민’이란 혈장 단백질의 농도가 감소하는 식이다. 보이지 않는 건강 문제를 파악하는 ‘단서’인 셈이다.

 노화 역시 혈장 단백질에 영향을 미친다. 나이가 들어 장기 기능이 떨어지거나 대사 활동이 감소하면 혈액 내 단백질의 구성과 양도 변화한다. 그렇다면 혈장 단백질로 노화 수준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최근 이런 내용을 검증하는 빅데이터 연구를 진행해 그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했다.

평생 세 차례 정점 찍는 ‘노화 단백질’

연구팀은 18~95세의 건강한 성인 4331명을 대상으로 나이에 따른 혈장 단백질의 변화를 측정했다. 3000여 가지의 혈장 단백질을 분석한 결과, 나이에 따라 양이 변하는 이른바 ‘노화 단백질’은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GDF15’, 뼈 형성을 억제하는 ‘SOST’ 등 1379개에 달했다. 혈장 단백질의 변화로 추정한 나이와 실제 나이와 오차는 3년에 불과했다.

 하지만 정작 이번 연구에서 관심을 끈 내용은 따로 있었다. 노화 단백질의 양이 일정하게 늘거나 줄지 않고, 마치 파도처럼 쉴 새 없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신체적인 노화가 시간과 함께 진행하는 것과 달리, 노화 단백질의 대부분은 나이와 무관하게 양이 바뀌었다. 노화 단백질의 양이 정점을 찍는 시기도 34세·60세·78세 등 총 세 차례였다. 다소 젊을 때와 반대로 나이가 든 후에도 ‘노화의 고비’가 찾아온다는 의미다.

 이번 연구에서는 노화 단백질의 증가·감소가 장기 기능 저하나 질환 발생, 외모 변화 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되진 않았다. 혈장 단백질만으로 복잡한 노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단, 이런 노화 단백질의 변화를 건강의 ‘터닝 포인트’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서울시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오범조 교수는 “현재 정부가 생애 전환기 건강검진을 만 40세·66세 두 차례 시행하는 이유는 나이와 무관하게 이 시기 신체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노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아도 분자 수준에 변화가 있다면 이를 건강관리에 활용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0대는 건강의 초석을 다져야 하는 때다. 몸이 아프지 않아도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인을 찾아 미리 관리하는 것이 현명하다. 핵심은 비만·고혈압·당뇨병 등 대사 질환이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이은주 교수는 “동물실험에서는 조기에 대사 질환을 관리하면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기도 했다”며 “키·체중·허리둘레처럼 측정이 쉬운 항목만 꾸준히 체크해도 암·만성질환 예방 등 건강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감염병도 30대가 주의해야 하는 ‘건강 복병’이다. 특히 간염은 뚜렷한 증상이 없지만 노화와 맞물려 간경변· 간암 등 치명적인 질환으로 악화하는 만큼 조기 진단이 필수다. 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원장원 교수는 “B·C형 간염이나 만성 알코올성 간 질환을 앓는 환자는 30대 중반부터 간암 발생 위험이 급격히 증가한다”며 “젊은 환자도 혈액·초음파 검사를 통해 한 번쯤 간 건강을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노년의 문턱에 들어서는 60대는 병을 조기 발견·치료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특히 암과 심뇌혈관 질환은 50~60대부터 발병률이 급증하는데, 조기에 발견할수록 약물·수술 등 보다 적극적인 치료를 시행할 수 있어 진단 시 이익이 더 크다. 암의 경우 위암은 위내시경, 간암은 간 초음파나 혈청 알파태아단백 검사, 대장암은 대장내시경과 분변잠혈검사, 유방암은 유방촬영술 등을 통해 진단할 수 있다. 30년 이상 흡연자는 폐암 진단을 위한 저선량 흉부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가 추천된다. 일반 CT보다 방사선량이 적고 X선 검사보다 정확도가 높다.

장기 흡연자는 저선량 폐 CT 검사를

초음파는 혈관 건강을 비추는 거울이다. 심장이나 경동맥(뇌로 가는 혈관) 초음파 검사를 받으면 혈관의 구조 등을 토대로 심뇌혈관 질환 위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원 교수는 “흡연·고지혈증·당뇨병·심장병·가족력 중 2개 이상에 해당하는 사람은 심전도·운동부하 검사를 통해 보다 면밀하게 혈관 건강을 체크하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건강관리를 위해서는 유산소·근력 운동을 병행하는 복합 운동이 추천된다. 노화가 진행되면 근육의 질적·양적 변화가 한꺼번에 찾아와 힘이 떨어지고 크기가 준다. 같은 운동을 해도 에너지가 덜 소모돼 적정 체중을 유지하기 어렵고, 비만과 근 감소증을 비롯해 각종 질환의 위험이 커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가천대길병원 정형외과 이병훈 교수는 “하루 30분에서 1시간씩 유산소 운동은 주 3~5회, 근력 운동은 주 2회 이상 실천하면 근 감소증과 비만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며 “뼈에 적절한 자극을 가해 골다공증 예방에도 도움된다”고 말했다.

 70~80대는 건강을 개선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데 힘써야 한다. 실제 한국인의 건강수명(평균수명에서 질병·부상으로 몸이 아픈 기간을 제외한 기간)은 73.2세로 70대 중반부터 몸 상태가 급변한다. 전신 쇠약이 진행해 운동·약물 등 적극적인 치료가 오히려 건강에 해를 끼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 교수는 “고혈압·당뇨병 환자의 경우 60대는 중년과 같은 수준으로 혈압·혈당을 관리하지만, 70~80대는 강도 높은 치료가 오히려 저체중·저혈압·낙상과 같은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다소 느슨하게 관리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수록 체력·면역력이 떨어지고 앓는 병이나 먹는 약이 늘어난다. 이를 포괄적으로 고려해 치료 계획을 잡지 않으면 효과는 떨어지고 부작용만 늘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오 교수는 “노인 환자는 인지·감각 기능, 일상생활 수행 능력 등 다양한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며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한 단골 병원·의사를 만드는 게 좋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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